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 청소년 교양잡지 <학원> 대구에서 창간
한국전쟁 시기에 대구에서는 새로운 출 판사가 설립되거나, 새로운 잡지가 창간 되었습니다. 1952년 11월 1일 대구에서 창 간된 <학원>은 청소년 교양잡지였습니다. 1961년 9월호까지 통권 92호를 발행하고 휴간했다가, 1962년 3월에 다시 발행하여 1979년 9월호까지 통권 293호를 내고 종간했습니다. <학원>에는 독자의 문학작품을 싣는 ‘학원 문단’ 이 특히 유명했습 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작품을 투고하였고, 심사를 통과해 학원 문단에 작품이 실 린 사람 중에서 훗날 유명한 시인, 소설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독자의 증가로 <학원>을 발간하던 기업은 큰 성공을 거뒀고 이 기업은 수익금으 로 장학사업을 하여 많은 ‘학원장학생’을 배출하였습니다. <학원> 외에도 1970년 대에 한국에는 청소년 잡지가 여럿 있었는데 <진학>, <여학생> 같은 잡지도 독자 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역사​​1917년 대구-하양 간 철도 노선 개통2018년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설립 (구 대봉도서관 확장·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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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시인 이장희 타계
1924년 문학잡지 금성에 젊은 시인 이장희의 작품 <봄은 고양이로다>가 발표 되었습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 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시는 고양이의 특징을 잘 묘사한 빼어난 작품이었습니 다. 이 작품으로 이장희는 크게 주목받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이장희는 1900년 대 구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시인으로 촉망받은 것은 갓 25살 때였습니다. 그런데 안타 깝게도 이장희는 1929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작품 은 약 30점으로 많지 않습니다. 1951년 대구 출신 문학가 백기만은 대구에서 함께 자라며 우정을 나누었던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를 추모하는 시집 『尙火와 古月』(상화와 고월)을 펴냈습니다. 책 제목에 있는 ‘고월’은 이장희의 아호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7년 만경관에서 제1회 서라벌가요제 시상식 및 기념공연 1996년 전남 나주에서 영·호남 한마음 음악회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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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대구 고등학교 연합 문학동인 회귀선 창립
1960년대 대구 지역 여러 고등학교에는 문예부가 있었습니다. 각 학교 문예부 학생들은 백일장에 자주 참여하여 다른 학교 학생들과 우정을 나누었는데, 1968년 몇몇 학교 학생들이 문학 동인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문학 동아리입니다. 참여 학생들은 문학 동인 이름을 ‘회귀선’(回歸線)으로 정하고 대구 교육회관에서 창립기념 문학의 밤 행사를 열었습니다. 초창기 회귀선에는 경북고, 계성고, 대륜고, 대구고, 영남고, 대구상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원화여고, 제일여상 등의 문예반 학생이 참여하였습니다. 학생들은 『회 귀선』이라는 제목의 작품집도 발행하였습니다. 회귀선에 참여한 학생 중 훗날 여 러 사람이 신춘문예 당선 등을 통해서 시인, 소설가로 데뷔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8년 김진균 제1회 작곡발표회가 대구 미국 공보원에서 열림2010년 대구시, 대만 타이베이시와 자매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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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 영화배우 신성일 타계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영)은 1937년에 태어나 대구에서 수창초등학교와 경 북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60년 영화사 ‘신필름’의 신인배우 모집에 뽑혀 <로맨스 빠빠>라는 작품에 출연하여, 데뷔하자마 자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미남 배우로서 대중의 큰 사랑을 받 았던 그는 500여 편의 작품에 대부분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대표작품에는 <맨발 의 청춘>, <별들의 고향> 등이 있습니다. 또 신성일은 1971년부터 직접 감독을 하기도 했는데, 그가 감독한 작품으로는 <어느 사랑의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그는 원로배우가 된 후에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고, 1989년에는 자신이 영화사를 설립하며 몇 편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 는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영화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0년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 타계1992년 제1회 대구 교육감기 타기 빙상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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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제1회 경북물산공진회 개최
일본은 1910년대에 조선이 일본의 지배로 발전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해 지방 여러 도시에서 물산공진회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1913년 열린 경북물 산공진회는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생산되던 농수산물과 제품을 한 자리에 모아 전 시하는 행사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박람회 같은 행사였습니다. 경북물산공진회 는 1913년 11월 5일부터 19일까지 대구에서 열렸습니다. 이어서 조선총독부는 1915년 전국 규모의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습니다. 이 행 사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 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행사로, 경복궁에서 50일간 열렸 습니다. 조선총독부는 행사를 핑계로 경복궁 내 여러 시설을 훼손하였습니다. 나중 에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던 경복궁 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6년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이론 발표1953년 남전 대구지점에서 오후 6~8시까지 가정송전 실시 (당시 야간송전 중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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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뜨거운 땅> 제13회 전국연극제 4개 부문 수상
1995년 인천에서는 제13회 전국연극제가 열렸습니다. 전국연극제는 1983년 지 역 연극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행사로 매년 열리는 행사였습니다. 1995년 전국연 극제에서 극단 ‘달구벌’은 창작희극 <뜨거운 땅>(최현묵 작, 이상원 연출)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뜨거운 땅>은 1884년부터 1919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국 채보상운동이 줄거리 전개에 중요한 계기로 등장합니다. <뜨거운 땅>은 대구 지역 연극인 32명이 출연한 대작이었습니다. 전국 14개 시도 대표극단이 경연을 펼친 이 연극제에서 <뜨거운 땅>은 가장 큰 상인 대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1996년 <뜨거운 땅>은 서울에서 열렸던 제20회 서울연극 제에 초청을 받아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9년 대구와 춘천 잇는 중앙고속도로 건설공사 착공2009년 민족문제연구소 전 3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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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대구 무술명 오작비 보물 제516호로 지정
현재 경북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구 무술명 오작비는 1946년 대구에서 발견 된 신라시대 비석입니다. 이 비석을 발견한 사람은 유명한 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임창 순이었습니다. 그는 대구시 중구 대안동 거리를 걷다가 어느 집 앞에서 이 비석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한문 실력이 뛰어났던 임창순은 비석에 새겨진 글을 판독하여 그것이 신라시대 비석임을 밝혀냈습니다. 이 비석은 처음엔 대구사범학교에 보관하였는데 한국전쟁기에 행방불명되었다 가 나중에 학교 수영장 부근에서 발견하여 경북대학교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였 습니다. 이 비석은 518년 또는 57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영동리촌 이라는 마을에 저수지 제방을 만든 뒤 세운 것으로 제방 축조 날짜 등 여러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1969년 보물 제5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0년 이방자여사, 불우아동돕기 ‘칠보전’ 개최(~11.9) (경북산업개발센터)2002년 경북대에서 ‘지방분권국민운동’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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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대구의 영화사가 만든 첫 작품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 개봉
1930년 대구에는 녹성키네마라는 영화제작사가 있었습니다. 그해 녹성키네마는 첫 작품으로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을 제작했습니다. 양철 감독이 만든 영화로, 나웅, 서월영, 김연실, 박제행 같은 배우가 출연했습니다. 포항 등 동해안 일대에서 2개월간 촬영한 이 영화는 대구에서 설립된 영화사가 최초로 제작한 영화로, 그해 11월 8일 서울 종로 2가에 있던 조선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는 여러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대구 출신의 영화감독인 이규환은 1932년 낙동강의 사문진나루터에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를 촬영했 습니다. 1933년에는 대구영화촬영소가 <종로>라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 에는 당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나운규가 주연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이 ‘X선’ 방사선 발견2019년 대구시, 프랑스 릴(Lille) 시와 우호협력도시 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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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2021 대구건축비엔날레 개막
2010년 대구에서는 건축 관련 6개 단체가 뜻을 모아 만든 단체인 대구건축문화 연합이 대구건축문화비엔날레를 개최했습니다. 그 후 건축을 주제로 2년마다 열린 대구건축비엔날레는 내실 있는 건축문화 축제로 발전하였습니다. 제6회 대구건축비엔날레는 2021년 11월 9일 개막하였습니다. 2021년 대구건축 비엔날레의 주제는 ‘환상 도시, 환상 건축’이었습니다. 13일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 서 열린 비엔날레에서는 특별기획 전시, 일반 전시, 시민참여 문화행사, 학술행사 4 개의 영역에서 13개의 건축 관련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중 시민참여 문화행사로는 대학생들이 참여해 건축 지식을 겨루는 ‘도전! 건축 골든벨’, 초등생들이 꿈꾸는 미 래학교를 그림으로 표현한 ‘어린이 건축학교’와 같은 재미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7년 대구상공협회 설립 총회1989년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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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대구시 미국 애틀란타시 최초로 자매도시 결연
대구시가 외국 도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은 것은 1981년부터였습니다. 그해 11 월 10일 대구시는 애틀랜타와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에 있는 조지아주의 주도(州都)로, 미국의 10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대 구시는 세계 많은 도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하였습니다. 현재 대구의 자매 및 우호도시는 12개국 25개인데, 이 중 자매도시는 카자흐스탄 의 알마티, 중국의 칭다오, 청두, 닝보, 브라질의 미나스제라이스주(州), 일본의 히 로시마,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 대만의 타이베이, 이 탈리아의 밀라노, 미국의 밀워키, 베트남의 다낭 시 등입니다. 해외 자매도시가 많 다는 것은 대구가 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 ​1904년 서울-부산 간 경부선 철도 완공2000년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당진시를 잇는 서해대교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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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섬유산업, 단일 업종 최초 100억 불 수출 달성
1960년대부터 한국 정부는 수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적극 추 진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의 수출을 선도한 산업은 섬유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11월 11일 한국 섬유산업은 단일 업종으로는 최초로 수출 100억 불을 달성하였습 니다. 이를 기념하여 정부는 11월 11일을 ‘섬유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섬유산업의 도시 대구는 섬유산업 수출 100억 불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 습니다. 섬유산업은 대구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섬유산 업 도시답게 대구에는 섬유회관, 섬유박물관 등 섬유관련 시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1년 대구공회당 개관1992년 한국에서 첫 심장이식 수술 이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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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디자이너 박동준 타계
여성 패션 디자이너 박동준은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구의 1세대 패션 디자이너인 박동준은 1972년 대구에서 패션숍 ‘코코 박동준’을 오픈하였고, 1973년 첫 개인 패션쇼를 가진 이후 40여 년 간 패션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또 세계패션그룹 한국협회 회장,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패션산업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박동준은 문화운동,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시인 이상화를 기리는 이 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했으며, 2008년에는 ‘아름다운가게’ 대구·경북 및 전국 공동대표를 맡아서 사회에 봉사하였습니다. 2020년 대구에서는 박동준의 뜻 을 기리기 위한 박동준기념사업회가 발족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0년 미국의 태양계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 토성근접촬영2016년 서울 광화문에서 최대 규모 촛불집회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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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대구 최초 대구∼영천 역전경주대회 열림
역전경주(驛傳競走)는 장거리를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몇 사람이 한 팀을 이 루어 자신이 맡은 구간을 달리는 경주입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전국 여러 도시에 서 역전경주대회가 열렸습니다. 대구에서 처음 역전경주대회가 열린 것은 1949년 이었습니다. 1945년 창간된 영남일보는 신문 발행 외에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는데, 그중 하나가 대구에서 처음 연 대구∼영천 역전경주대회였습니다. 1923년 한강 인도교의 준공기념으로 열린 최초의 경인역전경주대회 이후 오늘 날에도 역전경주대회는 열립니다.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역전경주 대회도 있습 니다. 대표적인 대회가 경주에서 열리는 대회(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로 이 대회는 2019년에 제35회를 맞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884년 우정총국에서 최초의 우표 발행1970년 노동운동가 전태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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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제1회 세계 솔라시티총회 대구에서 열림
신재생에너지는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을 함께 도모하는 녹색성장에서 무척 중요 한 분야입니다. 정부는 2004년 ‘신재생에너지 개발 원년’을 선포했는데, 이 해에 대구 전시컨벤션센터에서는 태양광을 주제로 하는 제1회 세계솔라시티총회였습니 다. 이 총회에는 일본과 스웨덴 등 12개국 19개 도시 시장 및 환경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총회기간 동안 대구에서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학술논문 발표대회와 그린에너 지 엑스포 등 다양한 지구살리기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또 국채보상운동기념공 원에서는 대구에너지시민연대가 주최한 인라인·자전거 대행진이 1000여 명의 동 호인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7년 박정희(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경북 구미에서 출생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마감,방송 통해 1만189 이산가족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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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대구 도로개설위원회 설치
일본인들은 1905년 이후 대구에 많이 진출했습니다. 당시 외국인은 대구읍성 내 에 거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대구 중심가 진출에 방해되는 대구읍 성을 파괴하고 대구의 상권을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친일파였던 대구군수 박중양을 앞세워 대구읍성 철거를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1906년부터 대 구읍성을 훼손하기 시작했고, 1907년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대구읍성 철거를 추진하던 1906년 대구에는 도로개설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 다. 대구읍성이 철거되자 일본인들은 그들의 상업 활동에 최대한 유리하게 대구 도 심에 새로운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1909년이 되었을 때 파괴된 대구읍성의 동·서· 남·북에는 새로운 길이 나, 대구 중심지의 풍경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7년 대구 고등학생들이 비밀결사 항일조직 신우동맹 결성1983년 대구어린이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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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대구우체사에서 대형 전기시계를 외벽에 내걸다
우리나라에 우체국이 처음 생긴 것은 1884년(고종 21)이었습니다. 이 해에 한양에 우정총국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1895년 지방 주요 도시에 우편 업무를 담당하는 우체사라는 관청이 생겼는데, 대구에도 1895년에 경상감영 안에 대구우체사가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우체사가 우체국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1949년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열차, 버스 등의 교통수단이 늘어나면서 시계는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열차나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출발, 도착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시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1925년 11월 16일 대구우체사에 큰 벽시계가 걸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9년 종합주가지수 1000 포인트 돌파2003년 경북대 임승규 교수팀, 경남 사천에서 세계 최대 공룡발자국 화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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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을사늑약 체결
일본은 1876년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후 후 조선 진출을 본격화했습니다. 조선은 1897년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이를 계기로 약 해진 국력을 되살려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905년(을사년) 11월 17일 청나라, 러시아와 벌인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을 위협하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을사년에 체결된 이 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늑약’이란 강제로 맺은 조약을 뜻합니다. 조선의 백성들은 을사늑약 체결 과정에서 일본에 협력한 대 한제국 대신 5명을 ‘을사5적’이라고 규탄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병합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869년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개통2003년 대구광역시 교육정보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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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대구공립고등여학교(현 대구일중학교) 설립 인가
대구에는 100년 역사를 넘긴 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있는 대구일중학교도 그중 하나입니다. 대구일중학교의 역사는 1915년 11월 18일 대구 공립고등여학교 설립 인가를 받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 4월 동인동에 있 는 교정에서 대구공립고등여학교 개교식이 열렸습니다. 1946년 대구공립고등여학 교는 대구여자중학교로 학교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1984년 대구여자중학교는 북구 침산동으로 이전하였고, 2002년 학교 이름이 대 구여자중학교에서 남녀공학인 대구일중학교로 바뀌었습니다. 대구일중학교에서 는 2018년 제100회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이때 누적 졸업생 수는 39,926명이었습 니다. 오늘의 역사​ ​1936년 대구변호사회 설립인가1998년 금강산 관광 1호선인 현대금강호가 동해항 출발 첫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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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정조가 대구에 살던 박광구에게 벼슬을 내리다
1453년 수양대군은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단종의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 한 후, 1455년 조선의 7대 왕(세조)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러자 일부 신하들이 세 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은 한 신하의 배신으로 발각 되었습니다. 세조는 단종 복위 시도에 참여한 주모자 6명을 처형하였는데, 이때 죽 임을 당한 6명의 신하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입니다. 훗날 이 6명을 사육신이라고 했습니다. 세조가 죽고 시간이 꽤 흐른 후 사육신은 절개를 지킨 사람들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798년 정조 임금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으로, 당시 대구에서 살고 있던 선비인 박광구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28년 대구 신명여학교 학생들 일본에 저항하는 동맹휴학1987년 삼성그룹 창업한 기업가 이병철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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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이일우 환갑축의금으로 옷 150벌 구입해 기부
1904년 대구의 부호 이동진은 사재를 털어 우현서루를 세웠습니다. 오늘날 대구 의 북성로 지역에 세워진 우현서루는 민족지사 양성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이었습 니다. 이동진의 아들 이일우는 아버지에 이어 우현서루를 운영하였습니다. 많은 책 이 있어서 신지식의 보급과 항일 지식인의 양성소 역할을 하였던 우현서루는 일본 의 탄압으로 1911년 강제 폐쇄되었습니다. 그는 대구에서 처음 국채보상운동이 일 어났을 때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1930년 이일우는 환갑잔치 때 들어온 축의금으로 옷 150벌을 구입하였고, 이것 을 대구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이일우는 노블 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제1회 ‘대구직할시 미술대전’ 개최(~12.5)1982년 독도, 천연기념물 336호(독도해조류번식지)로 지정(1992년 천연보호구역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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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극단 혁명극장 창립 작품 <번지 없는 주막> 공연
오늘날 한국에는 연극과 영화 두 분야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 다. 한국 연극 영화 초창기였던 1920년대에도 두 분야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있 었습니다. 1900년에 태어난 박제행도 그랬습니다. 그는 연극운동단체인 토월회에 연습생으로 가입하면서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는 꾸준히 무대에 올랐습니다. 영화배우로서는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1930)에 출연한 데 이어, 우리나라 최 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1935)에서 주인공 이몽룡 역을 맡으며 유명해졌습니다. 영화배우가 된 후에도 연극 활동을 병행했던 그는 1945년 동료 연극인들과 함께 극단 혁명극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혁명극장 창립 작품인 <번지 없는 주막>을 대구에 있는 키네마구락부 무대에 올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8년 주민등록증 발급 시작 1972년 제7차 개헌안(유신헌법)국민투표 실시 (가결로 제 4공화국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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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신석기시대 석검, 석촉 대구중학교 교정에서 발굴
대구 지역에 최초로 인간이 거주하기 시 작한것은대략2만년전으로추정하고있 습니다. 달서구 월성동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구 석기시대에 이어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었 습니다. 아마도 신석기 시대에 대구에 거 주하는 인간은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대구에서는 일 본의 고고학자들이 대구의 선사시대 유물을 발굴하였습니다. 당시 대구 남구 지역 에는 돌로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편평한 돌을 얹은 선사시대 무덤인 지석묘가 많 이 있었는데, 일본 학자들은 1930년대에 지석묘 발굴 작업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 1938년 11월 22일의 신문보도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인 학자들 은 대구중학교 교정에서 신석기시대의 석검, 석촉(돌로 만든 화살 촉)을 발굴하였 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43년 미국, 영국, 중국 정상이 카이로회담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의 독립 보장함1957년 대구시 남일동에서 제일극장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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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인 ‘문예부’ 결성
2021년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권쾌복·배학보·유흥수 세 사람을 2021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대구사범학교에서 만들어 진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대구사범학교에서는 1940 년 11월 23일 독서회 비밀결사 조직인 ‘문예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문예부와 별도로 조선의 독립에 대비해 학문을 연구해서 실력을 양성하기 위한 조직인 ‘연구 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941년에는 16명의 학생들이 유흥수의 하숙집에서 집회를 열고 문예부와 연구 회를 발전적으로 확대 개편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을 만들었습니다. 다혁 당은 얼마 후 일본 경찰에 발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35명이 재판에 넘겨져 최 고 8년 최하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5년 동촌공립보통학교 개교1998년 경주시에서 제 2안압지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대규모 인공연못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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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정조 영남 23개 고을의 조세를 줄이는 윤음을 내리다
농업국가였던 조선에 흉년은 전쟁 다음가는 큰 재난이었습니다. 조선 정조 때인 1794년 영남지방(경상도 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때 정조는 영남 23개 고 을의 조세를 줄이라는 윤음(왕의 말씀)을 내렸습니다. 당시 흉년으로 고통 받던 경 상도 고을 중에는 대구, 경산, 자인, 현풍, 하양, 칠곡이 있었습니다. 이때 정조는 이 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가 너희들(백성들) 보기를 자식처럼 여겨 볕이 날 때나 비가 올 때나, 추울 때 나 더울 때나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었으며, 자나 깨나 생각에서 떠나지 않아 잊고 자 하여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희들이 아니면 누구를 의지하며 너희들은 내 가 아니면 누구를 믿겠는가.” 이 말에서 정조가 백성을 참으로 아낀 군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59년 다윈이 쓴 신화에 관한 저서 <종의 기원> 출간1983년 대구광역시립 북부도서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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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대구시립교향악단 발단식
1957년 연주단체인 대구현악회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큰 교향악단을 운영하는 데는 재정적인 부담이 컸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구현악회는 그후 해체되 어 대구관현악단, 대구방송교향악단으로 개편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대구의 음악인들은 안정적인 연주활동을 위해 대구시가 운영하는 대구시립교향 악단 창단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1964년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이 성사되 어 그해 11월 25일 발단식을 가졌습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초대 상임지휘자 이 기홍의 지휘로 1964년 12월 첫 창단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교향악 단으로 창단 후 지속적으로 정기연주회를 열어 온 대구시립교향악단은 2021년 11 월 ‘제479회 정기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정책으로 영남일보가 매일신문에 통합1988년 한국 등 9개국, 남극협정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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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대구 지하철시대 개막
한국에서 처음 개통한 지하철은 1974년 서울에서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이었습니 다. 이어서 1985년 부산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였습니다. 대구에서는 1991년 지하 철 1호선 건설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 후인 1997년 대구에서도 지하철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97년 11월 26일 1단계 공사를 마친 진천역~중앙로역 구간 14개 역이 개통한 것입니다. 1호선 공사는 계속되어 1998년 중앙로역~안심역 구간이 개통하였고, 2002년 대곡역~진천역 구간이 개통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구간 공사를 계속하여 현재 대구시 달성군의 설화명곡역과 동구 안심역을 잇는 도시철도 1호선이 완공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83년 조선이 영국, 독일과 수호통상조약 조인1990년 대구시, 카자흐스탄 알마티(Almaty)시와 자매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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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동화사 통일대불 점안 법회 열림
팔공산 동화사는 493년(신라 소지왕 15)에 건립된 사찰입니다. 1992년 11월 27 일 동화사에서는 돌을 조각해서 만든 통일대불 점안 법회가 열렸습니다. 통일대불 이란불상의이름은이불상을세운목적이통일을기원하고이산가족의아픔을달 래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교 용어인 ‘점안’은 새로 그린 불화나 새 로 조각한 불상을 처음으로 봉안하고 성스럽게 모시는 의식을 뜻합니다. 동화사 통일대불은 높이 17m, 좌대 높이 12m로 전체 높이가 29m에 달합니다. 점안 법회에는 불교계 인사와 불교 신도, 대구 시민 등 10만여 명이 참석하였습니 다.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등 다른 종교와 외국의 불교단체 지도자들도 참석하여 통일대불 점안을 함께 축하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4년 대구문인협회, 제1회 어머니 동화구연대회 개최2004년 시인 전상렬 시비 월광수변공원에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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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야구선수 임신근 출생
대구가 야구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1967년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가 대통령배와 청룡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부터였습니다. 경북고 전성시대를 이끈 선수 중에는 임신근이 있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도 임신근은 투수로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습 니다. 1969년 실업팀인 한일은행에 입단하여 10승 7패로 신인상을 수상했고, 1970 년에는 승률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71년 해병대에 입대하여 해병대 팀 야구선수로 1972년 다승 1위(18승)와 승률 1위(0.818)를 차지했으며, 제대 후인 1976년 타자로 전향한 뒤 한일은행 소속으로 2년 연속 타격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시대가 시작된 후 그는 삼성라이온즈 코치 겸 선수, 쌍방울레 이더스 팀 코치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1년 심장마비로 타계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건축사회 창립2020년 대구 이동식 협동로봇 규제자유특구 발대식 (대구기계부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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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유네스코가 경주 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지정
세계유산이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유산을 말합니다. 2000년 11월 29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총회에서 경주 역사유적지구와 고 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5 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 등의 무덤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 구, 경주 방어시설이었던 산성(山城)지구입니다. 이처럼 많은 유적과 문화재가 있 는 경주 지역은 거대한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0년 반달가슴곰 17년 만에 지리산에서 발견2004년 시인 김춘수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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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학생저축운동 실시
지금부터 60년 전인 1961년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자본축적을 위한 첫 단계는 국민들이 은행에 저축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은행이 이 돈을 기업에 빌려주면 기업은 공장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제는 조금씩 발전할 수 있습니다. 1960년 대 대한민국 정부도 이런 성장전략을 세우고 국민을 대상으로 저축 장려운동을 벌 였습니다. 학교에선 학생들 대상으로 저축운동을 실시했습니다. 저축 표어와 포스터를 만 들어서 교실에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저축 표어 공모대회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도 저축 표어를 적은 탑, 현수막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1964년에 정 부는 저축의 날도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4년 대한민국 수출 1억 달러 달성1999년 신라 문화 연구에 헌신한 윤경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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