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2년 경상남도 마산에 있는 창신중학교에는 대구 출신의 음악 교사 박태준(1900~1986)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동료 교사인 이은상에게 대구 계성학교에 다니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청라언덕 이야기부터 학창 시절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학생 이야기까지.
“박 선생은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시는 것 같네요.”
이야기를 듣던 이은상의 말에 박태준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대구가 그립고, 나 홀로 좋아했던 그 여학생이 생각나기도 하고….”
노래 하나가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빼어난 문학가이기도 했던 이은상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노랫말을 지었다. 여기에 박태준이 곡을 붙여 탄생한 가곡이 바로 〈동무 생각〉이다. 그중 1절의 가사를 음미해 보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청라언덕은 박태준이 다녔던 계성학교 건너편에 있는 언덕 이름으로, ‘청라’는 푸른 담쟁이를 의미한다. 학창 시절 박태준은 청라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등교했는데 백합 같은 한 여학생을 마주치곤 했던 곳이 그 언덕길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가곡 〈동무 생각〉은 한국음악사 최초의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가 낳은 음악가 박태준은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마산 창신학교와 모교인 대구 계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많은 가곡과 동요를 작곡했다. “뜸북 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국민 동요 <오빠 생각>도 그의 작품이다.
그 후 박태준은 미국에서 합창 지휘를 공부한 후 돌아와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의 합창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구에서 1938년 창단한 지역 최초의 일반 합창단(대구합창협회)을 지휘한 인물도 그였다. 현재 청라언덕에는 청소년 시절의 순수한 그리움을 아름답게 표현한 〈동무 생각〉 노래비가 서 있다.


1912년 대구 남성로에서 태어난 이인성(1912~1950)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보통학교를 마친 후 상급학교 진학 대신 화가 서동진이 경영하는 대구미술사에 들어가 수채화를 배웠다. 17세 때 소파 방정환이 주최한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촌락의 풍경〉으로 특선을 차지하며 천재 소년으로 불리게 된다. 이듬해에는 당시 최고의 경연대회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명성을 굳혔고, 지역화가들의 모임인 ‘향토회’에 가입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재능을 아끼는 이들의 도움으로 이인성은 일본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었고, 이후 조선과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는 화가로 성장하여 〈경주의 산곡에서〉, 〈가을 어느날〉, 〈해당화〉 같은 향토색 짙은 명작을 발표했다. 어떤 미술평론가는 그를 ‘조선의 보물과 같은 화가’라고 평가하였다.
유럽의 회화 사조인 인상파・ 야수파 등의 영향을 받은 그는 수채화와 유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개성 있고 과감한 표현법으로 명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이인성양화연구소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도 힘쓰는 등 대구의 서양화 보급과 발전에도 큰 공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총기 오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여전히 눈부시다. 이인성을 기념하여 매년 대구에선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인 1명의 화가를 선정하여 이인성미술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인성 대표작 감상하기
2019년 11월~2020년 1월 대구미술관에서는 ‘화가의 고향, 대구’라는 타이틀로 ‘이인성 특별전’이 열렸다.
약 20점의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회에서는 〈계산동 성당〉과 〈팔공산〉 등 전시 주제와 어울리는 작품들도 여럿 감상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유명 미술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 대표작 몇 점을 소개한다.

〈경주의 산곡에서〉 1934년,
캔버스에 수채, 71×89.5cm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작품이다. 황토의 붉은색과 파란 하늘의 강렬한 대비, 기와 파편과 첨성대 등 옛 신라의 수도를 상징하는 소재들이 어우러져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을 어느 날〉 1934년,
캔버스에 유채, 96x161.4cm
흔히 고갱의 그림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파란 가을 하늘과 들판 가득한 식물들 가운데 시든 해바라기, 그리고 바구니를 든 여인과 뒷모습의 소녀가 주는 색의 대비가 쓸쓸하면서도 찬란하다. 거칠고 강한 묘사에서 향토색이 느껴진다.

〈계산동 성당〉 1930년경,
종이에 수채, 35.5x45cm
오후의 햇빛 속에 서 있는 계산성당의 풍경을 불투명 수채물감으로 표현했다. 붉고 푸른색이 강조된 가운데 하얀 첨탑이 뚜렷한 대비 효과를 보여 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감나무는 이 그림 때문에 유명해져서 ‘이인성나무’라고 불린다. 계산성당에 가면 그림 속의 나무를 실제로 볼 수 있다.

〈사과나무〉 1942년,
캔버스에 유채, 91×116.5cm
일제강점기에 대구는 사과의 고장으로서 전국적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이인성이 계산성당과 더불어 고향인 대구를 소재로 하여 그린 빼어난 작품이다. 원래 명덕초등학교에 기증되었던 작품으로 현재는 대구미술관에 기탁되어 관리하고 있다. 과거 사과밭이 많았던 산격동에 이인성사과나무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이인성의 작품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음악의 도시 대구엔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대구에 대한민국 최초의 고전음악감상실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1946년에 문을 연 ‘녹향’은 이창수라는 음악애호가가 향촌동 자택의 지하실에 마련한 공간이었다. 축음기와 함께 보유한 클래식 음반의 수는 500여 장.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예술가들이 대구로 몰려들자 녹향은 대한민국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음악 감상 외에 시 낭독회, 출판 기념회 같은 문화행사도 자주 열렸다.
1958년 녹향은 향촌동에서 남일동으로 이전했다. 시간이 흘러 고전음악감상실이 늘어나고 서양 팝송의 인기가 치솟자 녹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경영난으로 이사만 10여 차례나 했음에도 꾸준히 영업을 이어갔다. 2011년 이창수 사장이 작고한 뒤에도 계속 명맥을 유지하던 녹향은 2014년 들어 마침내 폐업을 고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대구의 문화예술인과 시민이 뜻을 모아 ‘녹향 살리기 운동’을 벌였는데, 여기에 감동한 이창수의 유족이 녹향의 자산인 2000여 장의 음반과 축음기 등을 대구시 중구에 기증했다. 덕분에 중구 향촌문화관 지하 1층에서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한 녹향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