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어떻게 대한민국 3대 도시로 성장했을까?
대구는 어떻게 대한민국 3대 도시로 성장했을까?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남한에 쳐들어 온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한 데 이어 빠르게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왔다. 
서울을 떠나 후퇴하던 우리 정부는 1950년 7월 16일부터 대구를 대한민국 임시수도로 정하였다. 
그해 8월 17일까지 한 달가량 대구는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8월 중순 북한군은 대구에서 가까운 왜관 지역까지 내려왔다. 대구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밀리기만 하던 한국군과 UN군은 낙동강 일대의 방어선을 잘 지켜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 덕분에 대구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대구의 공업은 빠르게 발전할 기회를 잡았다. 

전쟁으로 다른 지역 공장들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대구의 공장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던 까닭이다. 
전통적으로 상업이 발전한 도시였던 대구에서 공업이 빠르게 발전하였다. 

1950년대를 지나며 대구는 전국 제1의 섬유산업도시가 되었고, 서울, 부산에 이어 전국 3대 도시가 되었다. 

대구가 제3의 도시가 된 데는 행정중심도시, 상업과 공업의 발달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교육도시, 문화도시로도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사진 : 한국전쟁 중 대구역 앞의 풍경]

전쟁 중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대구 

1950년 대구로 피난 온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1953년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상당수 문학가, 음악가, 미술가들이 대구에서 예술 활동을 하였다.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현재 대구 도심 동성로 입구에 있는 <CGV 대구한일> 자리엔 극장 겸 공연장이 있었는데, 이곳은 전쟁기간 중에 대한민국 국립극장 역할을 하였다.​

 

#한국전쟁 #임시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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