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사람은 출판사인 광문사 사장 김광제 와 부사장인 서상돈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국채보상회를 조직하고 조선 사람들의 참여를 호소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서울에서 발간되던 <대한매일신보>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이후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김광제는 조선이 일 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 이후에도 강연활동을 하였고 경상남도 마산에서 <마산문 예구락부>를 발간하였습니다. 1920년에는 3·1운동 1주년을 맞아 동경유학생들과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였고, 그해 7월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1990년 김광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김광제의 고향 인 충청남도 보령에서는 해마다 그의 삶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7년 사회주의 계열 단체인 대구청년동맹 결성대회
2014년 국가지명위원회의, 비슬산 최고봉을 천왕봉으로 바로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