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 침략과 무너진 대구읍성
19세기 후반 조선의 힘이 약해지자 일본과 서양 강대국이 조선 땅에 밀려들었다.
경상감영의 도시 대구에도 변화가 생겼다.
1893년 대구읍성 남문 부근에 의약품과 잡화를 파는 일본인 가게가 생겼다.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이 일어난 해인 1894년에 조선 땅에 들어온 일본군은 대구 달성(지금의 달성공원)에 부대를 주둔시켰다.
1895년 조선초기부터 대구의 행정 명칭이었던 대구도호부가 대구부로, 1896년엔 대구군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04년 경부철도 건설공사가 시작된 후, 대구에는 건설 관계자와 그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상인 등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대구 거주 일본인들은 일본군을 등에 업고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일본인들은 대구읍성 북문 밖에 많이 살았는데, 경부철도가 정차하는 대구역이 그 지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대구의 상권을 장악한 일본인들은 그들의 거주공간을 더 확보하려고 대구읍성 철거를 추진했다.
1906년 당시 대구군 군수였던 친일파 박중양은 조선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일본인 요구대로 성벽 철거를 시작하였고, 1907년 읍성 철거를 완료하였다. 성벽 철거 후 사방에 동성로,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 무렵 경상감영 내의 여러 건물도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일본이 세운 경찰서, 은행 등의 건물이
들어섰다. 대구의 경상감영 자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거점으로 탈바꿈되고 만 것이다.
“허물지 마라!” 감영 건물 철거에 저항했던 대구 사람들
대구읍성 철거 후 일본은 경상감영 안에 있는 시설들을 많이 철거하였다.
그중 하나가 경상감영 객사(손님들이 묵던 숙소)였던 달성관이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달성관을 철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대구 사람들은 달성관 앞으로 몰려가 밤을 새워 가며 항의 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를 동원해 농성하던 사람들을 해산시킨 후 달성관을 허물어 버렸다.
#무너진 대구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