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이 1,192m의 팔공산은 대구를 대표하는 산이다. 신라 사람들은 팔공산을 ‘중악’ 또는 ‘공산’이라고 불렀다. 중악이란, ‘나라(신라)의 중앙에 있는 큰 산’이라는 뜻이다.
신라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는 신이 산다고 생각하는 5개의 산을 성스럽게 여겼고, 특별히 5악이라 불렀다. 5악은 동악(지금의 경주 토함산), 서악(계룡산), 남악(지리산), 북악(태백산) 그리고 중악(팔공산)이었다. 팔공산이 중악이었다는 사실은 팔공산이 있는 대구가 신라 영토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팔공산은 웅장한 산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과 서봉 두 봉우리가 날개를 펴고 있는 것처럼 하늘로 향해 있다. 신라의 법흥왕이 527년 불교를 공인한 후부터 5악 중 하나인 팔공산은 신라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팔공산 곳곳엔 신라의 번영을 빌기 위한 절이 세워졌다. 팔공산에서 꽃핀 찬란한 불교문화는 대구의 문화를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
오늘날에도 팔공산은 대구를 대표하는 자연이요, 산이다. 그래서 대구광역시의 심벌 마크에도 팔공산이 표현되어 있다. 또 대구의 많은 학교 교가에는 ‘드높이 솟은 팔공산’, ‘팔공산 정기 어린’같이 팔공산을 표현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조선의 문학가가 노래한 공산 8경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글을 통해서 팔공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는데, 그중 대구 출신의 문신 서거정이 표현한 공산 8경(팔공산에서 특히 경치가 아름다운 8곳)이 유명하다. 그가 선정한 8경 중 제1경은 무심봉(최고봉인 비로봉의 다른 이름)의 흰 구름이었다. 이 경치를 서거정은 ‘하늘 맞닿은 산 정상에 오르니, 발아래 두둥실 구름 떠다니네’라고 표현하였다. 나머지 7경은 다음과 같다.
제2경 제천단에 내리는 여름 소낙비(제천단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제3경 적석성의 밝은 달(적석성은 팔공산 군위 방면에 있는 성이다.)
제4경 백리령에 쌓인 눈(백리령은 가산산성에서 갓바위까지 동서로 뻗은 능선이다.)
제5경 금병장의 단풍(염불적봉 아래 병풍바위의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제6경 부도암의 폭포(부도암은 동화사에 속한 암자이다.)
제7경 약사봉의 새벽별(약사봉은 갓바위가 있는 봉우리이다.)
제8경 동화사의 종소리(깊고 맑게 울리는 종소리는 귀를 기울이면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팔공산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는 동화사 외에도 산 곳곳에 문화재가 있다. 문화재 종류도 다양하다.
천년의 역사를 넘긴 팔공산의 여러 절
팔공산에는 493년에 세워진 동화사 외에 천년 역사를 넘긴 오래된 절이 여럿 있다. 은해사는 809년에 세워진 절로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을 대표하는 큰 절이다. 보물제1270호인 괘불 탱화, 대웅전 아미타삼존불 등 수많은 문화재 말고도 조선 후기의 명필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된 편액을 5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파계사는 팔공산 서쪽에 있는 절로 804년에 창건되었다. 파계사라는 절 이름은 팔공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아홉 갈래의 물줄기를 한 곳으로 모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공산 남쪽에 있는 부인사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절이다. 고려시대에 이 절에 대장경을 만들어서 보관하였기 때문이다. 부인사의 대장경은 몽골의 침략 때 소실되었다. 또 부인사는 선덕여왕을 모신 숭모전을 두고 해마다 선덕여왕숭모재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칠곡에 있는 송림사는 544년에 세워진 오래된 절이다. 이곳엔 벽돌로 만든 5층탑(보물 제189호)이 있는데, 1959년 탑 복원공사를 할 때 탑 속에서 사리를 모신 장엄구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국보로 지정된 영산전 & 삼존석굴
은해사는 팔공산 동쪽 자락인 영천 지역에 있는 절이다. 은해사에 속한 암자인 거조암에는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영산전이 있다. 거조암의 중심 건물인 영산전은 526구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어 유명하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고려말, 조선초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팔공산은 대구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여러 지방에 뻗어 있다. 그중 하나인 경상북도 군위군에는 국보 제109호인 삼존석굴이 있다. 지상 6m 높이의 암벽을 뚫어 만든 인공석굴 안에 세 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관봉 석조여래좌상(갓바위)

임진왜란 때 팔공산에서 의병을 이끈 사명대사 유정
1544년 태어난 유정은 1559년 오늘날 경상북도 김천시에 있는 직지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유정은 승려들로 이루어진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본에게 빼앗긴 평양성을 되찾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때 유정이 지휘하던 승병 부대는 한때 본부가 동화사에 있었다. 유정은 조선 정부군의 지휘자, 대구의 의병 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대구를 지키는 데 힘썼다. 또 유정은 전쟁이 끝난 후인 1604년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군이 끌고 간 조선인 포로 3000여명을 무사히 데려오는 공로를 세웠다.
팔공산에서 왕건의 목숨을 구해준 장수 신숭겸
927년 팔공산에서는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휘하는 군대가 격돌했다. 후백제의 승리로 끝난 이 전투에서 위기에 처한 왕건을 살린 것은 신숭겸과 김락 두 명의 부하 장수였다. 왕건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두 장수는 고려시대에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왕건은 신숭겸을 추모하여 팔공산에 지묘사라는 절을 세워 신숭겸의 명복을 빌었다.
오늘날 팔공산에 있는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대구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