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 대구부 부영버스 운행 개시
1920년대 조선의 큰 도시에서 운행하던 이동수단에는 마차, 자전거, 인력거, 기 차가 있었고, 경성(서울)에는 전차가 있었습니다. 경성에 버스가 등장한 것은 1928 년이었습니다. 대구에서는 1929년 7월 1일 버스 운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대구 의 행정 지명은 ‘대구부’였습니다. 그래서 버스 이름을 대구부영 버스라고 하였습 니다. 시내에서 운행된 부영버스의 출발점과 종점은 대구역 앞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버스는 지금보다 많이 불편했습니다. 기술자가 별로 없어서 정비 불량으로 고장이 자주 나 정차하는 일이 잦았고, 부품을 구하느라 며칠 운행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버스는 조금씩 증가하여 광복 후인 1946년 대구 에서는 시내에서 7대, 시외에서 5대가 운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시 대구직할시 승격 2006년 대구교육해양수련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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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대구 파티마의원(현, 파티마병원) 개원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있는 파티마병원은 1956년 7월 2일 독일 성베네딕도수녀 회가 세운 병원입니다. 한국전쟁 후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대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수녀회에서 병원을 설립한 것입니다. 원장으로 마리아 살루스 수녀가 취임했으며 당시 병원 내에 무료진료소가 개설되었습니다. 1962년 종합병원 인가를 받았는데 초대 병원장은 에델트루드 와이스트 수녀, 당시 진료과목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였습니다.
이후 파티마병원은 꾸준히 성장하여 대구를 대표하는 종합병원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 2021년 파티마병원은 개원 65주년 기념식 및 비전 2025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발표한 비전 2025는 ‘환자중심! 진료중심! 이념중심! 모두가 행복한 파티마’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직할시 교육위원회 개청 2021년 대구학생체조체육관 부지에 ‘중구 청라국민체육센터’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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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항제철 1기 설비 종합 준공
한국 철강산업 발전의 꿈은 1960년대 종합제철 건설계획 수립으로 구체화되었 습니다. 1967년 정부는 포항을 종합제철 공장의 입지로 확정하였습니다. 박태준이 초대사장으로 취임하여 1968년 4월 1일 회사 창립식을 갖고 제철소 건설의 대장정 을 시작한 것입니다. 1970년에 1기 설비 착공식, 1972년 제품부두를 개항하였고, 이 해에 본사가 포항으로 이전하였습니다.
1973년 6월 9일 포항 1고로가 첫 출선하였고 같은 해 7월 3일 포항 1기 설비를 종합 준공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포항제철은 이듬해부터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1974년 12월 30일 포항제철은 수출액 1억 불 을 달성하였고 1976년에는 2기 설비를 종합 준공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3년 불국사 복원사업 완료 2012년 금호강 산격야영장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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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7·4남북공동성명 발표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깜짝 놀랄 뉴스가 발표되었습니다. 한국과 북 한이 공동 서명한 성명이 발표된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과 북한이 합의한 최초의 문서였습니다.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 대 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7·4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국민들은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정착을 기대하였습 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1973년 들어 남북 간의 화해를 위한 대화 진전이 더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대구비행장 설치 1989년 노동부, 최저임금제의 적용범위를 상시근로자 10인 이상인 전 산업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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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대구 문총구국대 결성
문총(文總)은 1947년 33개 문화단체들이 만든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를 줄인 말 입니다. 문총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6월 28일 피난지인 대전에서 조지훈, 구상, 서정주 등 많은 문학인이 참여한 문총구국대를 조직하였습니다. 문총구국대는 전 쟁 중 국군 정훈국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같은 해 7월 5일 대구에 이효상, 이윤수 등의 문인들이 참여한 대구 문총구국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대구 문총구국대는 대전에서 내려온 문총구국대와 하나가 되어서 다양한 정훈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문총구국대는 육군종군작가단, 해군종군작가단, 공군종군문 인단 등으로 나누어 활동했는데, 대구에서 문총구국대는 종군작가 강연회, 『전선문 학』 등의 책 발간, 육군의 방송, 문학의 밤, 시화전 등 많은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6년 영국에서 첫 인공 생명체인 복제 양 돌리 탄생 2011년 북구 국우동 국우터널 무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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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도동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석학이나 충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인 서원은 조선시대에 생겼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도동서원은 조선 전 기의 문신인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68년(선조 1)에 비슬산 기슭 에 창건된 서원입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 지금의 위치에 재창건되 었습니다. 1607년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868년 (고종 5) 흥선대원군이 추진한 서원철폐 때도 살아남았습니다.
현재 도동서원의 강당·사당·장원(담)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도동 서원을 포함한 9개의 서원은 2019년 7월 6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도동서원에 있는 고목인 은행나무도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오늘의 역사 1940년 송죽극장 개관(구 대구소치쿠 영화극장) 1953년 UN 산하 기관인 유네스코(UNESCO) 한국 지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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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경부고속도로 최종 준공식
매년 7월 7일은 ‘도로의 날’입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7월 7일을 기 념하여 이날이 도로의 날로 제정되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대한민국이 가 난에서 벗어나 산업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일이었습니다. 당시 기술과 장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2년 6개월의 공사 기간에 428km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완 공한 것은 공사 참여자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은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970년 7월 7일 대구종 합운동장(현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렸는데, 스탠드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시민 들이 개통을 함께 축하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 부산을 4시간 20 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면서 전국 일일생활권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7년 노구교(蘆溝橋) 사건으로 중일전쟁 발발 1996년 대구문인협회, <대구사랑 문학기행>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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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초대 대구직할시의회 개원
대구에 처음 지방 의회가 조직된 것은 1952년입니다. 3대까지 이어진 대구시의 회는 5·16정변 후에 만들어진 군사혁명위원회의 포고령 제4호에 의해 해산되었습 니다. 1991년 지방 의회는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해 6월 20일 초대 대구직할시의회 의원선거가 실시되었고, 7월 8일 초대 대구직할시의회가 개원하였습니다. 이로서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구가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1995년 1월 1일 대구직할시의회는 대구광역시의회 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현재의 대구시의회는 2018년 7월 2일 개원하였습니다. 대구시 의회는 산하에 6개의 상임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의원의 임기는 4년입니다. 2022년 6월 1일에 제8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의 역사 1921년 의열단원 최수봉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1989년 국내 최초의 삼림욕장, 광릉수목원에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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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미 8군사령부 대구 주둔
미 8군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부터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입니 다. 미 8군이 만들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4년이었습니다. 동남아시 아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펼쳤던 미 8군은 1950년 7월에 한국 전선에 투입되었습니 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9일 미 8군사령부가 대구에 주둔하였습니다.
이 무렵 국군의 주요 부대도 대구에 주둔하였습니다. 군부대가 주로 학교에 주둔 했기때문에일부학교학생들은한동안학교가아닌공간에서수업을받기도하였 습니다. 대구의 미 8군사령부는 1950년 9월 6일 부산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한국전 쟁이후서울용산에터를잡은미8군사령부는2017년경기도평택에건설한캠프 험프리스로 이전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2년 가뭄 때문에 대구의 용두산에서 기우제 실시 1887년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서상일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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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 양치상,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양복 부문 금메달 획득
한국이 국제기능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67년부터였습니다. 1968년에 열 린 대회에서 시인 양치상이 양복 부문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당시 메달을 딴 한국 기능인들은 귀국하면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오색 꽃종이가 뿌려지는 가운데 꽃다발을 목에 걸고 카퍼레이드를 하였습니다.
1970년대 대구 최고 번화가인 중앙로에는 멋쟁이들이 즐겨 찾는 양복점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 수상자의 집’이라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적힌 양치상양복점이었습니다. 양치상은 양복 분야의 뛰어난 장인인 동시에 시인 이었습니다. 시인으로서 양치상은 『저녁 점묘』라는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0년 한국-일본-홍콩간 해저 광케이블 개통 2001년 공산터널(동구 지묘동)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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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 경북상공회의소, 대구역 광장에 ‘대구안내탑’ 건립
1946년 7월 11일 대구역 광장에 높이 19.5척, 폭 15척의 대구안내탑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안내탑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구안내탑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대구에 대한 여러 정보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안내탑을 세운 기관은 경북상공회의소(현 대구상공회의소)였습니다. 경북상공 회의소의 기원은 1906년 대구의 상공인들이 세운 대구민의소였습니다.
또 1940년대에 대구역 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구역을 이용하는 승객 중 상당수는 상인들이었습니다. 처음 대구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대구안내탑은 좋은 길잡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 1950년 대구에 제1보충병훈련소 창설(국군중앙훈련소로 개칭) 1985년 경북 영주시 순흥에서 삼국시대 고분벽화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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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 헬렌 켈러 대구 방문
미국 여성 헬렌 켈러는 오늘날에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한 위대 한 사람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 은 그녀는 헌신적인 가정교사 설리번의 지도와 그녀의 엄청난 노력을 통해 1904 년 명문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장애인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1930년대 세계적인 유명인이 된 헬렌 켈러는 1937년 장애인 복지사업을 위해 일 본에 이어서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7월 12일 대구에 온 헬렌 켈러는 당시 대구공회당과 대구여자고보(현 경북여고)에서 대구 사람들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8년 국회에서 대한민국 헌법 통과(7월 17일 공포) 2005년 해군 대형상륙함 1번함 독도함 진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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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3] 황남대총 북분 금관 발견
황남대총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큰 무덤으로, 북쪽과 남쪽 2개 의 무덤이 있습니다. 황남대총의 북분(북쪽에 있는 무덤)은 부인대(婦人帶)라는 명 문을 지닌 금제 허리띠가 출토되어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서 금관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금관은 왕뿐 아니라 왕비나 왕족들도 착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높이 27.5cm, 드리개 길이 13∼30.3cm로 신라 금관의 전형 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굽은 옥을 많이 달아 화려함이 돋보이는 금관입니 다. 1978년 이 금관은 국보 제19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 장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출장소 설치 1986년 금호강 팔달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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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4] 권태호, 대구 최초의 독창회에서 성악 공연
1903년 안동에서 태어난 권태호는 유년시절 교회에 다니며 서양음악에 눈을 떴 습니다. 1924년 일본 유학을 떠나 성악 전공으로 1930년 일본고등음악학교를 졸업 하였습니다. 테너 권태호는 일본 유학 시절 이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27년 도 쿄에서 열린 ‘베토벤 100년제’에 독창자로 뽑혔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1928년 잠시 귀국하여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대구에서 독창회를 열어서 처음으로 청중들에게 슈베르트 등의 독일 가곡을 소개했습니다.
권태호는 1930년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음악교수로 부임한 후에도 많은 독창회 를 하였습니다. 또 조선에서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찬송가 음반을 빅터레코드사에 서 취입하였습니다. 권태호는 대구의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공로로 1956년 제1회 경상북도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3년 대구상품진열소에서 이인성 개인전 열림 2000년 대구가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지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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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5] 맥타가트 교수 미국에서 타계
미국인 맥타가트는 대구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1953년 맥타가 트는 주한 미 국무성 재무관으로 한국에 부임했습니다. 그는 1950년대 중반 대구 미국공보원장으로 근무하며 대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1976년부터 영남대 영문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사재와 급여를 모아 20여 년 동안 2백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늘 근검절약하며 학생들을 도왔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맥타가 트는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그동안 수집하였던 한국문화재들을 대구박물 관에 기증하였습니다. 현재 영남대학교 인문관 로비에는 맥타가트 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흉상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0년 서울 인천 간 최초로 시외전화 개통 1968년 정부, 중학교 입시 철폐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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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 대구,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됨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습니다. 남쪽으로 후퇴한 이승만 정권은 수도를 서울에서 대전으로 옮겼다가 다시 대구로 옮겼습니다. 대구가 임시수도가 된 날은 7월 16일이었습니다. 이날부터 8월 17일까 지 대구는 임시수도였습니다. 한동안 행정, 사업, 입법 주요 기관이 대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대구 인근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 이후 이곳도 위험하다고 생 각하여 임시수도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겼습니다.
9월 15일 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전세를 뒤바꾸고 국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했습니다. 그러나 1951년 1·4 후퇴로 다시 정부는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 산은 휴전협정을 맺은 후인 1953년 8월 15일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기 전까지 임시 수도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0년 한국은행 본점, 대구 이전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쿠사마 야요이 전시회 열림 (~11.3, 관람객 33만 명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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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7] 연극인 이필동 타계
연극인 이필동은 대구 지역 연극 발전을 이끈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2·28민주운동을 기념하는 연극제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극 에 입문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 내려와 이필동이 연극무대에 선 1960 년대 대구연극계는 1957년 국립극장이 서울로 떠나버리자 문화적 여건 미비로 공 연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필동 등 대구의 연극인들은 대학 강의실이나 운동 장에서 연극 연습을 하면서까지 연극에 대한 열정을 지켜나갔습니다.
“예술가는 동시대 사람들과 동일한 혈액형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았던 이필동은 1967년 극단 <인간무대>를 시작으로 <공간>, <원각사> 대표를 역임했 고, 한국연극협회 경북지부장과 대구지부장을 지냈습니다. 또 그는 대구지역 공연 예술의 역사를 정리한 『대구연극사』를 저술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대구 명물 사과 중국에 수출 1952년 대구시교육청 개청을 축하하는 학예회 행사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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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8] 제1회 대구치맥페스티벌 개최
축제 성공의 첫 조건은 주제의 참신함과 매력입니다. 2013년 대구에서는 그런 축제가 하나 탄생했습니다. 치킨과 맥주를 주제로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제1회 대구치맥페스티벌이었습니다. 대구와 경북은 치킨 관련 인프라와 전통을 가진 지 역입니다. 1970년대부터 경북 경산, 의성 등의 지역에 양계장이 많았고, 대구에서 는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이 여럿 생겼습니다.
한국 최초로 치킨과 맥주를 주제로 열린 제1회 축제는 크게 성공했으며, 해를 거 듭할수록 유명 축제가 되었습니다.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문체부가 지정하는 ‘2020- 2021년도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되었습니다. 대구 대표 축제 중 하나인 대구치맥페 스티벌은 아쉽게도 2020년,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2년 대구시, 시화(목련) 및 시목(전나무) 지정 2008년 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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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9] 대구형무소 수감자들, 처우 개선 요구하며 시위
대구형무소(현 대구교도소)는 한일병합조약 체결 2년 전인 1908년에 세워졌습니다. 대구 감옥은 1910년에 대구시 중구 삼덕동 지역으로 이전하였고, 1923년에 이름이 대구형무소로 바뀌었습니다. 이육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대구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고, 그중에는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감옥 수감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했습니다. 1925년 대구형무소에서는 수감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대구형무소는 1961년에 대구교도소로 개칭되었고, 1971년에 달성군 지역으로 이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7년 대구약령시에서 조선약업주식회사 창립 1988년 납북, 월북작가 광복 전 문학작품 출판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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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경상감사 조현명 선비 양성 규제 진달
조현명은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 때 문신입니다. 그는 영조 즉위 후 당파를 초월 하여 고르게 인재를 선발하는 탕평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 인물이었습니다. 조현 명은 1730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어려운 백성을 돕는 정책을 적극 실시했고,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기관인 낙육재를 적극 후원하였습니다.
또 지방교육 진흥을 위해 각 고을마다 교육을 담당하는 훈장을 지정하여 이들이 인재 교육을 맡도록 하였습니다. 1732년 조현명이 선비 양성을 위한 규제(規制)를 조정에 올린 것(진달) 역시 교육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 구읍성 축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계책을 세운 것 역시 그였는데, 그의 이런 주장 은 나중에 후임인 민응수에 의해 실현됩니다. 오늘의 역사 1969년 미국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암스트롱 인류최초달착륙 1988년 대구직할시 학생종합야영장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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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1] 대구에서 북한만행규탄 국민총궐기대회 열림
궐기대회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는 큰 모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국민주 권시대가 되면서 대부분 민주국가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였고, 궐기대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주장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7월 21 일 대구 계성학교 운동장에서는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전쟁 후에도 반공을 주제로 한 궐기대회는 종종 열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지며(헌법 제21조 1항), 국 가안전 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집회를 제한 할 수 있다(헌법 제37조 2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집회에 대한 구체적인 법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8년 국민학생(초등학생)용 방학 책 발행 (여름, 겨울 연 2회) 1960년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 세계 첫 여성 총리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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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2] 총독부 고시 제765호에 의거, 공업입지조성지구 지정
1936년 7월 22일 조선총독부는 고시 제765호에 의거하여 대구 칠성동, 태평로 3 가 등을 공업입지조성지구로 지정하였습니다. 공업입지조성지구는 산업화 시대에 공업단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대구의 공업단지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노원동에 있는 제3공업단지입니다. 대구의 제1공업단지는 1968년 준공된 단 지로, 침산동에서 칠성동에 이르는 지역에 조성한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다른 지역에 제2공업단지 조성을 추진하였으나 이 사업은 유보가 되었습 니다. 이어서 노원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제3공업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그리 고 1970년대를 지나며 대구에는 검단동, 이현동 등에 공업단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1년 경제기획원 신설 1982년 한국 정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기술 시정을 일본 정부에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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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3] 대구운동협회 제4회 전(全)조선 정구대회 개최
조선에 비교적 일찍 보급된 구기 종목으로 야구, 축구, 정구를 들 수 있습니다. 정 구는 테니스와 비슷한데, 경기장 중앙에 네트를 두고 양쪽에서 라켓으로 공을 치고 받아 승패를 겨루는 경기입니다. 테니스와 크게 다른 점은 연식 공(부드러운 공)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1925년 대구에서는 대구운동협회가 주최한 전(全)조선 정구 대회가 열렸습니다. 사흘간 열린 이 대회의 첫날은 여자부, 둘째 날은 소년부, 셋째 날은 청년부 대회가 열렸습니다.
개막식 보도 기사에 따르면 당시는 장마 기간이었지만 다행히 대회 당일에는 날 이 씻은 듯이 개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막식은 대회 위원장인 서상일의 개회사에 이어 경기 개최를 축하하는 세 발의 화포 발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97년 두류공원 야외공연장 기공식 2010년 대구시, 일본 고베(神戶)시와 우호협력도시 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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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김광제, 마산에서 순국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사람은 출판사인 광문사 사장 김광제 와 부사장인 서상돈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국채보상회를 조직하고 조선 사람들의 참여를 호소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서울에서 발간되던 <대한매일신보>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이후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김광제는 조선이 일 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 이후에도 강연활동을 하였고 경상남도 마산에서 <마산문 예구락부>를 발간하였습니다. 1920년에는 3·1운동 1주년을 맞아 동경유학생들과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였고, 그해 7월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1990년 김광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김광제의 고향 인 충청남도 보령에서는 해마다 그의 삶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7년 사회주의 계열 단체인 대구청년동맹 결성대회 2014년 국가지명위원회의, 비슬산 최고봉을 천왕봉으로 바로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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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5] 날뫼북춤,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
날뫼는 대구시 서구 비산동의 우리말 지명입니다. 날뫼북춤은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입니다. 날뫼북춤이 생긴 유래에도 전설이 전해옵니다. 옛날에 한 원님이 고을을 잘 다스려 백성의 존경을 받았는데, 업무를 보다가 순직하였다고 합 니다. 백성들은 원님을 추모하기 위해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 때 원님의 혼령을 달래기 위하여 북을 울리면서 춤을 추었던 데서 날뫼북춤이 유래하였다는 전설입니다.
현대에 들어 1953년 비산농악대가 조직되어 날뫼북춤을 전승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 대구시는 날뫼북춤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8년 세계 최초 시험관 아기 탄생 1984년 성재서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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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6] 달서구 월성동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 출토
2006년 대구에서는 고고학 분야의 엄청난 발견이 있었습니다. 달서구 월성동 아파트 부지 일대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입니다. 출토된 유물은 무 려 1만 3천 여 점이었습니다.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은 대구 지역에 살았던 인류 역사를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 앞당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유물 종류는 다양했습니다. 석기 제작의 원석인 몸돌, 몸돌을 가공하였던 망치 돌, 긁개, 찌르개 등이었습니다. 또 유물 중에는 백두산 지역의 흑요석으로 만든 것 도 있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 북부 지역에 살았던 인류가 한반도 남 쪽으로 이동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역사 1939년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일본 교사의 차별 대우에 항거한 왜관사건 발생 1945년 미·영·중 정상 포츠담 선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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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문화극장에서 임시국회 소집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후 대구는 임시수도가 되었습니다. 국회도 대구로 옮겨 왔는데 국회는 문화극장을 임시의사당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1950년 7 월 27일부터 8월 17일까지 임시국회가 열렸습니다. 전세가 악화되어 정부는 부산 으로 임시수도를 옮겼습니다.
1953년 8월 서울로 환도한 국회는 중앙청 중앙홀을 의사당으로 사용하다가, 1954년부터 1975년까지는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을 의사당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현재의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1975년 8월 15일 준공되었습니다. 대구 임시수도 시 절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였던 문화극장은 현재 CGV대구한일 극장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3년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휴전협정 서명 1992년 제1기 대구시민예술대학 개강(문화예술회관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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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8] 현대자동차 누적 수출 대수 1000만대 돌파
2004년 7월 28일 현대자동차가 이날 누적 수출대수 1000만대를 돌파했다는 반 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첫 수출 자동차 모델은 1976년 생산한 우 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인 ‘포니’였습니다. 출시 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포니 생산은 한국 산업화시대의 성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자동차 수출의 역사는 6대의 포니를 남미의 에콰도르에 수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8년 만에 현대자동차는 누적 수출 대수 1000만대 기록을 달성하 였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16억 달러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2004년의 당 시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동차 1000만대를 다 주차하려면 여의도 면적의 27배 공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14년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 발발 2006년 한국의 다목적 실용 위성 아리랑 2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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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9] 두류공원 내 ‘조각동산’을 ‘인물동산’으로 개칭함
대구시 달서구에 있는 두류공원에는 애국지사와 예술가들을 기리는 곳인 인물 동산이 있습니다. 1998년 전까지 이곳의 이름은 조각동산이었습니다. 현재 두류공 원 인물동산에는 애국지사 조기홍, 우재룡, 박희광의 동상과 기념비가 있습니다. 또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과 시인 이상화의 동상이 있으며, 대구 출신의 시인 이 장희와 백기만, 소설가 현진건의 문학비가 있습니다. 현진건은 <빈처>, <운수 좋은 날> 같은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조각동산이란 이름이 인물동산으로 바뀐 해인 1998년 인물동산 옆에는 일제 강 점기 때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탑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인물동산의 맞은편에는 2·28민주운동을 기념하는 탑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36년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개선문 완공 1948년 대한민국 첫 올림픽 출전(제14회 런던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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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 칠성시장 설립
칠성시장은 서문시장과 더불어 대구를 대표하는 큰 시장입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었던 것은 청과물이었습니다. 시장공영화 정책으로 북문시장이라는 이 름의 상설시장이 생긴 것은 1946년입니다. 그리고 1974년 시장 재개발 사업을 통 해 현재의 칠성시장, 대구청과시장 등의 건물이 신축되었습니다. 이어서 오늘날 칠 성시장을 중심으로 하여 경명시장, 대성시장, 칠성꽃시장, 가구시장 등 9개의 시장 이 모인 대규모 종합시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칠성시장에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돼지골목, 닭골목 등의 맛집 골목들이 여럿 있습니다. 2019년에는 칠성교와 경대교 사이의 신천 둔치 공영주차장에 ‘별 별상상 칠성 야시장’을 개장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5년 보급판 도서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 영국 문고 ‘펭귄 북스’ 첫 출간 1971년 서울 외곽에 그린벨트 첫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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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1] 성모당 착공
성모당은 1918년 8월 15일 건립된 천주교 시설입니다. 1917년 천주교 대구교구 교구장 드망즈 주교는 주교관·신학교·주교좌성당(증축) 건립이 계획대로 이루어 지게되면프랑스루르드에있는성모동굴과똑같은성모당을세워성모마리아께 봉헌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주교관, 신학교 건립과 성당의 증축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1917년 7월 31일 성모당 건설을 시작하여 1년 만인 1918년 8월 15일에 완공하고 그해 10월 13일에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성모당은 루르드의 성모 동굴과 같이 성모상을 모신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성모 당은 신자들이 찾는 기도처일 뿐 아니라 각종 가톨릭 신심행사와 종교의식이 거행 되는 곳으로 대구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6년 앞산순환로 현충고가차도 준공 2009년 허준이 쓴 의학서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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