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관찰사에 이용익 임명
[02.17]경상북도 관찰사에 이용익 임명

1896년 조선 정부는 전국을 13개의 도로 나누었는데, 그중 한반도 남부(충청·전 라·경상)와 북부(평안·함경)의 5개 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만들었습니다. 각 도의 수령은 관찰사라 칭하였습니다. 1905년 경상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용익은 보부 상 출신으로 1882년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황후)를 안전하게 피신시킨 일이 계기가 되어 출세한 인물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무렵 친러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용익은 일본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귀국 후 경상북도 관찰사로 임명되었는데 대구의 일본인들 과 친일파 단체인 일진회의 견제와 저항을 받아 부임 3개월 만에 관찰사에서 물러 났습니다. 이용익의 사임은 당시 대구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텃세가 얼마나 심했는 지알수있는사건입니다.

 

오늘의 역사​ 

1933년 대구노동자협의회(준비회) 사건으로 기독교인 22명 검거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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