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끈 대구의 섬유산업


 

 

 

섬유 명산지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면화, 모시, 마를 재배하기에 적당한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베 짜기가 성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부터 안동지방에서 생산된 삼베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또 현대에 들어선 영주의 풍기 지방에서 생산되는 인견이 무척 유명하다.

 

1917년

1917년, 일본인이 세운 공장이 대부분이던 대구에 최초로 조선 사람이 세운 섬유공장이 생겼다. 추인호라는 기업가가 세운 동양염직소였다. 1920년대를 지나면서 동양염직소가 있는 달성동지역에는 섬유공장이 하나둘 늘어났다. 주변엔 공장에서 만든 옷감을 거래하는 포목점들도 생겼고, 대구에서 생산된 섬유를 구하려고 타지에서 오는이들의 발길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제일모직 & 한국나이롱

1941년 대구에 큰 섬유공장인 조선방직 대구메리야스공장이 생겼다. 메리야스란 면사나 모사(털실)로 만든 속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1950~1953년 한국전쟁 기간 동안 대구의 섬유공장들은 전쟁 피해를 별로 보지 않아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1955년 대구 침산동에 제일모직이, 1958년 신천동에 한국나이롱(오늘날의 코오롱) 공장이 들어서면서 대구의 섬유산업은 더욱 발전했다. 특히 한국나이롱에서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 원사를 생산하게 되는데, 이것은 합성섬유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70년대를 지나며 대구의 섬유산업은 대구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를 이끄는 중요 산업이 되었다.

 


70%

대구 섬유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대구최대의 시장이던 서문시장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전국 최대 섬유도매시장으로 성장하였다. 전체 점포 중 약 40%가 원단, 메리야스, 양말, 의류, 타월, 봉제 관련 제품을 취급했고, 전국 각지에서 대구의 섬유 제품을 구입하려는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한때 서문시장 섬유 거래량은 전국 거래량의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오늘날 서문시장에 들어선 약 4000여개의 점포 가운데에는 여전히 섬유 및 의류 관련 상점이 가장 많으며, 시장 근처에는 대구의 섬유산업과 역사를 함께한 양말골목, 타월골목, 미싱골목이 남아 있다.

 

15층

1970년대에 대구 시내에는 10층 이상 건물이 거의 없었다. 1978년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무려 15층의 건물이 들어섰다. 대구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 세워진 섬유회관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몇 년 동안 대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 자리를 지켰고 대구의 랜드마크(국가나도시를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가 되었다.

 

 

11월 11일

11월 11일 그러면 빼빼로데이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나라에서 지정한 섬유의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이 섬유의 날로 지정된것은 1987년 11월 11일 단일 산업에서는 처음으로 섬유산업이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는 섬유산업의 도시답게 이보다 16년 앞서 자체적으로 섬유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였다. 1971년 4월 17일 대구상공회의소가 제1회 대구 섬유의 날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또 1985년부터 대구섬유축제가 열렸고,​ 1999년 대구시는 섬유패션도시 선포식을 가졌다.​

 

since 2002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수출에서 섬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졌다. 전기・전자산업과 중화학공업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그럼에도 섬유산업은 여전히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산업의 지위를 누리고 있고, 대구도 여전히 국내 섬유산업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중이다. 대구에선 2002년부터 매년 대구국제섬유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또 전국 유일의 종합섬유박물관(DTC섬유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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