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6년 조선 정부는 전국을 13개의 도로 나누었는데, 그중 한반도 남부(충청·전 라·경상)와 북부(평안·함경)의 5개 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만들었습니다. 각 도의 수령은 관찰사라 칭하였습니다. 1905년 경상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용익은 보부 상 출신으로 1882년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황후)를 안전하게 피신시킨 일이 계기가 되어 출세한 인물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무렵 친러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용익은 일본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귀국 후 경상북도 관찰사로 임명되었는데 대구의 일본인들 과 친일파 단체인 일진회의 견제와 저항을 받아 부임 3개월 만에 관찰사에서 물러 났습니다. 이용익의 사임은 당시 대구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텃세가 얼마나 심했는 지알수있는사건입니다.
오늘의 역사
1933년 대구노동자협의회(준비회) 사건으로 기독교인 22명 검거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