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임창순이라는 학자가 대구 시내를 걷다가 길가에 내놓은 길이 1m, 폭 70cm 의 돌을 발견했다.
돌에는 한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문 실력이 뛰어났던 임창순은 그 돌이 신라시대 것임을 알아냈다.
그는 돌이 놓여 있는 집의 주인을 설득하여 그 것을 대학으로 가져와 표면에 새겨진 글자를 전부 해석하였다.
비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글씨를 새긴 것으로, 글자는 크기와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글씨의 줄도 똑바르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고아한 멋이 있었다.
그것은 삼국시대 인 6세기 중엽 대구에서 저수지를 만든 과정을 밝힌 비석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이때 학자 임창순은 잠시 대구를 떠나야 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와 보니 학교에 비석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 곳곳을 뒤져 교내 수영 장 부근에 묻혀 있는 비석을 찾아냈다.
왜 비석이 사라진 것일까? 한국전쟁 때 이 학교에 미군이 잠시 주둔하였는데, 이 비석의 가치를 몰라보고 방치한 때문이었다.
비석은 신라의 국방정책 및 농업정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기에 1969년 보물로 지정 되었다.
이 비석의 정식 명칭은 ‘대구 무술명 오작비’이다. 보물 제516호로, 경북대학교박 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