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 곳곳에 스민 화교들의 전통과 문화


 

 

 

로베르 신부와 대구의 천주교인들이 힘을 모아 계산성당을 다시 세울 때 함께 일한 외국인들이 있었다. 바로 중국인 벽돌공사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계산성당 외에도 당시 대구에 하나둘 들어서던 서양식 건물 건축에 참여했다.

 

대구에 중국인들의 정착이 시작된 때는 1905년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철도가 개통된 시기부터였다. 말하자면 대구 화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데, 화교란 중국이나 타이완(대만) 국적을 지닌 채 외국에 정착해 사는 중국인을 가리킨다. 대구에 둥지를 튼 화교들은 건축 외에도 여러 분야에 종사했다. 양조장이나 벽돌공장, 음식점 등 업종도 다양했다. 그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중국 고유의 풍속과 전통을 지켜 나가면서 대구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에 화교들은 대구의 중심가였던 종로 거리에 많이 모여 살았다. 1907년 대구읍성이 완전히 철거되고 난 후 이 거리에 들어선 많은 상점들 중에는 중국인 가게가 많이있었다. 오늘날 종로 거리에서는 해마다 ‘대구화교중화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대구에 정착한 중국인의 역사와 그들의 전통문화를 기념하는 행사로 거리 퍼레이드에서 중국 전통춤인 사자춤, 용춤을 구경할 수 있다.

 

지금도 대구에는 1905년 이주를 시작한 중국인들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종로 거리에 가면 중국인 학생들이 공부하는 대구화교소학교를 볼 수 있다. 화교들 가운데

중국음식점을 경영하는 이들의 가게 중엔 대구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이 있다. 

Copyright ⓒ Daegu Metropolitan Office of Educ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