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이듬해인 1946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이 가시화된 해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신탁통치 문제를 두고 남과 북,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2월에는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사회운동단체이자 정치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어 3월에는 북한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토지개혁을 단행하였고, 같은 달에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지만 5월 미소공동위원회는 무기 휴회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5월 11일 대구 키네마구락부에서 열린 독립촉성부민대회는 남한에서라도 먼저 독립국가를 세우자는 결의를 한 행사였습니다. 부민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당시 대구의 명칭이 ‘대구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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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도 인구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10억명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