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1] 대구시 행정구역에 수성구 신설
대구시 동남부에 위치한 수성구는 1980년 4월 1일 동구에서 분리되어 수성구가 되었습니다. 현 수성구 지역은 신라시대에 위화군에 속했는데, 통일신라시대에 경덕왕이 수창군이라 고쳤으며, 고려 초에 수성군으로 바뀌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늘날 수성구 지역은 달성군 수성면으로 편제되었고, 1938년 수성면 전체 14개 동이 대구부의 동부출장소에 편입되었습니다. 1963년에 동부출장소가 동구로 승격하여 수성면 지역은 동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4월 1일 효목동을 제외한 과거 수성면 지역과 파동이 동구에서 분리되어 수성구가 신설되었습니다. 이후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고, 1995년 달성군이 대구에 편입이 되어서 지금의 대구는 8개의 구·군이 있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5년 대구동부교육청, 서부교육청 개청 2000년 달성공원 무료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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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 개봉
1923년에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난 박남옥은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입니다. 대구 경북여고를 졸업한 그녀는 1945년 해방 후 서울로 올라가 조선영화사 촬영소에서 편집과 스크립터 일을 하게 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리고 1955년 여성 감독이 만든 최초의 영화인 <미망인>을 감독하였습니다. 영화는 1955년 4월 2일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했는데, 이 작품은 한국전쟁 후 미망인들의 고충과 처지를 여성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였습니다. 대구에서는 이보다 앞서 3월 12일에 당시 국립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미망인>은 박남옥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영화가 되었습니다. 1950년대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여성감독이 활동하는 데 여러모로 어려운 게 많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후속 작품을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요즘은 많은 여성 감독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전쟁 발발 2005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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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 대구시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생계자금 지원 신청 접수
2020년 1월부터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불편에 시달렸습니다. 대구의 경우 2월 18일 첫 확진자 발생 후 며칠 동안 확진자들이 다수 발생하여 한동안 여느 도시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일부 병원 응급실이 폐쇄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대구시는 2020년 3월 25일 회견에서 4월 3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생계자금 지원 신청을 온라인으로 접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래는 4월 6일부터 지원 신청을 온라인·현장방문으로 받기로 했으나 온라인 신청 날짜를 사흘 앞당긴 것입니다. 이것은 2020년 봄에 코로나19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과 손해가 몹시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역사​ ​1906년 경의선(서울~의주) 철도 개통 1948년 제주도에서 4·3사건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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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 한국-네덜란드 국교 수립
한국과 네덜란드 간에 공식적인 외교가 이루어진 것은 1961년이지만 사실 조선시대부터 인연을 맺은 나라입니다. 책을 통해 한국을 유럽에 최초로 소개한 이가 바로 네덜란드 사람 하멜입니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귀화 서양인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이던 얀 벨테브레, 한국명 박연입니다. 벨테브레 일행은 훈련도감 소속으로 총포 제작을 담당했고 병자호란에도 출전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네덜란드의 상징은 풍차입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조건을 이겨내고 낙농업과 화훼산업으로 부를 일군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우방이기도 합니다. 또 네덜란드에도 한국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있어 두 나라의 피해자들이 함께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한 일도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4년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 출생 2000년 대한의사협회, 의약분업 반대 집단 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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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시인 이상화 출생
이상화는 20세기에 대구가 배출한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이 크게 알려진 이유는 일제 강점기 조선 백성의 아픔, 희망, 반일의식을 표현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남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1901년 4월 5일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청년시절을 현진건, 백기만, 이장희와 문학 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1921년 <백조> 동인에 참여한 이상화는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1926년 <개벽> 6월호에 발표하였습니다. 시인은 대구의 들판을 걸으면서 이 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943년 이상화가 사망한 뒤 1946년 달성공원에 그를 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詩碑)가 세워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0년 대구남부공립심상소학교 개교 (1953년 명덕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1997년 대구국제무용페스티벌(문화예술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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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 계성학교 김수길 등 시내 상인들에게 동정표시경고문 발송
1919년 3월 8일 대구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계성학교 학생 김수길이 있었습니다. 김수길은 시위대가 강제해산 당한 후 고향인 김천으로 가 다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지만 일본 경찰에 발각되자 다시 대구로 돌아와 학교 친구들과 새로운 반일저항운동을 계획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인들에게 호소하여 철시(撤市)투쟁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김수길 등은 1919년 4월 6일 ‘동정표시경고문’이라는 제목으로 ‘죽음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관철할 것’이라는 내용의 전단을 인쇄해 대구 시내 곳곳에 붙였습니다. 4월 17일에는 학교 친구들과 ‘혜성단’이라는 항일 비밀조직을 결성하는 등 분주히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던 김수길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8년 대구 덕산공립심상소학교(현 삼덕초교) 개교 1979년 경주 보문관광단지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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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 독립신문 창간
4월 7일은 신문의 날입니다. 이 날이 신문의 날인 것은 1896년 4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신문은 창간호로 300부를 발행했고, 가장 많을 때는 3000부를 발행했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근대의 새로운 사상은 조금씩 전파가 되었을 것입니다. 독립신문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러시아의 이권침탈 비판에 적극적이었고 이로 인해 정부의 압박을 받아 1899년 종간되었습니다. 독립신문이 창간된 해인 1896년 대구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그해 8월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경상도가 경상남북도로 나눠진 것 외에, 충청도·전라도·평안도·함경도가 각각 남북 도로 분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0년 독도 행정구역 및 지번 변경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 2020년 대구교육청, 코로나19 대응 ‘온라인 원격수업 현장안착 추진계획’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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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 대구에서 불교청년회 창립
대구에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감시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불교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1919년 3월 30일 대구에서는 젊은 승려들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구에는 일제 강점기 때 불교계가 국민계몽운동에 앞장선 역사도 있습니다. 1923년 4월 8일 대구에서 불교청년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이 모임의 회원 수는 약 30명이었는데, 설립 목적은 불교 교리 연구 외에 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당시 상황에서 민중의 교육을 추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불교청년회는 포교당 내에 야학을 설치하여 문맹 퇴치에 노력하였습니다. 불교청년회의 이런 노력은 일제의 종교 세력 분열 통치 정책으로 인한 감시와 방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736년 (영조12) 대구읍성 축성을 위한 채석 시작 1911년 천주교 대구대목구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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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 대구맹아학교 창립
20세기 한국 특수교육 역사에서 대구는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긴 도시입니다. 그 시작은 1946년 대구맹아학원이 개원한 것입니다. 대구의 한 교회 건물을 빌려 문을 연 대구맹아학원 개원을 이끈 사람은 이영식 목사였습니다. 그는 1956년 장애인 복지와 특수교육 지도자 양성을 위해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교 전신)을 설립하였는데, 이 대학에는 한국 최초로 특수교육학과가 개설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대구는 최초의 사립 특수학교(대구광명학교), 최초의 정서장애 특수학교(대구덕희학교)가 생긴 도시입니다. 또 2014년에는 공립 특수학교인 대구세명학교가 개교하였고, 2021년에는 전국 최초로 문화예술 중점 특수학교인 대구예아람학교가 개교하였습니다. 또 2022년에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대구이룸고등학교가 개교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역사​ ​1973년 한국 여자탁구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1997년 대구시 북구 도청교 확장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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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 효성여자대학교 설립
1952년 4월 10일 설립 인가, 5월 15일에 개교한 효성여자대학교는 천주교대구대 교구유지재단이 세운 여자대학입니다. 초급대학으로 개교하여 1953년 4년제 효성여자대학으로 승격하였고 1956년 봉덕동 캠퍼스로 이전하였습니다. 1980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였고 1994년 선목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와 통합하여 현재의 대구가톨릭대학교가 되었습니다. 1914년 개교한 성유스티노신학교에서 시작된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역사는 100년이 넘습니다. 1945년 일제 강압에 의해 일시적으로 폐교되기도 한 신학교는 1981년 학교법인선목학원이 설립된 이후 1984년 선목신학대학에서 대구가톨릭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습니다. 1990년 의예과가 신설되었고, 1991년 가톨릭병원을 부속병원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1년 2·28 학생 민주의거 기념탑, 시민성금으로 명덕로터리에 건립 1999년 독도 유인등대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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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 이중섭 개인전이 미국공보원에서 열림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1950년 겨울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습니다. 여러 곳을 떠돌며 피난살이를 했던 이중섭은 1955년 4월 11일 대구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회를 주선한 사람은 이중섭의 친구이자 당시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었던 시인 구상이었습니다. 1955년 이중섭의 전시회 때 그의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공보원 원장이었던 미국인 맥타가트가 그림 <싸우는 소>와 <환희> 등의 은박지 그림 몇 점을 매입했습니다. 맥타가트는 나중에 이 그림들을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기증하였습니다. 1955년 전시회를 마친 이중섭은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이듬해 40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7년 삼산물산 설립(현 금복주) 2013년 동인동 찜갈비 골목, 전국 최초로 ‘착한 골목’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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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 2015 대구·경북 세계물포럼 개최
21세기에 대구에서 열린 큰 국제 행사에는 2011년에 열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15년에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함께 연 ‘2015 대구·경북 세계물포럼’이 있습니다. 세계 물 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세계물포럼(World Water Forum, WWF)은 3년마다 열리는 행사로 전 세계 정부, 전문가, NGO 등이 참가하여 21세기 물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그 중요성을 알리는 행사입니다. 대구와 경북은 2015년 7차 세계물포럼 회의를 유치하였습니다.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 행사는 4월 12일 대구에 있는 EXCO에서 개회식을 가졌고 포럼 기간 중 EXCO에서는 물 관련 다양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2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영남이공대학교 교정에 전나무 기념식수1981년 미국 유인 우주왕복선 콜럼비아 1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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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3] 경북실내체육관(현 대구체육관) 개관
1971년 경북도청 근처에 경북실내체육관(현 대구체육관)이 개관하였습니다. 당시 14,000명 수용 가능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이 건물은 화랑이 쓰던 모자(투구)를 표현한 독특한 모양의 지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체육관의 건립을 위해 학생과 시도민들도 건립 비용 모금에 참여하였습니다. 체육관 이름은 1984년 대구체육관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선 농구, 배구, 권투, 씨름 등 다양한 실내스포츠 대회가 열렸는데, 1997년~2011년에는 남자 프로농구 대구오리온스 팀의 홈 경기장이었고, 2021년에는 남자 프로농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팀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81년 대구시를 대구직할시로 승격하는 법률 공포 2002년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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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대구시민의 노래〉 발표
1952년 영남일보는 〈대구시민의 노래〉 가사 공모 사업을 하였습니다. 최우수에 해당하는 금상의 상금은 20만 원이었는데, 당시 화폐가치를 생각하면 큰 금액이었습니다. 1955년 심사 결과 금상으로 뽑힌 작품은 백기만이 쓴 가사였습니다. 이후 작곡 부문도 공모한 결과 유재덕의 곡이 선정되었고, 1955년 12월 합창단의 실연을 통해 ‘대구시민의 노래’가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대구시민의 노래〉는 이듬해인 1956년 4월 14일 대구코러스의 창립 공연 때 시민들에게 최초 공개되었습니다. 대구시는 196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유명 가수를 섭외하여 음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작사가인 백기만은 청년 시절에 현진건, 이상화와 함께 문학활동을 하며 문집 〈거화〉를 펴냈고, 1967년 타계할 때까지 대구문학 발전에 힘썼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0년 대구에서 김화수, 청년과 부인 위해 야학교 설립 197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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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5] 정부, 농지개혁 완료 발표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 농지의 소작 비율은 약 65%였습니다. 전체 농지 중 65%가 땅 주인이 따로 있고, 농부들이 소작료를 내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소작료 부담 때문에 남의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은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0년 농지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농지개혁의 핵심은 한 가구당 농지 소유를 3정보 이내로 제한하고, 정부가 농지를 유상으로 매수하여 유상으로 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지 개혁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50년 4월에 완료된 농지개혁의 결과 약 92만 호의 농가에 농지가 분배되었습니다. 이 개혁으로 대지주는 감소하였고, 농민 중심의 토지 소유가 확립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9년 일본군이 제암리 학살사건 저지름 1939년 대구동부공립심상소학교 설립인가 (1953년 대구동도국민학교로 교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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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대구부인자선회관 낙성
근대 이후 생겨난 사회 변화 중에는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도적, 관습적으로 상당히 제한이 되었습니다. 교육의 경우 아무리 배우고 싶어도 여성은 서당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벽은 19세기 말 이화학당 등 여성 교육기관이 생기면서 조금씩 깨졌고, 예술과 상업분야의 여성 진출도 전보다 활발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여러 여성단체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런 단체 중 하나로 대구부인자선회가 있습니다. 1927년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27년 4월 16일 대구에서는 대구부인자선회관 낙성식이 있었는데, 당시 대구부인자선회의 회장은 김울산이며, 자선회관은 남산동에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52년 종군작가단 대구에서 기관지 <전선문학> 창간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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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제1회 대구섬유의 날 기념식 개최
대구가 섬유산업의 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1950년대였습니다. 한국전쟁 시기에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덜했던 대구에는 제일모직 등 대규모 섬유공장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1957년에는 대구 신천동에 한국나이롱 공장이 설립되면서 한국에선 합성섬유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상공부와 경상북도 상공과가 합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구시에 있는 공장 1,666개 중 82%가 섬유산업 분야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섬유산업이 발전하면서 섬유 도매시장인 대구 서문시장도 빠르게 성장했고, 1960년에 대구의 산업에서 섬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습니다. 대구 수출 액의 90% 내외를 섬유 산업이 차지한 해도 있었습니다. 1971년 4월 17일 대구극장에서는 대구상공회의소 주최로 제1회 ‘대구섬유의 날’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1년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 선언〉 발표 1995년 대구교육과학연구원(현 대구창의융합교육원) 내에 과학탐구학습장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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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서대구 고속철도역 기공식
철도와 도로 그리고 역은 인근 지역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대구의 경우 대구역, 동대구역 설립 후 주변 지역이 더 발전했습니다. 2019년 4월 18일 서대구 고속철도역 건립공사 기공식이 열려 대구의 서쪽 지역 주민들이 크게 환영했습니다. 역사 부지는 대구시 서구 이현삼거리 북편입니다. 서대구 고속철도역은 2021년 12월에 완공 예정입니다. 서대구역에는 KTX가 하루 20차례 이상 운행될 예정이며, 구미에서 경산을 잇는 대구권광역철도,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내륙철도 등이 차후 잇따라 연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대구의 서쪽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서대구 고속철도역 개통은 대구지역 균형 발전에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국제사법재판소(ICJ) 발족 1995년 국무회의, 법관의 영장실질심사제 도입 등 <형사소송법 개정안>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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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조선방송 대구출장소 개국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은 1926년 서울에 경성방송국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고, 대구는 1939년 4월19일 대구시 원대동에 조선방송협회 대구출장소가 개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호출부호는 JBGK, 주파수는 630kHz, 출력은 50W였습니다. 방송국은 점차 늘어 광복 직후 한국 지방 방송국은 16개가 되었습니다. 대구출장소는 1950년 대구방송국으로 승격했고, 한국전쟁 때 잠시 중앙방송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962년 대구방송국은 사옥을 대구시공회당건물로 옮겼다가 1972년에 신천동으로 옮겼습니다. 이어서 1973년 대구방송국은 KBS대구방송국이 되었고, 2002년에는 현재의 범어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방송국인 대구MBC는 1963년, TBC는 1995년에 생겼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8년 영남일보 복간 2001년 대구종합유통단지에 전시컨벤션센터 (현 EXCO)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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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대구 최초 복권제도 현 달성공원에서 실시
경부선 개통 이후 대구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건너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대구의 일본인들은 나라의 힘을 믿고 대구 역사의 중심 지역인 달성 안에 일본 국왕에게 절을 드리는 장소인 요배전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들은 또 1907년에 달성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조선인들을 끌어들여 달성공원기성회를 만들었습니다. 1907년 4월 20일 달성 안에서는 일본인들이 달성공원기성회 회원을 많이 모으기 위해 대구 최초의 복권 추첨 행사를 열었습니다. 1원의 회비를 내면 복권을 주었는데, 그들이 내건 1등 상금은 200원, 9등 당첨금은 1원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의 속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호기심에 복권 추첨 행사에 많이 참여하였는데, 이날 추첨에서 1등 당첨금을 받은 사람은 서문 근처에 사는 한 여성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1년 앞산 지역에 충혼탑 재건립 (1958년 수성못 주변에 건립) 2011년 일본대지진 피해 돕기 특별음악회 ‘미야기현의 봄을 위하여’ 공연(대구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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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망우당공원에 임란호국 영남충의단 건립
대구의 동촌유원지 근처에는 망우당공원은 의병장인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망우당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임란 당시 곽재우는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망우공원 안에는 호국 정신을 선양하는 망우당기념관, 곽재우 장군 동상, 임란호국 영남충의 단, 항일운동기념탑, 조양회관 등이 있습니다. ‘임란호국 영남충의단’은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위국충절 정신을 숭앙하고 계승하기 위해 199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경주 최대 축제인 제1회 신라문화제 개최1968년 과학의 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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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2] 개신교 선교사 W. M. 베어드 대구 도착
대구지역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893년이었습니다. 1893년 4월 22일 부산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미국인 베어드(한국명 배위량)가 대구읍성 안 종로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면서 대구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는 1895년 북장로회 선교부를 대구로 옮겼고 이때부터 선교활동은 더 활발해졌습니다. 당시 대구의 종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베어드는 1897년 서울지역 교육담당이 되어 대구를 떠났고 후임으로 아담스(한국명 안의와) 선교사가 대구에 왔습니다. 1897년 아담스 선교사가 베어드 선교사가 머물렀던 집을 교회당으로 사용하면서 대구에 처음 기독교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교회 이름은 대구읍교회 또는 성내교회 등으로 불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9년 대구의 제2차 상수도 확장공사 기공식(산격수원지) 2011년 대구광역시 영재교육지원센터와 대구과학영재교육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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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우리나라 최초 모노레일,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
2015년 4월 23일 개통한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교통 모노레일입니다. 모노레일 방식은 기존 도시철도와 비교하여 사업비가 덜 들고 공사기간이 짧은 이점이 있습니다. 대구시 북구 동호동의 칠곡경대병원역과 수성구 범물 동의 용지역까지 30개 역, 23.1km의 구간을 48분 만에 연결하는 3호선은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할 때보다 소요시간을 26분 정도 단축시켰습니다. 3호선은 개통 직후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고 대구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다른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모노레일 도시철도인데다, 지상 평균 14m 위에서 달리는 열차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구도시철도 3호선에는 ‘하늘열차’라는 멋진 별명이 붙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2년 대구교원연수원 개원 1975년 한국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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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대구역 지하차도 개통
우리나라에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0년대였습니다. 1970년에 대구를 지나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것은 산업화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경제발전에 힘입어 대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엔 새로운 도로가 생긴 변화도 있었습니다. 지하차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철길에 가로막혀서 도심에서 대구 북구 지역으로의 이동이 불편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대구역 광장에 운집한 것은 지하차도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성못에서 지하차도 개통을 기념하는 불꽃놀이 행사가 열렸다고 하니 이 도로의 개통이 얼마나 경사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7년 수성못 완공(둘레 약 2km, 면적 18,000m²) 1991년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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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일본군 제80연대 대구에서 군기 수여식
1905년 을사늑약 후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여 조선 주둔 일본군을 증강하였습니다. 대구의 경우 1907년 일본은 대구진위대를 해산시키고 일본군 제12여단의 여단사령부와 제14연대 본부 및 제10중대 본부를 설치하였습니다. 1909년 12 여단은 철수하고 대구에는 임시조선파견대 보병 제2연대 본부와 보병 3연대, 이어 1910년에 대구헌병대 본부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1916년 4월 일본군 보병 제80연대를 현재의 대구시 남구 이천동에 배치되었습니다.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보병 80연대 병력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진압하였습니다. 광복 후부터 1948년까지 이곳에는 국방경비대가 주둔하였고, 1953년부터는 미군 제 19원정지원사령부(캠프 헨리)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3년 대구 출신 문학가 이상화, 현진건 타계 2008년 대구혁신도시 등 6개 구역이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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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대구교육청, 네팔 심파니에 ‘휴먼 스쿨’ 완공
2018년 4월 26일 네팔에 있는 마을인 심파니에서는 ‘휴먼 스쿨’ 완공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심파니 휴먼스쿨 건립은 대구시교육청과 엄홍길휴먼재단이 함께 추진한 사업으로, 기금을 모아 교육 환경이 열악한 네팔의 심파니 마을에 학교를 건립하는 사업이었습니다. 학교 건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대구교육청은 2016년 5월부터 ‘사랑나눔 동전모으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때 대구의 많은 학생, 교사들이 모금에 참여하여 약 4억7천만 원의 돈이 모였습니다. 4월 26일 열린 완공 기념식에는 당시 대구교육청 우동기교육감 등 대구교육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학교 준공을 함께 축하하였습니다. 심파니 휴먼스쿨에는 학교 건립 사업에 참여한 대구 학생, 학교, 기관들의 이름이 적힌 명판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발표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 사고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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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제7대 대선 실시
1969년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5, 6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는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거일은 1971년 4월 27일이었습니다. 직선제로 치러진 7대 대선에서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맞붙었고 투표율은 79.8%를 기록했습니다. 개표 결과 박정희 후보가 3선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어서 제8대 대통령 선거가 1972년에 치러졌습니다. 그해 11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유신헌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19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간접 선거 방식의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를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3년 대구에서 한미 친선 야구대회 열림 2010년 전라북도에 세계 최장의 방조제인 새만금 방조제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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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상인역 가스폭발 사고 발생
1995년에 일어난 상인동 가스 폭발사고는 4월 28일 오전 7시 52분께 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친 대형 참사였습니다. 특히 사건 현장이 학교 근처인 데다 등교시간이어서 학생 사상자가 많았습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2천여 명의 대구시민이 사고수습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위로 성금이 모였습니다. 사고원인조사후시공사측의과실이인정되어인부를포함한여러관계자들이 기소, 구속되었습니다. 그 후 사고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달서구 학산공원에 위령탑이 세워졌고, 이곳에서 해마다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545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출생 2014년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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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대구시민 춘기운동회 개최
조선시대에는 요즘과 같은 운동회는 없었습니다. 근대에 대구의 첫 운동회는 1911년 달성공원에서 열렸던 대구시민대운동회입니다. 50미터, 100미터, 이어달리기 같은 육상 경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구시민대운동회 대회 운영권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면서 운동회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1927년 4월 29일 대구운동협회가 지역 신문지국의 후원과 대구포목조합 등 여러 상인 모임의 협찬을 받아 감격적인 제1회 대구시민 춘기운동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이 운동회에서는 1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청년, 중학, 소학부가 육상경기를 치렀고, 구기종목 경기도 열렸다고 합니다. 1928년 제2회 춘기대운동회 역시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4년 대구경찰서 동운정(현 동인동) 파출소 설치 1961년 매일신문사, 제1회 전국 신인음악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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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계성학교 아담스관 등 대구시유형문화재 지정
2021년 현재 대구시 유형문화재는 86개입니다. 2003년 4월 30일 여러 문화재가 대구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샬트르 성바오로수녀원 성당, 남산초등학교 강당, 계성학교 아담스관·맥퍼슨관·핸더슨관, 구 대구상업학교 본관,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유가사 석조여래좌상입니다. 학교 내에 3개의 대구시유형문화재가있는 대구 계성학교는 미국인 선교사 아담스가 1906년 학생 27명으로 대구 선교부 내 초가집을 교실로 개교한 데서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2년 후인 1908년 2층 양옥 교사인 아담스관을 완공했는데 이것은 영남지역 최초의 양옥 건물입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때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아담스관 지하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30년 간의 베트남 전쟁 끝남 2000년 대구에서 제1회 교원정보 소양 인증시험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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