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이 보여준 사랑과 헌신의 생애


우드브리지 존슨

젊은 선교사로 한국을 찾은 미국인 우드브리지 존슨은 1899년 대구 약령시장 근처에 제중원을 설립했다. ‘많은 사람들을 구한다’는 뜻을 가진 이름인 제중원은 대구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의료 기관이었다. 1899년 개원한 이후 제중원은 1901년까지 약 2000여명의 환자를 보살폈으며, 환자가 더 늘어남에 따라 1903년 대구시 중구 동

산동으로 이전했다. 제중원이 동산기독병원(현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의 전신)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11년이었다.

 


 

아서 맥타가트

아서 맥타가트는 1953년 미국 국무부 산하 주한 미국대사관에 부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76년 국무부에서 퇴직한 그는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1997년 퇴임할때까지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는 월 30만 원 안팎의 최소 생활비로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과 연금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버스비까지 아끼려고 먼 거리를 걸어다니며 모은 돈은 제자 200여 명의 장학금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영남대학 인문관 1층 로비에는 그의 삶과 업적을 기념하는 흉상이 있다.

 

 


 

엠마 프라이싱거

1961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 수녀가 천주교 대구대교구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당시 29세였던 그 수녀의 이름은 엠마 프라이싱거였다. 프라이싱거 수녀는 이때부터 50년이 넘도록 한센병 환자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한센인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가톨릭피부과의원을 세워 의술을 베풀었다. 프라이싱거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한센포럼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프라이싱거 수녀에게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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