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는 2명의 이시영이 있습니다. 1869년 서울에서 태 어난 이시영과 188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시영입니다. 이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시영은 그의 호인 우재(又齋)를 붙여 ‘우재 이시영’이라 고 부르곤 합니다. 우재 이시영은 1914년 베이징으로 망명한 후 항일 무력 봉기를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활약하던 중 애국단사건으로 대구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 렀습니다. 또 안희재, 박상진, 서상일 등과 광복단 활동을 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 후에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습니 다. 앞산 낙동강승전기념관 옆에는 1972년에 건립된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 이 있습니다. 이시영의 아들인 아동문학가 창주 이응창은 1955년 원화여고 초대 교 장을 역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5년 영남체육회 창립
1951년 38선 정전반대 국민총궐기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