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육사(1904~1944)의 작품 중에서는 「청포도」가 특히 유명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구절로 시작해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으로 끝이 난다. 청포도를 제재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노래했다고 해석되는 시이다.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었다. 크면서 고향에서 한학을 익히고, 영천에 있던 백학서원과 대구의 교남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이후 몇 년간은 대구에서 신문사 기자로 근무하며 작품을 발표해 나간다.
이육사는 시인이면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친 투사이기도 했다. 그는 1927년 독립운동가 장진홍이 벌인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투척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최초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이육사라는 이름은 이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온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항일운동으로 1944년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무려 17번이나 감옥을 드나들었다.
항일 투쟁에 평생을 바친 탓에 이육사가 남긴 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청포도」를 비롯해 「광야」, 「절정」과 같은 시들은 일제강점기 때 탄생한 시 가운데 매우 빼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육사 탄생 100주년이 되던 2004년 이육사문학관이 시인의 고향에서 문을 열었으며, 이 외에도 안동에선 해마다 이육사시문학상 시상식, 전국육사백일장 등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