


1912년 대구 남성로에서 태어난 이인성(1912~1950)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보통학교를 마친 후 상급학교 진학 대신 화가 서동진 이 경영하는 대구미술사에 들어가 수채화를 배웠다.
17세 때 소파 방정환이 주최한 세 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촌락의 풍경〉으로 특선을 차지하며 천재 소년으로 불리게 된다.
이듬해에는 당시 최고의 경연대회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명성을 굳혔고, 지역 화가들의 모임인 ‘향토회’에 가입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재능을 아끼는 이들의 도움으로 이인성은 일본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었고, 이 후 조선과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는 화가로 성장하여 〈경주의 산곡에서〉, 〈가을 어느 날〉, 〈해당화〉 같은 향토색 짙은 명작을 발표했다.
어떤 미술평론가는 그를 ‘조선의 보물 과 같은 화가’라고 평가하였다.
유럽의 회화 사조인 인상파・야수파 등의 영향을 받은 그는 수채화와 유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개성 있고 과감한 표현법으로 명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이인성양화연구소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도 힘쓰는 등 대구의 서양화 보급과 발전에도 큰 공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총기 오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여전히 눈부시다. 이인성을 기념하여 매년 대구에선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인 1명의 화가를 선정하여 이인성미술상을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