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치가 빼어나 이름난 산을 명산이라고 한다. 대구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에 걸쳐 있는 1,084m의 비슬산은, 고려시대의 승려인 일연 이야기와 함께 한국 최대의 참꽃군락지가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비슬산과 일연의 『삼국유사』
고려와 조선시대에 비슬산은 포산이라고 불렸다. 고려시대인 1227년, 한 승려가 이 산에 왔다. 그는 얼마 전 고려의 수도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에서 열린 승려 과거에서 1등으로 합격한 일연이었다. 그가 개경을 떠나 포산에 온 이유는 불교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였다. 일연은 오랫동안 비슬산에 있는 절과 암자에 머물면서 수행을 열심히 하였다.
당시 고려의 백성은 1231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연은 오랜 전쟁에 지친 고려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후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부터 불교 이야기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진 역사책 『삼국유사』는 1281년경 완성되었다.
『삼국유사』는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권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연표다. 2권은 고조선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고려 등 한반도에 있었던 여러 나라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3권과 4권은 불교 발전에 업적을 남긴 승려와 불교 문화재 이야기, 5권은 유명한 승려들의 행적과 효자 효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봄날의 참꽃, 가을날의 갈대가 다 아름다운 비슬산
비슬산에는 용연사, 유가사처럼 역사가 오래된 절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그와 함께 비슬산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해마다 봄이면 비슬산 정상을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참꽃 군락지가 유명하다. 대구 사람들은 이곳을 ‘진분홍의 천상화원’이라고 자랑할 정도인데, 이 멋진 봄 풍경을 보기 위해 매년 약 10만 명 정도가 비슬산을 찾는다. 봄 풍경이 다가 아니다. 산기슭과 능선을 따라 억새가 물결치는 가을 비슬산의 모습도 놓칠 수 없다. 여름은 여름대로 매력적이다. 여름 비슬산의 매력은 하루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해발 1,058m의 조화봉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높은 봉우리가 둘러싼 곳에 들어서 있어서,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숲속 휴식 공간이다.


대구 학생들이 소풍을 많이 간 앞산
비슬산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은 곳에 높이 660m의 산이 솟아 있다. 대구 사람에게 팔공산 못지않게 친근한 산인 앞산이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대구 지도에 전산(前山, 앞산)이 등장한 뒤 그대로 굳어져 쓰인다는 설과 조선시대부터 경상감영 앞쪽에 있다 하여 앞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성불산이라고도 불렀다.
1971년에 앞산공원이 조성되었다. 고산골, 안지랑골, 용두골 같은 경치 좋은 곳이 많아, 과거 대구 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였다. 지금은 앞산전망대를 비롯해 빨래터공원, 해넘이전망대, 케이블카 등이 설치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돌거북 전설이 전해 오는 연귀산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 있는 대구제일중학교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바위 속 거북이 머리는 앞산이 있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고, 꼬리는 팔공산이 있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이 바위가 있는 산이 연귀산이다. 연귀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대구의 진산(그 고장을 지켜 준다고 믿었던 산)으로 우러러보던 산이었다. 연귀산에 있는 거북바위는 대구에 처음 도시가 형성될때 지맥(산맥의 원줄기에서 갈려 나간 줄기)이 잘 통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의 격전지였던 용암산
용암산은 팔공산과 금호강 사이로 뻗어 내려가는 북서-남동 방향의 산줄기 중간에 솟아 있는 높이 367.7m의 산이다.
용암산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처음 세워졌다는 둘레 약 1,300m의 용암산성(대구광역시기념물 제5호)이 있다. 다소 평평한 정상에 비해 동서 양쪽이 급경사를 이루는 산세인데, 이곳에 산성이 세워진 이유는 용암산이 대구에서 경산–경주–포항을 잇는 길목에 있고, 넓은 지역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용암산성은 임진왜란 때 대구의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싸웠던 전적지이다. 성 안에는 옥천이라는 샘이 있다. 대구의 의병들이 왜군에 굳세게 저항하며 싸우자 왜군은 용암산성에 이르는 길을 막고 지구전을 벌였다. 시간이 흘러 산성에 물이 부족해지자 의병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산성 안의 땅을 팔 지경에 이르렀는데,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어느 순간 파내려 가던 땅 아래에서 시원한 물이 용솟음치듯이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대구 시내를 흐르는 하천인 신천의 발원지는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비슬산 지역이다. 산에서 시작된 냇물은 하류로 흘러 비슬산 근처 백록마을을 지나, 녹동서원이 있는 우록마을을 지나서 수성구 지역으로 흘러간다.
수성구 파동을 지나면서 신천은 대구의 중심 지역에 가까워진다. 신천의 다리를 통과하는 자동차와 사람의 숫자도 늘어난다. 상동교, 중동교, 대봉교, 침산교 등 신천의 다리 이름은 신천이 지나는 주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많다.
칠성시장 근처인 칠성교를 지나면서 신천은 하류에 가까워진다. 몇 개의 다리를 지나친 신천의 물은 신천의 마지막 다리인 대구시 북구 침산교를 지나 금호강에 합류한다.금호강은 경상북도 포항 지역의 산에서 발원하여 영천시, 경산시를 거쳐 대구로 흘러드는 강이다. 금호강은 신천뿐만 아니라, 팔공산에서 발원한 불로천, 대구시 서구를 흐르는 달서천 등 대구의 여러 하천 물을 받아들이며 대구의 북쪽을 지나 서쪽을 향해 흐른다.
금호강이 끝나는 지점은 대구시 달서구 성서 지역과 화원읍에 있는 달성습지이다. 이곳에서 금호강은 낙동강과 합류해 경상북도 고령군을 거쳐 경상남도 여러 지역을 적신 뒤 남해바다에서 긴 여행의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