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사충이 정착한 동네인 계산동에 1899년 대구 최초의 성당이 들어섰다.
프랑스 출신의 로베르 신부(한국 이름 김보록)가 세운 계산성당이었다.
불운하게도, 애초에 한국식 목조 건물로 지어진 성당은 지은지 2년쯤 되어 화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로 로베르 신부가 낙담해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는 말했다.
“여러분! 성당을 다시 세웁시다. 돌과 벽돌로 더 튼튼하게 지읍시다.”
신부의 말에 교인들 역시 “저희 신자들도 건축비를 보태겠습니다.”라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새로 짓는 성당의 설계와 공사 감독은 로베르 신부가 직접 맡았고, 공사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기술자들도 참여했다.
마침내 1902년, 2개의 종탑을 가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 완공되었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축성식은 다음해인 1903년에 열렸는데, 조선 각지의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대구 지역 일반 주민들까지도 구경을 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는 마치 흥겨운 잔칫날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대구는 조선에서 비교적 일찍 천주교가 보급된 도시였다.
1911년 대구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한 후 계산성당은 경상도 천주교 전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100년을 훌쩍 넘긴 성당 건물은 현재 국가 지정 사적지 제290호로 보호받고 있다.
성당의 정원에 가면 로베르 신부의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흉상 조각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