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1] 달성공원 개원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 또는 달벌이라고 했습니다.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성인 달성은 달구벌, 달벌 같은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달성은 바깥쪽에서 쉽 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바깥 쪽에 흙을 높이 쌓은 성이었습니다. 성 안은 완만한 경 사가 있는 평지였습니다. 달성은 오래전부터 대구의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인 관청 이 있어 대구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대구시는 달성을 시민 휴식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고 그 결 과 1969년 8월 1일 달성에는 달성공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공원 조성 후에는 공원 안에 동물원도 생겼습니다. 오늘날에도 달성공원은 남녀노소 많은 시민이 즐겨 찾 는 대구의 명소입니다. 오늘의 역사 1942년 대구 기온 40.0도 기록 1969년 인구 100만 도시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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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2] 구세군 선교사 헤롤드 거우 대구 부임
구세군은 기독교의 한 교파로서 1865년 영국에서 생겼습니다. 기독교 선교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추구하였는데, 구세군이란 명칭은 ‘하느님의 군대’라는 의미에서 군대와 비슷한 조직을 갖추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입니다. 구세군 전도사가 우리나라에 처음 온 것은 1908년이었습니다. 대구에는 1909년 헤롤드 거우 선교사가 대구 지역 담당 선교사로 부임하면서 처음 전파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구세군 선교사들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설립 취지에 맞는 실천을 많이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전국 곳곳에 구세군 교회가 있습니다. 구세군은 연말이면 거리에서 빨간색 자선냄비를 걸어두고 종을 치면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모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0년컬러TV국내시판개시 2018년 IT기업 애플, 미국 상장기업 최초 시가 총액 1조 달러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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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 대구 북부 지역 다부동에서 전투 개시
1950년 6월 25일 한국을 침략한 북한군은 8월 1일 대구에서 멀지 않은 김천 지 역까지 점령하였습니다. 국군과 UN군은 이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이란 낙동강의 주요 거점 도시를 연결하는 방어선이어서 여기가 뚫 릴 경우 대구는 위험해질 게 분명했습니다. 대구의 북쪽인 북구 칠곡에는 가산이라 는 산과 다부동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8월 3일부터 여기에서 국군과 UN군은 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 투를 벌였습니다. 국군과 UN군이 용감히 싸워 적들의 집중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 퇴하여 대구를 지켜내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1981년 칠곡군 가산면 다 부동에 이때의 승리를 기념하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2018년 대구시, 베트남 다낭(Da Nang)시와 자매결연 2018년 제27회 아시아 주문양복 연맹 총회 폐막 (대구 인터불고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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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 대구 진위대 해산
진위대는 1895년(고종 32) 조선 정부가 지방의 질서 유지와 수비를 위해 조직한 군대였습니다. 경상감영에 있는 대구에도 진위대가 배치되었습니다. 진위대에는 6 개의 연대가 있었는데 그중 제3연대의 본부 및 3연대 산하 제1대대가 대구에 주둔 하였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선 정부를 위협하여 진위대 병력을 강제로 감축시켰습니다.
일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진위대 해산을 밀어붙였고, 1907년 8월을 기해 한 양(서울)부터 차례대로 진위대를 해산시켰는데, 대구 진위대는 8월 4일에 해산 되 었습니다. 해산된 진위대 병사 중에는 나중에 항일 의병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싸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정권을 잡는 국민제헌의회가 구 체제(앙시엠레짐)를 폐지 1896년 조선이 전국을 13도로 나누는 지방 행정제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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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 대구 음악의 선구자 박태원 타계
대구 음악사에는 근대에 대구 음악 발전에 업적을 남긴 형제가 있습니다. 박태 원, 박태준 형제입니다. 형 박태원은 대구 계성학교와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때 방학이면 고향 대구 로 내려와 학생들에게 가사를 번역한 외국의 명곡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1917년 에 대구에서 처음으로 혼성 합창단 발표를 대구제일교회에서 열었습니다.
박태원은 문학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대구 출신의 시인 이상화와 우정을 나눴습 니다. 안타깝게도 박태원은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병에 걸려 24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5년 대구여자청년회와 기독여자청년회가 수재민 구제 음악연극대회 개최 1995년 국내 최초의 방송통신 위성 ‘무궁화1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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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 사회학자 겸 체육지도자 이상백 출생
대구 출신 이상백은 본인은 물론 형제가 다 유명합니다. 그의 큰 형은 화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상정입니다. 둘째 형은 시인 이상화입니다. 이상백은 대구고등보 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는데 그는 두 가지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습니 다. 첫째는 한국에 사회학이란 학문을 보급한 것인데, 사회학이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사회와 연관 지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광복 후 교수가 된 이상백은 서울 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사회학과를 창설했습니다.
학창시절 농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체육지도자로도 활약했습니다. 대학교수 외 에 한국체육회 회장, 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체육 발전과 국제적 지 위 향상에 기여하였습니다. 여러 올림픽대회에 한국 선수단 단장 또는 대표로 참가 한 그는 나중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0년 김석주와 장내주, 대구에서 독립운동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함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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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 여성비행사 박경원 타계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경원은 여성 비행사입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와 간호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2년간 병원에서 일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하였습니다. 1924년 일본의 비행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여성으로서는 특별한 선 택이었지요. 그녀는 비행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1927년 3등 비행 조종사 면허 를 취득하였습니다.
1928년 일본에선 열린 비행경기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였고, 같은 해에 여성이 취득할 수 있는 최고 면허인 2등조종사 면허를 획득하였습니다. 1933년 8월 7일 박 경원은 비행기를 몰고 일본 도쿄의 공항을 출발하여 조선으로 향하던 중 악천후로 인해 비행기가 산에 충돌하면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중국 상하이 학생축구단 대구 방문 친선경기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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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 한국나이롱 원사 제조공장 준공
합성섬유란 화학적 방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합성고분자를 원료로 만드는 섬유 입니다. 합성섬유 중 하나인 나일론을 이용한 제품은 1930년대에 생겼습니다. 하 지만 당시 우리나라(조선)에는 나일론이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1957년 대구의 신천 동에 있는 뽕나무 밭에 공장이 하나 들어섰습니다. 이원만이라는 기업가가 세운 한 국나이롱 공장이었습니다.
‘나이롱’은 당시 나일론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한국나이롱 공장이 설립된 후부터 한국에도 합성섬유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보다 뒤졌던 제조 기술도 빠르 게 향상되었습니다. 그 결과 1963년 오늘 한국나이롱 공장 한 편에 나일론 원사를 직접 생산하는 국내 최초의 공장이 준공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3년 대구MBC 개국 1997년 울릉도에 우리나라 유일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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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소설가 최태응 타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많은 예술가들이 대구로 피난 와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중에 황해도 출신 소설가 최태응이 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월남한 그는 언론인 생활을 하며 창작활동을 하였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대구에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구상, 정비석, 마해송 등 유명한 문학가들과 함께 활동하며 <매일신문>에 소설 <낭만의 조 각>을 연재하였습니다.
최태응은 1956년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대구의 문학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습니다. 최태응은 1957년에 경상북도 문학가협회에서 문학계라는 잡지를 창간 하자 여기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등 대구와의 인연을 이어나갔습니다. 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뒤 1998년 타계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1년 계산성당에서 포교와 문맹 퇴치운동을 하는 모임인 성모회 창립 1936년 손기정, 베를린올림픽서 마라톤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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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 대구부립도서관 개관
대구에는 흔히 중앙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국채보상 운동 공원 옆에 있는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이하 중앙도서관)입니다. 2019년 중앙도서관은 설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1919년 8월 10일 대구부립도서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하면서 중앙도서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대구부립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공공도서관이었습니다.
대구 사람 중에는 중앙도서관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빌린 사람, 공부한 사람이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중앙도서관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기관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고 지금까지도 시민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7년 청구대학 설립한 교육자 최해청 타계1991년 대구직할시교육청 출범(교육위원회와 분리) 2002년 대구학생문화센터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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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 이인호 소령 베트남에서 전사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베트남전쟁 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이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참전하였고, 한 국도 남베트남 지원을 위해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 대륜고 등학교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인호는 청룡부대 정보 장교로 1965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1966년 8월 11일 새벽, 이인호 대위는 소대 병력을 이끌고 투이호아 지구에서 동굴을 수색하던 중에 날아든 적의 수류탄을 가슴에 안고 전사하였습니다. 그의 희생으로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전사 후 그는 소령으로 특진되었고 1967년 이인호 소령을 배출한 해군사관학교에 이인호 소령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1년 독립운동가 박상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1992년 한국 최초 과학위성 ‘우리별 1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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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UN 세계 청소년의 날 제정
8월 12일은 세계의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는 UN이 정한 ‘세계 청소년의 날’입 니다. 대구에서도 2021년 8월 11일~12일 ‘2021년 세계 청소년의 날’ 기념행사가 열 렸습니다. 지구환경 문제 해결 방안을 주제로 한 청소년 동아리 발표대회 등 여러 행사가 열렸습니다.
199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회의에 참석한 학생들이 세계 청소 년의 날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제연합(UN)은 1999년 세계 모든 청소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인류가 함께 노력하자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 청소년의 날을 제정하였습니다. UN은 해마다 주제를 정해 이 날을 기념하고 있습 니다. 2021년의 주제는 ‘인류와 지구별을 위한 청소년의 혁신’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3년 김영삼 대통령, 금융실명제 발표 2008년 서상돈 고택,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어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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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3] <달마가 동쪽으로 ...>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독립영화는 영화의 제작 전반을 관장하는 제작사의 지배에서 벗어나 제작하는 영화를 뜻합니다. 당시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배용균 감독은 1989년 불교 사상에 기초하여 삶과 죽음, 자연과 생명의 의미를 표현한 독 립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발표하였습니다.
감독이 제작, 연출, 각본, 촬영, 미술, 편집 등 영화의 전 과정을 담당했고 출연한 배우들은 연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만들 어진 이 영화는 개봉 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89년 8월 13일 스위스에서 열린 로카르노영화제에 출품되어 최우수작품상인 금표범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1년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1961년 독일 동독 정부 베를린 장벽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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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4] 대구 최초 복합상영관 중앙시네마 오픈
1950년대 대구의 최고 번화가는 향촌동 지역이었습니다. 향촌동에 접한 도로인 중앙로 근처에는 대구극장 등 여러 극장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대구의 개봉관은 한 작품을 배급받아서 일정 기간 동안 상영했습니다. 그런데 1997년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복합상영관인 중앙시네마가 중앙로에 들어섰습니다. 1994년 11월 만경관이, 1997년 아세아극장이 씨네아시아란 이름으로 2개관 복합상영관으로 나누어 개관했지만 3개관 이상은 처음이었습니다.
복합상영관의 등장 몇 년 후 대구 시내에 있는 여러 단일작품 개봉관이 문을 닫았고 현재 대구 도심에는 옛날 한일극장이 있었던 곳에 들어선 복합상영관인 CGV 대구한일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 몇 개 구의 중심 상권에도 복합상영관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해군 한산도 전투에서 일본군 격파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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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5] 대구부가 대구시로 개칭
대구의 한자 표기는 오랜 시간 동안 ‘大丘’였습니다.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1780년), 정식 행정 지명은 대구도호부였습니다. 1895년 대구도호부는 대구부로 개편되었습니다. 하지만 1896년 정부가 부제를 폐지하여 경상북도 대구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910년 대구부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1949년 대구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대구는 1981년 경상북도 행정구역에서 독립하여 대구직할시로 승격하였고,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대구광역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해에 대구 인근 지역인 달성군이 대구광역시에 속하는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5년 조선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남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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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6] 대구국제공항 국제선 첫 취항
대구시 동구에 있는 대구국제공항의 역사는 1961년 부산비행장 대구사무소 설 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해에 대구와 김포(서울) 국내선 노선이 생겼습니다. 그 리고 이듬해인 1962년 대구비행장으로 개항하였습니다. 대구공항에 국제선이 처 음 취항한 것은 1994년 8월이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일본 후쿠오카 노선 전세기 를 처음 운항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일본 노선 확충 외에 중국과 동남아 몇몇 도시를 오가는 국제선 노 선이 생겼습니다. 2000년대 들어 예비활주로가 준공되고 2001년에는 새로운 여객 청사 개관, 2002년에는 화물청사 준공과 더불어 숙박 및 회의장 시설을 갖춘 공항 호텔이 개관하는 등 대구국제공항 시설은 더욱 커지고 좋아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5년 항일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 학생들 해방으로 출옥 1991년 지방교육자치 제도 실시로 지방 교육기관 직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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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7]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 발족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었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정부의 역할을 할 조직의 결성이었습니다. 8월 16일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비롯한 민족지도자들이 ‘조선건국준 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을 줄여서 ‘건준’이라고 합니다. 건준은 지방 지부도 만들었는데 대구에서는 8월 17일 건준 경북지부가 발족하였습니다.
이후 완전한 독립국가를 세우기까지 조직의 설립과 해체가 반복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시(戰時) 또는 전후에 점령지에서 군대가 임시 행정을 행하며 정부 역할을 하는 군정 시기(미국 군정 시대)를 지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1년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 첫 4타자 연속 홈런 2017년 대구시, 태국 방콕(Bangkok)시와 우호협력도시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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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8] 인민군이 쏜 박격포탄 대구 시내 낙하
1950년 8월 3일 이후 경북 칠곡군에 있는 가산 다부동 지역에선 한국군과 북한 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8월 18일 북한군 일부 병력이 금호강 방면 으로 침투하여 대구 시내를 향해 120mm 박격포 7발을 발사했습니다. 박격포탄은 대 구역에 떨어져 역무원 1명이 숨지고 민간인 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날 정부는 부산으로 임시수도를 옮겼습니다.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대구! 다행히 북한군은 대구 시내로 진격하지 못했습니 다. 국군이 다부동 지역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잘 막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말 에 이르러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조금씩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그 리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모든 전선에서 북한군에 대한 총반격에 나섰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0년 대한민국 정부,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전 2006년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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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9]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
1969년 대구의 번화가 동성로에 대구백화점이 개점하였습니다. 1972년에는 교 동시장 근처에 동아백화점이 개점했습니다. 1970년대는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본 격화되면서 국민들의 소득이 조금씩 향상되던 시기였습니다. 대구에 본사를 둔 두 백화점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70년대에 이들 백화점 외에 대구 도심에는 무궁화백화점, 대보백화점이 생겼 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을 제외한 백화점들은 경쟁 에 밀려 사라졌고, 2000년대에는 본사가 서울에 있는 백화점 기업들이 지방으로 진출했습니다. 대구의 경우에는 2003년 롯데백화점, 2011년 현대백화점이 개점하 였고, 2016년에는 동대구역 옆에 대구신세계백화점이 개점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4년 조선의 의병 200명, 경부철도공사 청부회사 공격 1960년 장면이 4·19혁명 후 출범한 대한민국 제2공화국 정부의 총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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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 시인 신동집 타계
신동집은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난 시인입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시집 『대낮』을 간행하며 시인으로서 처음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한국전쟁 시기에 통역 장교로 근무하였던 그는 전역 후 대학 교수가 되어 1986년까지 많은 제자들 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1950년대에 『서정의 유형』, 『제2의 서시』, 1960년대에 『모순의 물』, 『빈 콜 라병』, 1970년대에 『새벽녘의 사랑』, 『귀환』, 『송신』, 1980년대에 『송별』, 『여로』, 『귀환자』, 『누가 묻거든』, 1990년대에 『백조의 노래』, 『시인의 출발』 등의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현대시 분야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그는 1983년에는 대 한민국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3년 첫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 (연2차시험중제1차시험) 2010년 이대우 유고집 2·28은 살아 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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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1]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주관하는 대학생 종합운동 경기 대회입니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하계대회, 동계대회가 있습니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2년에 한 번 열리며, 참가 자격은 대학이나 대학 원에 다니고 있거나 대회 전해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17~28세의 연령이어야 합니다. 하계 유니버시아드 1회 대회는 195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렸고, 1회 동계 대회는 1960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18회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스키장이 있는 전라북 도 무주와 전주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2003년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7년 국민 계몽단체인 대구 자강회가 일제 통감부로부터 해산명령 받음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신문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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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2] 구의 선비 최흥원 타계
최흥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대구로 내려 와 학문에 힘쓴 선비였습니다. 당시 전국의 여러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 기 위해 만든 원리인 향약이 있었습니다. 1739년 최흥원은 그가 살던 부인동 마을 의 향약인 ‘부인동 동약’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과도한 세금과 부역으로 인해 부인동 일대 농민들이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 였기 때문에 그는 부인동 동약을 만들어 우선 농민들의 생활기반을 마련해주고 조 정의 수탈을 완화한 뒤 교화 시설을 설치하여 이상적인 경제공동체를 만들고자 하 였습니다. 당시 이 동약에 대해 조정 관리와 학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후손 들이 잘 이어나간 덕분에 부인동 동약은 100년 가까이 존속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 신설 1960년 대구가톨릭합창단, 8·15경축음악회 (지휘 안종배)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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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3] 경주 155호 고분에서 천마도 발견
경주에 있는 신라 왕릉 중에서 천마총은 매우 유명한 고분입니다.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까지 이 무덤의 이름은 경주 155호 고분이었습니다. 1973년 4월 대규모 학술조사단이 발굴 작업을 시작하였고, 1973년 8월 23일 놀라운 유물이 출 토되었습니다.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말다래에 그려진 말 그림이었습니다.
5∼6세기 신라의 예술문화를 알려주는 신라시대 그림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이튿날 조선일보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훗날 이 그림에 천마도(하늘을 나는 말의 그림)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고분 이름도 천마총이 되었습니다. 천마총에서는 천마도 외에 금관 등 1만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이 ‘경주 천 마총 장니 천마도’인 이 천마도는 현재 국보 제207호입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대구 전매청 파업(노동자 약 700여 명 참가,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파업) 2001년 한국, IMF 관리체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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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경북 구미시에 전자공업단지 조성 결정
196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농업이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였지 만, 196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공업 진흥 정책을 추 진하며 전국 여러 도시에 공업단지 조성사업을 기획했습니다. 영남 지역 공업화의 축으로 해안에 인접한 울산을 중화학공업 중심지, 구미는 대구와 연계해 섬유 전자 산업에 중점을 둔 내륙공업단지로 기획하여 1968년 정부는 구미 지역을 공업개발 장려지구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획을 구체화한 상공부에서 1970년 8월 24 일 구미시에 전자공업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공단이 조성된 이후 구미는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수출산업단지로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선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2년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국교 수립2002년 수성구 가천동 범안대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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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대구에 화원, 냉천, 공산유원지 신설
화원유원지는 1978년 8월 25일 냉천, 공산유원지와 함께 새로 생겼습니다. 유원지로 지정되기 전에도 화원유원지는 낙동강과 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화원유원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사문진나루터입니다.
도로 사정이 나빴던 조선시대에 전국 상인들은 배를 타고 강을 이동하면서 상업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사문진나루터는 낙동강에 있었던 큰 나루터 중 하나로, 부산 등 한반도 남쪽에서 생선이나 소금을 싣고 온 많은 배들이 정박하였습니다. 낙동강의 물길을 이용한 상업 활동은 부산-대구-안동 지역을 오가며 이루어졌습니다. 사문진나루터 외에 오늘날 화원유원지 근처에는 아름다운 문화공간인 강정고령보디아크가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85년 서울-인천 간 전신업무 시작, 전기통신 시대 시작 1972년 대구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지역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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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노동운동가 전태일 출생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1965년부터 서울 평화시장에 있는 옷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당시 한국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 를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권리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는 노동자 모임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고, 정부와 언론에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언론은 전태일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것을 요 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자살했습니다. 전태일의 죽음 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적인 과제로 크게 부각되었고, 그의 죽음은 노동자 권리 향상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789년 전 세계 자유주의 사상 전파에 큰 계기가 된 ‘프랑스 인권선언’ 발표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근대학교인 육영공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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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7]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2년마다 개최하는 대회로 FIFA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로 꼽히는 큰 대회입니다. 대구시 는 한국의 도시 중 처음으로 이 대회를 대구에서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IAAF 에 개최 도시 신청을 하였습니다. 대구의 경쟁 도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오스트 레일리아의 브리즈번이었습니다. 2007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열린 IAAF 총회에서 대구가 경쟁 도시들을 물리치고 제13회 대회 개최지로 결정되었습니다.
2011년 8월 27일 대구스타디움에서 개막식을 한 이 대회는 9월 4일까지 대구스 타디움과 대구시 일원에서 치러졌습니다. 대회의 성공을 위해 당시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염매시장(구 덕산시장) 개설 2003년 두리봉 터널(수성구 황금동)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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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대구 최초 옥션M, 첫 경매 개최
미술품 거래는 주로 경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경매장에서 유명 작가의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면 화제가 됩니다. 세계에는 미술 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회사는 1744년 설립된 소더비, 1764년에 설립된 크리스티입니다. 경매를 영어로 옥션(auction)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서울 옥션 등의 미술품 경매 기업이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경매를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2007년 대구에서는 옥션M이 개최한 미술품 경매 행사가 열렸습니다. 2007년 8월에 열린 경매 행사는 당시 ‘갤러리M’ 이라는 화랑을 운영하고 있던 대구MBC가 서울의 미 술품 경매회사인 K옥션과 협력하여 추진한 행사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2년 화가 이인성 대구에서 출생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 미국 수도인 워싱턴 집회에서 역사적인 인권 운동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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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중앙고속도로(1단계: 대구~안동) 개통
오늘날 대구에는 많은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처럼 대구를 거쳐 가는 도로가 있는가 하면, 광주-대구, 부산-대구고속도로처럼 대구가 출발점 이자 종착점인 도로가 있습니다. 1995년 중앙고속도로 1단계 공사 완료로 대구와 안동을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가 개통하였습니다. 이후 공사를 계속하여 부산시와 강원도 춘천시를 연결하는 총 연장 288.8km의 고속도로가 완성되었습니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후 대구와 춘천 간의 주행시간이 종전의 6시간에서 3시간으로 크게 단축되는 등 지역 간 운송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또한 이 도로는 태백산맥, 치악산국립공원·소백산국립공원, 충주호, 단양8경 등의 명승지를 이어주 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0년 한일 합병조약에 따라 조선의 국권 상실, 일제 강점기 시작 2020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부지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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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0] 김문보, 한국 최초의 바리톤 독창회 개최
근대 이후로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도시라는 점에서 대구는 음악의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음악의 역사에서 대구는 여러 가지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22년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은 최초의 가곡 <동무 생각>을 작곡했으며, 1946년 최초의 고전음악감상실 녹향이 문을 열었습니다. 2003년 전국 최초로 오페라 전용극장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관했습니다.
성악 분야에도 최초가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바리톤 성악가 김문보는 대구 출신 입니다. 김문보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 1926년 고향인 대구에서 아내와 함께 2인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82년 조선이 일본과 제물포조약 체결 1972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이 평양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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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태풍 ‘루사’로 큰 피해
태풍은 북태평양에서 발생하여 강력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저기압을 말합니다. 태풍이 무서운 것은 강한 바람과 많은 비로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최대 풍속 초속 40m의 루사는 강릉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인 871mm 등 전국에 많은 비를 퍼부었습니다. 루사로 인해 24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재산 피해는 약 5조 1400억 원이나 되었습니다.
해마다 한반도에는 여러 태풍이 지납니다. 다른 해보다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해 도 있으며, 태풍에 따른 피해도 차이가 납니다. 루사는 1959년 우리나라를 덮친 태 풍 ‘사라’에 이어, 가장 큰 피해를 남긴 태풍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6년 서울역에서 증기기관차 퇴역식이 열리고, 디젤기관차로 대체 1993년 종합유선방송 공급업체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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