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은 어디에나 있다. 도시와 도시, 도시와 촌락을 잇고, 산골마을을 오가게 하며 실핏 줄처럼 뻗어 간다. 옛날에도 지방과 지방을 잇는 길이 있었다. 그중에 경상북도와 다른 지역을 이어 주는 고갯길에는 이런 길들이 있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고갯길, 문경시 계립령(하늘재)
문경시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미륵리 사이에는 계립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우리말로 ‘하늘재’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로, 온달장군, 마의태자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가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제8대 아달라왕 3년(156)에 계립령에 길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계립령은 신라와 고구려가 전쟁을 할 때 군사들이 이동하는 길이 되었다. 고려 말기엔 공민왕이 고려를 침범한 홍건적의 공격을 피해 이 고개를 넘어 경상도로 피란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삼국시대에 전략적 요충지였던 죽령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689m 높이의 이 고개는 문경의 계립령 못지않은 역사를 지녔다. 죽령을 개척한 인물 또한 신라의 아달라왕이었는데, 서기 158년 이곳에 길을 냈다. 죽령은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다. 장수왕 말년인 470년에 죽령은 고구려의 땅이 된다. 그러다가 다시 신라의 영토로 회복된 것은 6세기(551년) 진흥왕 때였다.
이후 신라는 죽령 북쪽으로 땅을 크게 넓혔고, 한강 유역마저 손에 넣게 된다. 죽령 길은 긴 세월 동안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2001년 죽령 아래에 터널이 뚫린 후부터 자동차들은 굽이굽이 산으로 뻗은 도로를 통하지 않고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문경새재의 통행량, 조선의 고개 가운데 으뜸!
조선시대에 영남 지방에서 수도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동래(오늘날의 부산)와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였다. 당시 사람들은 영남대로를 따라 대구–칠곡–선산(구미)-상주–문경을 거쳐 충청도의 충주, 경기도의 안성과 용인을 거쳐 한양으로 향했다. 문경새재의 ‘새재’는 순우리말로 ‘새도 날아 넘기 힘들 만큼 높고 힘든 재(고개)’라는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자 이름도 ‘새 조(鳥)’에 ‘고개 영嶺)’이 붙은 ‘조령’이다. 조령에 길이 난 것은 조선시대 초기였다.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있는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전국의 고갯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이었다. 특히 영남의 선비들이 장원급제의 큰 꿈을 안고 지나던 길이어서 ‘과거길’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후 더 유명해진 고개, 추풍령
서울-부산 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것은 1970년이었다. 이 도로가 생긴 후 전국에 널리 알려진 고개가 서울과 부산의 중간 지점,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 사이에 있는 높이 221m의 추풍령이다.

길 이름을 지을 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 그 지역의 특성이나 장점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이 많고 동해바다를 낀 경상북도에는 각 지방마다 아름다운 길이 있다. 그 중 몇몇 길의 이름에 담긴 뜻을 알아보자.
포항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호미반도는 호랑이를 닮은 한반도 지도에서 꼬리 모양 지역에 위치한 반도이다. 호미의 호(虎)는 호랑이, 미(尾)는 꼬리를 뜻한다. 예로부터 포항 항구의 천연 방파제가 되어준 반도로서 이곳 해안선 58km를 연결하는 트레킹 코스에는 ‘해안둘레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파랑길 & 영덕군 블루로드
‘해파랑길’은 대한민국의 동해안 탐방길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것이다. 해파랑에서 ‘해’는 떠오르는 해를, ‘파랑’은 푸른 바다를 뜻한다. 해파랑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트레킹 코스로, 길이가 무려 770km다. 경상북도의 동해안 해안 길도 해파랑길에 속해 있다. 영덕군에는 동해안을 따라 조성된 트레킹 코스에 블루로드라는 이름을 붙인 길이있다. 푸른 길이라는 뜻의 영어 이름을 지닌 블루로드는 영덕군에 있는 대게공원 에서 출발-축산항구-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64.6km의 길이다.

안동 선비순례길
선비는 옛날에 글공부를 많이 하고 품행이 올바른 사람을 일컫던 말이다. 안동 선비순례길은 안동이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했던 역사를 기념하여 지은 이름이다. 총 9개 구간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넓은 안동호의 풍경, 다양한 유교문화 유적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총길이가 91km에 이르는 길이다.
청송・ 영양・ 봉화의 갸름한 외씨버선길
경상북도 북부에 있는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은 아름다운 산, 맑은 공기와 물로 유명한 청정지역이다. 이런 깨끗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이들 세 지역과 강원도 영월군 지역을 잇도록 조성된 길이 바로 ‘외씨버선길’이다. 볼이 좁고 갸름한 외씨버선처럼 길 모양도 길게 뻗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영양군 출신 시인인 조지훈의 「승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라는 시 한 자락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206년 대구 근처에 있는 경상북도 경산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9살때 집을 떠나 스님이 되었다. 구족계를 받으며 이름을 회연으로 하였는데, 나중에 일연으로 바꾸었다. 절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 일연은 22살이던 1227년 스님들이 치르는 과거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일연은 장원급제에 만족하지 않았다.
“나에겐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많아.”
이렇게 생각한 일연은 고향 근처에 있는 대구의 비슬산으로 내려왔다. 비슬산에 있는 암자에서 수년간 공부한 일연은 고려에서 가장 권위 있고 존경받는 스님이 되었다. 일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국 곳곳의 절을 찾아다니며 불교를 공부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264년부터 몇 년 동안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오어사, 대구의 비슬산 인홍사에서 제자들에게 불교를 가르쳤다. 1277년부터 1281년까지는 경상북도 청도에 있는 운문사에서 불교를 널리 전파하였다. 그 사이 일연은 우리 역사 속 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삼국유사』는 바로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역사서이다.
승려가 된 후 대구・ 경북의 여러 길을 걷고 또 걸었던 일연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도 경상북도에 있는 절이었다. 오늘날 군위군에 있는 인각사라는 절이다. 그가 인각사에 온 것은 군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일연은 인각사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삼국유사』는 고대 한반도에 있었던 여러 나라의 역사, 스님과 불교 문화재 이야기, 전설 등을 기록한 책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