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둘러쌌던 성이여! 상상만 하여도 웅장하구나!
1601년 경상감영이 들어선 곳은 오늘날 대구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경상감영공원 자리였다.
관찰사 부임 후 대구는 경상도의 정치, 행정, 군사 분야 중심도시가 되었다.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대구 인근의 경산현・하양현・화원현 등이 대구도호부에 편입이 되었다.
이로써 대구 면적은 더 넓어졌다. 인구도 더 늘어났다.
감영 설치 후 대구에선 상업이 빠르게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대구는 낙동강 중류와 금호강 합류 지점에 위치해서 경상도 물산들이 집결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감영 설치 후 대구에는 큰 시장이 생겼다. 1658년 문을 연 약령시(약재를 거래하는 시장)였다. 대구 약령시는 조선 8도에서 가장 큰 약령시로 성장하였다.
1736년 대구는 더욱 근사한 도시가 되었다.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의 지휘로 감영을 중심으로 하여 대구 도심을 둘러싼 대구읍성을 건설한 것이다.
읍성은 고을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을 가리킨다. 읍(邑)이라는 한자 자체도 성으로 둘러싸인 고을을 나타낸 것이다. 대구읍성 규모는 둘레 약 2,650m, 성곽의 폭 약 8.7m, 높이는 약 3.5m였다.
상상만 하여도 웅장하지 않은가!
대구읍성이 세워지고 60년 뒤 오늘날 경기도 수원에는 수원화성이 건설되었다. 수원화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읍성이 잘 보존되었다면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대구읍성 4대문과 서문시장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에 동서남북으로 큰 출입문이 있었던 것처럼 대구읍성 동서남북에도 4개의 큰 문이 있었다.
진동문, 달서문, 영남제일관, 공북문이었다.
대구읍성이 건설된 후 읍성의 서문 근처에 큰 시장이 생겼다.
서문 앞에 있다 하여 이 시장을 서문시장이라고 불렀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서문시장은 조선을 대표하는 3대 시장 중 하나가 되었을 만큼 번창하였다.
서문시장은 1920년대에 지금의 위치(대구시 중구 대신동)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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