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슬을 마다하고 불교 공부에 힘쓴 자장
590년 신라의 귀족 집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청년 시절부터 불교 공부에 심취한 그는 자장이라는 법명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의 왕은 자장이 똑똑한 것을 알고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장은 불교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선덕여왕 5년(636)에 당나라로 건너갔다. 워낙 출중한 인재였기에 스님으로서 그의 명성은 머지않아 널리 퍼졌고, 당나라 황제마저 그를 공손하게 대접할 정도로 탐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자장 같은 인재가 신라를 위해 일해 줄 것을 바란 선덕여왕은 당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자장을 놓아 달라며 부탁을 하게 된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은 왕에게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탑을 세우자고 제안해, 황룡사구층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또 진덕여왕 때에는 당나라의 연호와 복식제도를 도입하
자고 건의해 시행되도록 하였다.

의상, 당에서 돌아와 신라에 절을 세우다
자장에 이어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또 한 사람의 승려가 바로 신라 불교를 크게 발전시킨 의상이었다. 625년에 태어나 19살에 승려가 된 그는 당나라 유학을 떠났지만 그의 첫 유학길은 신라·고구려 국경에서 고구려군에게 붙잡히며 실패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의상은 당나라로 가서 8년간 공부하고 귀국을 결심했는데, 그때 그는 걸음을 몹시 재촉해 신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당시 당나라의 신라 침략 계획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돌아온 이후 그는 젊은 승려들을 가르치고 신라 백성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는 한편 신라 땅 곳곳에 많은 절을 세워 나갔다. 그 중 특히 유명한 사찰이 바로 676년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에 세운 부석사이다.

중국을 넘어 인도를 여행한 혜초
혜초는 소년 시절인 719년에 당나라로 불법 공부를 떠났다. 중국에서 인도 출신 승려로부터 불교의 한 종파인 밀교를 배웠고, 그 영향으로 인도 여행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불교 성지를 둘러보고 밀교 공부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723년경 마침내 혜초는 인도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4년 동안 인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지역들을 여행하며 자신이 본 것을 『왕오천축국전』으로 남겼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온 혜초는 불경을 번역하고 불교 진리를 탐구하다가 787년 중국땅에서 입적했다. 혜초의 인도 여행은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 중앙아시아와 관련한 대단히 희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