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근대 역사를 담고 있는 도심의 길

 

 

해마다 많은 여행객이 대구를 찾는다. 대구의 여행 프로그램 중에는 2019년까지 3년 연속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것이 있다. 중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골목 투어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중구의 오래된 건축물을 답사하고 길과 골목을 걸으며 대구의 역 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중구 지역은 고대부터 대구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오늘날 조선시대 건축물은 경상감 영공원의 선화당 등 몇 개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말기부터 20세기 초 근대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 여럿 남아 있다. 

 

길과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한 채 저마다 도시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건축물들! 그 건 물, 그 자리에 깃든 대구의 역사는 어떤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인기 있는 골목 투어 코스를 따라가 보자.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

 

3.25km 길이의 코스. 조선시대 행정중심도시였던 대구의 자취와 20세기 초 상업도시 로 빠르게 성장한 대구의 산업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경상감영공원, 대구근대 역사관, 대구의 1950~1960년대를 재현한 향촌문화관, 경찰역사체험관, 20세기 초 대구 최대 번화가였던 북성로, 삼국시대의 토성이 남아 있는 달성공원 등을 볼 수 있다.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1.64km의 이 코스는 볼거리가 특히 많은 곳이다. 서문시장 맞은편에 있는 청라언덕, 선교사주택, 3・ 1만세운동길, 대구 최초의 성당인 계산성당과 제일교회 건물,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이 살았던 집, 대구 약령시 거리 등을 볼 수 있다.

 


 

 

 

제3코스: 패션·한방길

 

2.65km 코스로 동성로와 남성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길이다. 약전골목, 귀금속거리, 대구 최고 번화가인 동성로, 전국 3대 전통시장 중의 하나인 서문시장 등을 볼 수 있다.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4.95km 길이로 ‘젊음과 예술의 거리’를 주제로 하는 길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대구 미술의 중심지인 봉산문화거리,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건들 바위, 대구 유교문화의 중심이 된 대구향교 등을 볼 수 있다. 

 

 

제5코스: 남산 100년 향수길

대구는 서양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가 빨리 전파된 도시였다. 2.12km 길이의 제5코스에선 근대에 세워진 여러 종교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천주교 순교 사적지인 관덕정순교기념관, 오래된 교회인 남산교회, 천주교 사제를 양성한 성유스티노신학교,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떠 만든 성모당,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등이 있다.

 

 

 

 


 

 

골목 투어 코스 가운데 중구 동산동의 3・ 1만세운동길은 특히 많은 관광객이 찾는 코스이다. 계산성당 맞은편의 90개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좁은 길이지만, 대구의 독립운동역사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대구에서 3・ 1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8일 일어났다. 3월 1일의 만세운동은 서울 등 일부 도시에서 일어났고 대부분 지방 도시들은 며칠이 지난 뒤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대구에선 가장 큰 시장인 서문시장이 열리는 3월 8일에 맞춰 일어났다.

 

당시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이들은 대구 지역 종교 지도자와 학생들이었다. 특히 계성학교(현 계성고)와 신명여학교(현 신명고)의 교사와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다. 3・ 1만세운동길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지역 학생들이 일본 헌병의 감시를 피해 만세운동이 일어날 서문시장으로 향했던 길이다. 일부 학생들은 교복 대신 장사꾼 복장으로 독립선언서 낭독이 행해질 장소를 찾았다. 지금의 섬유회관 건물 맞은편에 자리한 시장 터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이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1000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운동 참가자들의 행렬은 곧 대구의 도심을 향했다. 대구경찰서(현재의 경찰역사체험관)~종로~약전골목~달성군청(현재의 대구백화점 자리)을 잇는 거리가 만세소리로 메워졌다. 대구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0일과 30일에도 열렸는데, 이때의 개최 장소는 지금의 염매시장 일대였다.

 

3・ 8 대구만세운동은 지금도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고자 매년 3・ 1만세운동길에서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대구 도심에는 사적 제290호인 계산성당을 비롯해 많은 근대건축물이 보전되어 있다. 그중 몇 곳을 살펴보자. 

 

중구 남산동에 있는 성유스티노신학교(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3호)는 대구 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이던 안세화 주교가 중국인 벽돌공을 동원해 세운 신학교 건물이다. 1913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완공했다. 1층 정면부의 연속된 로마네스크 풍 아치 회랑이 일품으로 꼽힌다.

 

중구 남성로에 있는 교남YMCA회관(등록문화재 제570호)은 1914년에 세워진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대구의 청년들에게 독립의지와 민족정신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웅변대회, 토론회, 강연회 등이 이곳에서 열렸고, 1919년 3・ 1 만세운동 시기에는 대구 지역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만세운동 계획을 의논한 곳이기도 하다.

 

중구 동산동에 있는 제일교회(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는 대구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다. 고딕 양식의 2층 건물은 대구 지역 근대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중구 달성로에 있는 아담스관(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5호)은 계성학교의 건물 중 하나였다. 1908년에 지어졌으며, 1919년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 이 건물의 지하실이었다.

 

 

 

이웃사랑의 본보기가 된 서침


달성공원 안에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나무 이름이 독특하다. ‘서침나무’이다. 서침은 조선시대 초기 대구에 살았던 사람이다. 이 나무에 왜 사람 이름이 붙은 걸까?

 

서침의 집안은 대대로 지금의 달성공원이 있던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그가 살던 집터에 관아를 지으려고 하자 기꺼이 땅을 내놓았다. 나라에서 서침을 칭찬하며 그가 기부한 땅을 대신해 벼슬과 대구 지역의 다른 땅을 상으로 내리려 했다. 

 

이때 서침은 이렇게 청하였다.

 

“제가 상을 받는 대신 금년에 환곡을 빌린 대구 백성들이 내야 하는 이자를 줄여 주

십시오.”

 

환곡이란 조선시대에 정부에서 먹을 것이 부족한 백성에게 식량을 빌려 주던 제도이다. 갚을 때는 이자를 계산해 빌린 것보다 많이 납부해야 했다. 나라에선 서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덕분에 환곡을 빌린 대구 사람들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이 서침의 고마운 뜻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었으니, 그것이 달성공원에 있는 서침나무이다.​

 

 

 

민족종교인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골목 투어 제1코스인 경상감영·달성길을 거닐다 보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종로초등학교를 만날 것이다. 바로 이곳 교정에 ‘최제우나무(회화나무)’가 있다.​ 

 

1824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내건 동학의 창시자였다. 이 민족종교는 머지않아 백성들 사이에 퍼져 갔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최제우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잡혀 간 최제우는 경상감영의 감옥에 갇혔는데, 그 시절 회화나무가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라 생각해서 나무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애국계몽운동 지도자 이동진, 이일우 부자


골목 투어에는 독립운동 흔적 찾기 프로그램도 있다. 우현서루 터와 이일우 고택을 돌아보는 코스인데, 대구의 교육 역사와 관계 있는 유적들이다. 우현서루는 1904년 이동진이 청년에게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고자 개인 재산을 털어서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이동진의 아들 이일우는 아버지가 세운 우현서루를 운영하면서 많은 애국청년을 양성했다. 또 이동휘, 박은식 같은 독립운동 지도자가 우현서루를 방문하기도 했다. 우현서루는 일본에 의해 1911년에 강제로 폐쇄되었다. 그러나 이 터에서 신식학교인 교남학교가 1921년에 개교했는데, 이 학교가 지금의 대륜중・ 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한국 현대문학의 개척자들

 

제2코스인 근대문화골목길로 넘어가 보자. 먼저 두사충이 살다간 뽕나무골목을 만날 수 있다. 또 이곳 계산동에는 근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국채보상운동을 처음 제안한 대구의 기업가 서상돈, 일제강점기 때의 시인 이상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 한국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소설가 현진건이 살았던 집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이들 외에도 여러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들이 계산동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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