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를 대구로 옮기는 것이 어떠한가?
통일신라의 지방행정제도인 9주 5소경은 685년 제31대 신문왕 때 만든 것이었다.
신문왕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아들이다.
689년 신문왕이 신하들에 게 말하였다.
“신라의 발전을 위해 수도를 옮기고 싶소.”
“옮기신다면 어디로?”
“달구벌(대구)이 좋을 것 같소.”
신문왕이 대구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에 적혀 있다.
삼국시대에 수도 이전은 몇 번 있었다.
고구려는 수도를 졸본성 → 국내성 → 평양으로 옮겼다.
백제는 한성(서울) → 웅진(충청남도 공주) → 사비(충청남도 부여)로 옮겼다.
신하들의 반대로 신문왕의 대구 천도(수도 이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대구가 신라의 새 수도가 되었다면?
신라의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또 대구는 통일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재를 가진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왜 신문왕은 수도를 옮기려 했을까?
역사학자들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첫째, 신라 수도 금성(경주)이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친 곳에 있어 삼국통일로 크게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는 데 불편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구는 동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있어, 통일신라를 다스리는 데 지리적으로 유리했다.
둘째, 대대로 금성에서 살아온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옮기지 못했을까?
귀족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이전을 포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문왕의 수도 이전 계획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신문왕 시대에 대구는 수도 이전 후보지가 될 만큼 군사, 교통에서 중요한 도시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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