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

 

 

일제강점기 때 오늘날 수성구와 남구 대명동 지역 대부분은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들판이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시인 이상화(1901~1943)에게 이 들판은 친근한 곳이었다.  감수성과 상상력이 뛰어났던 그는 이곳을 거닐며 하나의 시상을 떠올렸고, 1926년 잡  지 『개벽』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시작하는 시는 일본에게 나라를  잃은 현실을 ‘빼앗긴 들’에 비유하며, 이곳에 서 있는 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 줄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 이 시는 해방 후에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이자 대구 시민의 자  랑이 되었다. 

 

이상화는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교육자였던 큰아  버지 이일우는 조선 청년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일깨워 준 우현서루를 운영한  인물이었다. 그런 가풍 밑에서 성장한 이상화의 삶이 다를 리 없었다. 1919년 3・ 1 운  동 당시에는 대구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다 적발돼 서울로 피신하는 등 평생 일본의  지배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상화를 ‘민족시인’으로 기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1921년 1월 대구 출신의 젊은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은 『개벽』이라는 잡지에 단편소설 「빈처」를 발표했다. ‘빈처’는 가난한 아내라는 뜻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내가 가난한 것은 다른 직업은 거들떠보지 않고 소설 쓰기에만 열중하는 남편 때문이다.

 

소설의 첫 대목에서 소설가의 아내는 “그것이 어째 없을까?”라고 중얼거리며 옷장 문을 열어 저고리를 찾는다. 그것을 전당포에 잡혀서 아침거리를 장만하기 위해서이다. 형편이 그리 안 좋아도 그녀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남편이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 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말할 때에도 그녀는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라며 격려할 뿐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불리는 「빈처」는 발표 당시까지 무명 소설가였던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소설을 발표한 후 현진건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로도 그는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의 단편소설과 장편 『무영탑』 등을 쓰며 조선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빈처」를 발표할 당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이면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 후 1927년부터는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일했는데,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일로 체포되어 1년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기자를 그만두고 현진건은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조선의 작가들 가운데에는 일본에 우호적인 작품을 쓰지 않으면 생계를 잇기가 힘들어 친일문학가로 변절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현진건은 가난할망정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 형편이 힘들어지자 작품 활동 틈틈이 생계 유지를 위해 집에서 닭을 치면서도 끝내 지조를 꺾지 않았다. 이처럼 참된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현진건이었지만, 아쉽게도 조선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3년 세상을 떠났다.

 

이상화와 현진건 외에도 근대에 활동한 대구 출신 유명 문학가는 여럿이다. 글로 사귄 벗을 문우라고 하는데, 현진건과 이상화는 비슷한 또래인 이장희, 백기만과도 문우사이였다.

 

천재적 재능을 지닌 시인 이장희(1900~1929)는 1924년 발표한 「봄은 고양이로다」로

유명하다. 어느 봄날에 고양이를 관찰하며 쓴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송하고 있다.

 

시인 백기만(1902~1967)은 3・ 1 운동 때 이상화와 더불어 독립운동을 모의했던 문학

가였다. 그는 1951년 생전에 시집을 발간하지 못하고 죽은 친구인 이상화, 이장희를 추

모하며 두 사람의 시를 모아 시집을 펴낸 바 있다. 또 이상화가 죽은 뒤에는 대구 달성공

원에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비를 세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소설가 김원일(1942~ )은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를 다룬 빼어난 소설을 여럿 썼다. 그중 하나가 1988년에 발표한, 대구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인 『마당 깊은 집』이다. 1942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김원일은 소년 시절에 대구로 이사 와 대구시 중구 장관동에 있는 마당 깊은 집에서 살았다. 실제로 소설의 중심 공간이 된 곳이다.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은 몇 년 뒤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 덕에 소설의 배경인 대구의 거리, 대구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원일은 『마당 깊은 집』 발표 후에도 『마음의 감옥』 등 훌륭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마당 깊은 집』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이 집에 모여 살게 된 여섯 가구, 22명의 인물들에 얽힌 사건들을 소년 길남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소설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 누나, 두 명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길남은 돈을 벌기 위해 신문팔이에 나선다. 또 한 명의 주요 인물인 길남의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며 아이 넷을 키우느라 헌신하는 여성이다.

 

소설에는 대구의 여러 거리와 시장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1954년 대구의 풍경이 눈앞에 절로 그려진다. 대구 도심의 교동시장과 종로거리는 물론, 진골목(마당 깊은 집이 있던 골목)의 모습도 눈에 잡힐 듯 생생하다. 현재 종로거리에는 신문팔이에 나선 길남이가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품 등이 있다. 계산성당 근처에는 이 소설을 기념하는 공간인 마당깊은집문학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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