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의 역사, 대구 시민의 생활사를 이리저리 살펴보면 크든 작든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꽤 있다.
그중 몇 가지 특기할 만한 것들을 추려 보자.

해방 이후 한국문학 최초의 시 동인지 『죽순』
시 동인지란 시인들이 창작 모임을 만들어 함께 펴낸 시집을 말한다. 한국 현대문학사 최초의 시 동인지가 1946년 5월 대구에서 창간되었다. 시인 이윤수가 자신의 돈을 들여서 만든 이 동인지의 이름은 『죽순』이었다.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싹인 죽순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죽순』은 창간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12호(임시 증간호 포함)가 발간되었는데, 박목월 등 훗날 한국문학을 빛내는 시인들의 작품이 많이 실렸다. 1979년 30년 만에 복간된 『죽순』은 현재까지 꾸준히 명맥을 잇고 있다.

최초의 지방은행 대구은행
1967년 전까지 지방도시에 있는 은행들은 서울에 본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대구 지역의 경제인들은 몇 년 동안 대구에 본점을 둔 은행을 설립하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1967년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 1개 도마다 1개의 지방은행을 신설하겠다는 정책을 결정했고, 준비를 착실히 한 대구에선 한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문을 열었다. 50년을 훌쩍 넘긴 대구은행의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초의 시민 프로축구단 대구FC
2002년 한국은 일본과 FIFA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 대구에서도 몇 개의 시합이 열렸다. 전국에 울린 응원의 함성은 한국 팀이 4강에 오르는 좋은 성적과 함께 한국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2001년부터 추진된 대구 연고 축구단의 창단도 더욱 탄력을 받았다. 2001년부터 대구에선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팀 창단이 추진되었는데, 2002년 시민주 공모를 통해 창단을 본격화하여 2002년 12월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창단이 승인되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 최초로 시민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프로축구팀 대구FC가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