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2년 영남일보는 〈대구시민의 노래〉 가사 공모 사업을 하였습니다. 최우수에 해당하는 금상의 상금은 20만 원이었는데, 당시 화폐가치를 생각하면 큰 금액이었습니다. 1955년 심사 결과 금상으로 뽑힌 작품은 백기만이 쓴 가사였습니다. 이후 작곡 부문도 공모한 결과 유재덕의 곡이 선정되었고, 1955년 12월 합창단의 실연을 통해 ‘대구시민의 노래’가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대구시민의 노래〉는 이듬해인 1956년 4월 14일 대구코러스의 창립 공연 때 시민들에게 최초 공개되었습니다.
대구시는 196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유명 가수를 섭외하여 음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작사가인 백기만은 청년 시절에 현진건, 이상화와 함께 문학활동을 하며 문집 〈거화〉를 펴냈고, 1967년 타계할 때까지 대구문학 발전에 힘썼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0년 대구에서 김화수, 청년과 부인 위해 야학교 설립
197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