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 대구 10월 사건 일어남
대구 10월 사건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경찰과 시민들 간의 충돌로 시작된 유혈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는 미국 군정 시기인데 대구의 식량 사정이 무척 좋지 않아서 좌익세력이 중심이 되고 노동자와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쌀 획득 투쟁 시위 가 일어났습니다. 10월 1일 시위대에 밀리던 경찰이 발포하여 1명이 사망함으로써 시위는 과격화 되어 경찰서 습격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자 미국 군정은 10월 2일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계엄령 선포 후 대구의 질서는 점차 회복 되었으나, 시위 소식은 다른 지방에도 전파되어 경상북도 경산·성주·영천 등의 지 역에서도 미국 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8년 김진균 가곡발표회(녹향음악실) 1997년 달성공원 향토역사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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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이승엽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2003년 10월 2일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관중들로 만원이었습니다. 전날까지 삼성라이온즈 소속 이승엽 선수는 55호 홈런 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상대팀은 롯데자이언츠였습니다. 2회말, 0-2로 뒤진 상황 에서 선두타자로 등장한 이승엽이 볼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에서 3구째를 때려 홈 런을 날렸습니다. 56호! 이로써 프로야구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이 탄생하 였습니다. 삼성라이온즈의 레전드인 이승엽은 2017시즌 은퇴할 때까지 한국프로야구 15시 즌에서 465개, 일본프로야구 8시즌에서 159개 등 모두 624개의 홈런을 터뜨렸습 니다.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은 2013년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스왈로스 팀 의 발렌틴이 60개의 홈런을 칠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5 대구소학교 개교식 1928 이인성, <어린이> 주최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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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성유스티노신학교 개교
1914년 10월 3일 성유스티노신학교가 첫 신입생을 맞았습니다. 학교는 많은 천 주교 신도들의 정성으로 개교할 수 있었습니다. 천주교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이었 던 안세화 주교(프랑스 이름은 드망즈)가 신학교를 세우려 하자 어떤 이는 건축비 를 보태고 어떤 이는 자신의 땅을 학교 부지로 기증하였습니다. 많은 사제들을 배출하면서 꾸준히 성장했던 이 신학교는 1945년 일본에 의해 강 제로 폐교당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1982년 선목신학대학이란 이름으로 다시 개교했습니다. 1985년 대구가톨릭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94년 효성 여자대학교와 통합하여 현재의 대구가톨릭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달성공원에 왕산 허위 순국기념비 건립 1967년 포항종합제철단지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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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수성유원지 신설
수성못은 주변의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못입니다. 용지봉에서 뻗어내린완만한산세와조화를이룬수성못은풍경이아름다워광복후부터이곳 은 대구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었습니다. 1969년 대구시는 수성못과 주변 일정 지역을 유원지 구역으로 고시, 확정했습니 다. 1980년대 많은 나무를 심고 여러 편의시설이 들어서면서 수성유원지는 동촌유 원지, 화원유원지와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유원지가 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수성 못에 영상음악분수가 설치되었습니다. 수성유원지에는 시인 이상화를 기념하는 상 화동산이 있으며, 해마다 이곳에서는 수성못페스티벌 등의 행사가 열립니다. 오늘의 역사​ ​1993년 망우공원 이름을 망우당공원으로 개칭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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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대구시민회관 개관
1931년 대구역 근처에 대구공회당이 준공되었습니다. 공회당이라는 말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많은 공공행사가 열렸습니다. 대구공회당 건물은 1962년 대구방송국 이 입주한 후 KG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KG홀에선 음악회 등 예술공연이 자주 열렸습니다. 이곳에 새로운 건물을 세워 1975년 대구시민회관이 개관했습니다. 대구시민회관은 당시 대구·경북 유일의 대규모 공연장이었습니다. 대구문화예 술회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대구시민회관에서는 오페라, 가곡회, 유명가수의 콘서 트 등 많은 음악공연이 열렸습니다. 대구시민회관은 2011년 4월부터 2년 6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대구콘서트하우스가 되었습니다. 이곳의 그랜드홀(대공연장)은 국제적 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춘 멋진 공연장입니다. 오늘의 역사​ ​2004년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 봉산문화회관 개관 2007년 제1회 ‘세계 한인의 날’(Korea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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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녹향음악감상실 세운 이창수 타계
1946년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 이창수는 대구시 도심에 녹향음악감상실을 개업 하였습니다. 국내 최초의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었습니다. 대구 음악 애호가들이 즐 겨 찾은 녹향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많은 예술인이 대구로 피난 온 후에는 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명문의 시에 변훈이 곡을 붙인 가곡 <명태>가 녹향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화가 이중섭은 녹향에 와서 담배갑 은박지 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녹향은 1946년 개업 이후 여러 번 이사했습니다. 2011년 창업자 이창수가 타계 한 후 폐업할 상황이 되자 녹향을 사랑하는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이 녹향살리기운 동을 벌였습니다. 덕분에 녹향은 대구문학관 지하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고, 1946년 시작된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1년 경북대학교 설립 인가 1958년 키네마극장에서 대구관현악단(단장 하영수) 창단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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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최초 지방은행 대구은행 설립
대구가 가진 자랑스러운 최초 기록 중에는 광복 후 대구에 본사를 둔 최초의 지 방은행이 생겼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바로 1967년 10월 7일 설립된 대구은행(현 DGB대구은행)입니다. 대구의 상공인들은 힘을 모아 대구에 본사가 있는 은행 설 립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준비 덕분에 정부가 1도 1행(1개 도에 1개 지방 은행) 설립 정책을 결정한 후, 대구에서 가장 먼저 지방은행이 탄생할 수 있었 습니다. 대구은행이 설립되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은행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1호 예금통장을 개설하였습니다. 1967년 설립 이후 대구경제와 함께 해온 대구은행은 그간 대구경북을 위한 수많 은 사회공헌 활동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3년 제1회 봉산미술제 개최 2015년 대구교육청, ‘대한민국 교육수도 대구’ 선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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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경북고 야구부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승
경북고등학교 야구부는 한국 고교 야구의 최고 명문팀입니다. 1920년 처음 만들 어져 1959년 없어졌던 경북고 야구부가 명문팀으로 도약한 것은 1965년 다시 팀을 창단하면서부터입니다. 경북고 야구부는 1967년 전국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후부 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71년에는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등 4 개 주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였습니다. 당시 경북고 야구부가 우승했을 때 대구의 군부대에서 오픈카를 빌려줘 야구부 가 대구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하였습니다. 그 뒤에도 경북고 야구부는 수많은 우승 을 차지했습니다. 현재 대구에는 경북고 야구부 외에 상원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같은 명문 야구부가 여럿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대구직할시 승격 기념 제1회 달구벌예술제 개최 1992년 대구시립오페라단(단장 김완준) 창단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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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대한민국 최초 시민구단 대구FC 창단
한국 프로축구 K리그는 1983년 ‘수퍼리그’란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02년 FIFA한일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오르며 축구 붐이 일었을 때 대구를 연 고지로 하는 프로축구팀을 만들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때 대구시는 기존 에 없었던 시민주 공모 방식으로 축구팀을 창단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프로축구 최초 시민구단인 대구FC가 2002년 10 월 9일 창단되었습니다. 창단 이듬해인 200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대구FC는 K 리그 경기에 참가하였습니다. 대구FC의 탄생은 다른 도시에서도 시민구단이 생기 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구에 이어 인천에서도 인천유나이티드 팀이 생겼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0년 홍해성이 극단 신흥극장 설립 1982년 제1회 달구벌축제 한글백일장 개최(대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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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대구농림학교 동맹휴학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많은 학생들이 동맹휴학으로 일본의 정책에 저항하는 운동을 자주 일으켰습니다.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에서 일어난 학생 항일운동 중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다른 지방으로 퍼졌습니다. 12월부터 전국으로 확산된 학생 시위는 1930년으로 이어졌고 그해 10월 대구에서는 대구농림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으로 항일운동을 하였습니다. 대구농림학교는 1910년에 개교한 학교로, 1946년 6년제 대구농림중학교, 1951년 3년제 대구농림고등학교로 개편되었습니다. 2000년 학교 이름이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로 바뀌었고, 2017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7년 월곡역사공원에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건립 2007년 달성군 도동서원, 사적 제488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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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영남일보 창간
1945년 8·15 해방 후 한국에서는 많은 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영남일보는 1945년 10월 11일 대구 지역의 언론인 등 10명이 힘을 모아 창간하였습니다. 영남일보는 타블로이드판 크기 4면으로 창간호를 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남일보는 큰 활약을 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영남일보는 대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신문을 발간했습니다. 덕분에 대구 시민은 물론 대구로 피난 온 많은 국민들 이 전쟁 상황을 알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를 지나며 영남일보 발행부수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1980년 영남일보는 정부의 언론탄압 정책인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에 따라 매일신문에 흡수, 통합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을 실시한 제5공화국 정권이 끝난 1989년 영남일보는 복간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9년 대구부 의사회 설립 2012년 대구에서 제93회 전국체육대회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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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제1회 달구벌축제 개최
우리나라의 도시 중에는 해마다 여러 축제를 여는 곳이 있습니다. 대구시는 직할 시 승격을 기념하기 위해 1982년 대구를 대표하는 축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축제 이 름은 달구벌축제였습니다. 2005년 대구시는 달구벌축제를 대신하여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축 제를 시작했습니다. 이 축제는 대구시의 브랜드 슬로건인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에서 이름을 딴 축제입니다. 컬러풀 대구는 대구가 가진 다양성, 역동성, 조 화로움을 표현한 브랜드 슬로건입니다.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은 매년 대구 도심에서 열리는데 거리 퍼레이드가 특히 볼만합니다. 2020,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푸른대구가꾸기 사업'으로 대대적인 식수사업 전개 1993년 제1회 향토문인 도서전 개최 (대구시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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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섬유회관 준공
1970년대에는 10층 건물도 고층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1970년대 대구 최고층 건물은 동성로에 있는 대구백화점이었습니다. 1978년 서문시장 근처 동산동에 지상 15층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섬유회관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섬유산업 도시인 대구의 미래 발전을 위해 세워진 건물로, 대구경북섬유직물공업협동조합 등 섬유관련 단체와 기업이 많이 입주하였습니다. 이후 대구에는 하나둘 고층건물이 늘어나기 시작해 1990년대엔 20층 이상 건물도 등장했습니다. 1996년엔 반월당 근처에 25층 삼성금융플라자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그 후 도심의 오피스 빌딩보다 더 높은 아파트들이 세워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8년 대구시 중국 남산동에 있는 성모당 축성식 2013년 대구세계에너지총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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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대구전신전화국 국제전화 통화 업무 개시
전보 접수 및 전송을 담당하는 전신국이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것은 1885년이었 습니다. 이어서 1897년 전화국이 생겼습니다. 전화국은 한양의 궁궐과 인천 지역까 지 개통된 전화선을 운영,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전국 주요 도시에 전화국이 생겼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정부 부서인 체신부가 전신전화업무를 책 임졌습니다. 1958년 대구전신전화국은 국제전화 통화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대구에는 대구전신전화국 외 여러 구에 전화국이 생겼 습니다. 전화국은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7년 정부출자 기관으로 전환한 한국통신, 2002년 민영기업으로 전환한 KT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대구 특산품진열대회 개막 1966년 세계 최고(最古)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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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영화 ‘태양의 거리’ 개봉
<태양의 거리>는 대구 출신 민경식 감독이 1952년에 만든 영화입니다. 민경식 감독은 청년 시절에 극장에서 근무하면서 영화감독을 꿈꾸었고, 한국전쟁 기간에 대구로 피난 온 영화인들과 힘을 모아 <태양의 거리>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시기에 대구를 배경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활을 묘사한 사실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1953년 민경식 감독이 한때 근무한 적이 있는 자유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1950년~1953년 한국전쟁 시기에 제작된 14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원본 필름이 남아 있는 영화가 <태양의 거리>입니다. 이 영화의 원본 필름이 발견된 것은 2013년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6년 아담스 선교사가 계성학교 설립 1929년 대구 염매시장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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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옥수수 박사 김순권 제1회 아시아 혁신상 은상 수상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김순권은 옥수수 내병성 육종을 전공했습니다. 유학 후 1974년부터 농촌진흥청에서 일하면서 좋은 옥수수 종자를 연이어 개발하는 데 성 공했습니다. 1979년에는 아프리카로 가서 국제열대농업연구소의 연구관으로 일하 며 아프리카 풍토에 맞는 옥수수 종자를 개발했습니다. 1995년 귀국한 김순권은 경북대학교 농학과 교수 겸 부설 국제농업연구소장을 맡았고 이때부터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슈퍼옥수수를 심는다는 ‘평화의 옥 수수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이런 성과와 노력을 인정받아 그는 1998년 ‘제1회 아시아 혁신상’, 2003년 ‘미국 국제작물육종가상’ 등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5년 시인들의 모임인 '죽순 시인구락부' 대구에서 결성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주의 운동인 부마항쟁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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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서동진의 주도로 향토회 창립 전시회 개최
근대 이후 대구 미술계에선 여러 화가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선구적인 단 체가 1927년 대구의 젊은 화가들이 만든 미술 문예단체인 ‘영과회’였습니다. ‘영과 회’는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된 후 1929년 해체되었습니다. 1930년 화가들은 서동진의 주도 하에 새로운 미술단체인 향토회를 결성하고 1930년 10월 17일 조양회 관에서 창립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향토회 창립 전시회에 참여한 대구의 화가는 서동진 외에 박명조, 최화수, 김성암, 이인성 등이었습니다. 전시회 기간 동안 하루 평균 2천 명의 관람객이 구경을 올 정도로 제1회 전시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 향토회는 매년 가을마다 전시회를 했는데, 전시회는 모두 6회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총회 1991년 대중가요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대구에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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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일어남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일어난 항일운동 중에는 무력을 이용해 일본에 타격을 준 일도 있었습니다.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경상북도 칠곡 출신인 장진홍은 비밀 항일조직인 광복단에 입단하여 국내외를 넘나 들며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1927년에는 일제의 고관 암살과 중요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을 제조하고, 대구에서 실행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장진홍은 4개의 폭탄을 각각 나무상자에 담아 포장한 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배송했습니다. 이 폭탄 중 3개가 은행 근처에서 폭발하여 일본 경찰 여러 명이 중상을 입고 은행 건물 유리창이 파괴되었습니다. 장진홍은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0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그 해에 순국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6년 제1회 달성군민체육대회가 화원초등학교에서 열림 1984년 대구 도시가스 시설 준공 및 공급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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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제1회 대구사진비엔날레 개막
2년마다 열리는 국제 전시회인 비엔날레(Biennale)는 미술, 사진, 공예 등 다양 한 분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중 사진 분야를 대표하는 것이 대구사진비엔날레입니다. 2006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1회 대구사진비엔날레에는 10개국 60여 명의 사진작가가 참여했습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의 규모는 커져서 2021년 열린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에는 세계 32개국 351명 사진작가의 작품 2천여 점이 전시되었습니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약 20만 명의 관람객이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찾았습니다. 2021년 비엔날레에서는 전시회 외에 도심 속 야외무대 설치, 작가교류 플랫폼 구축 등의 부대행사가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2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이점희 추모 음악회 열림 2000년 청라언덕 사과나무 중 유일한 2세목이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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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성공회 대구교회 설립
기독교의 교파 중 하나인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교회개혁운동 결과로 생겼습니다. 영국은 18세기에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여 많은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성공회는 이때부터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890년으로, 성공회 조선교구 설립을 목적으로 한 성공회 주교가 인천에 도착해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1914년에는 성공회 성직자 양성을 위한 성미가엘신학원이 세워졌습니다. 이 학교는 현 성공회대학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성공회는 대구에도 전파되어 1929년 성공회 대구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때 세워진 성공회 대구교회 건물은 현재 대구시청 근처에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9년 제1회 달성 국악경연대회 개최 2016년 세계물도시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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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일본인에 의한 대구미술전람회 개최
대구에서 최초로 서양미술전람회를 가진 사람은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으로 알 려져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전통 서예와 수묵화를 그리는 작가들도 1922년 1월 교남서화연구회를 조직하여 후진도 양성하고,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런 시 대의 흐름 속에서 대구미술전람회가 1923년 10월 21일, 22일 이틀간 대구에서 열 렸는데, <조선시보> 1923년 10월 24일 기사에 의하면 이 전시의 협찬회장은 일본인 마쓰이였습니다. 출품작은 주로 서화였지만 그 가운데는 신라시대를 전후한 불 상과 도검류 등 고미술품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찌감치 우리 고미술품과 유물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일본인 중에는 이후 우리 문화재의 수집과 일본반출에 앞장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5년 대구우체사 개사 2020년 대구초등수학체험센터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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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김진호 제32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 수립
우리나라 양궁은 세계 최고 실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여자 양궁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21년 도쿄 올림픽까지 단체전 9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한국 여자 양 궁팀의 화려한 시대를 연 주역 중 한 명이 경상북도 예천 출신의 김진호 선수였습니다. 김진호는 예천여고 재학 중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79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 계양궁선수권 대회에서 5관왕에 올랐습니다. 이어 198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다시 5관왕에 올랐습니다. 또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 올림픽에서는 개인전 동 메달을 획득했으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른 후 현역에서 은퇴 했습니다. 김진호 등 우수한 양궁 선수를 다수 배출한 예천은 양궁의 고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5년 서울에 첫 화력 발전소(당인리 발전소) 완공, 발전 개시 1948년 국회에 친열 부역자 단죄를 위한 반민특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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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신명여자중학교 설립
대구에 있는 신명고등학교의 역사는 1902년 대구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브루 엔(한국명 부마태) 여사가 신명여자소학교를 개교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15명의 학생이 입학하였습니다. 1907년 10월 23일 브루엔은 대한제국의 중학교령에 의거하여 신명여자중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신명여자중학교 학생들은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다수가 참여하였습니다. 신명여자중학교는 1951년 학제변경으로 신명여자중학교와 분리되어 신명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되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여성 인재를 키워낸 신명여자고등학교는 2004년 남녀공학이 시행되면서 현재의 신명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5년 제1회 대구건축가작품전 예맥화랑에서 열림 1992년 제1회 대구영상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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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대구에서 최초로 전국체전 열림
우리나라에서 매년 열리는 운동경기 중 가장 큰 행사는 전국체육대회입니다. 이 대회를 줄여서 전국체전이라고 부릅니다. 전국체전은 1920년 열린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를 제1회 대회로 기산하고 있습니다. 1960년 이전까지 전국체전은 대부 분 서울에서 열렸는데, 대구에서는 최초로 1962년 제43회 대회가 열렸습니다. 개막식이 열린 곳은 대구시 북구 고성동에 있는 대구시민운동장이었습니다. 이 때 대구는 경상북도에 속한 도시였기 때문에 이 대회는 경상북도가 주최한 대회였 습니다. 그 후 대구와 경상북도에서는 1977년(제56회), 1996년(제76회), 2006년 (제87회)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어서 2021년 경상북도에서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와 제4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5년 대구운동협회 주최,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림 2002년 대구시,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Plovdiv)시와 자매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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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조선총독부 철도국 대구화물취급소 설치
1905년 개통된 경부선 철도는 승객 운송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용객이 늘어나 면서 열차를 이용한 화물 운송도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1916년 조선총독부 철도 국은 대구화물취급소를 설치했습니다. 화물취급소가 설치된 곳은 대구역 서쪽 건 너편에 있는 본정(오늘날 서성로) 지역이었습니다. 열차를 이용해 오고 가는 많은 짐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화물은 주로 말이 모는 달구지가 운반하였습니다. 열차에서 내려진 화물은 말 달구지에 옮겨져 대구와 경 북 여러 지방으로 배송이 되었습니다. 화물취급소가 있었던 곳 근처에는 대구의 주 요 관공서와 은행 등 상업시설이 들어섰는데, 그중엔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현 대 구근대역사관 건물)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0년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함 2005년 전국 최초 예술영재 교육기관인 대구예술영재교육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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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 동맹휴학
일제 강점기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는 대구경북의 인재들이 입학했던 학교였습니다. 학교 이름을 줄여서 대구고보라고 불렀습니다. 1920년 대 구고보 학생들은 일본 경찰이 호구조사를 빙자하여 한 학생의 집을 불법으로 수색 한 것에 항의하여 동맹휴학을 하였습니다. 이보다 더 큰 동맹휴학은 1928년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은 일본인 교장에게 ‘식 민지 노예교육의 철폐, 조선인 본위의 교육실시, 민족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진정 서를 제출했습니다. 요구 조건이 수용되지 않자 학생들은 동맹휴교를 했습니다. 학 교는 관련 학생들에 대해 가혹한 조치를 했는데 182명을 무기정학 시키고, 18명을 퇴학 처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대한독립군이 일본에 승리를 거둠 1970년 국악협회 경북지부회원, 중앙공원 개장식 축하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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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독립운동가 이상정 타계
1896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정은 어린 시절에 큰아버지 이일우가 세운 우현서 루에서 공부하면서 신학문에 눈을 떴습니다. 1910년대 초 일본에 유학을 떠났고 1917년 경 대구로 돌아와 대구계성학교 미술교사 등 몇몇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 다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1923년 만주로 건너갔습니다. 1937년에는 중국군 장교 를 양성하는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이 되었습니다. 또 그는 1938년에는 대한민국임 시정부 의정원 의원 및 외교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45년 그는 중국군에서 장군으로 진급하였습니다. 그해 8월 15일 광복 이후 그 는장군직에서물러나당시중국에살던조선사람들을보호하고그들이무사히귀 국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7년 대구시, 구마고속도로 개통 기념 제1회 대구시민축제 개최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9차 개헌 국민투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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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대구약령시 40년 만에 부활 개장
1907년 대구 약령시는 대구읍성 남문 밖 지역으로 이전하였습니다. 그 후 1914 년에 조선총독부가 발동한 ‘조선시장 규칙’에 의한 규제로 위축되었습니다. 대구약 령시 상인들은 굴하지 않고 1923년 약령시진흥동맹회를 조직하여 거래 활성화 및 시설 개선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들어 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이후 조선 의 경제를 가혹하게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의 타격도 컸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대구의 한약재 상인들은 약령시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1978년부터 대구 한약협회가 중심이 되어 대구약령시 부활 운동을 벌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5년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1,000억달러 돌파 2010년 경부고속철도(KTX) 2단계 구간(부산~대구) 개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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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북문시장 개장
대구의 거리 이름, 시장 이름에는 대구읍성 때문에 생긴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동성로는 대구읍성 동쪽에 난 도로여서 동성로가 되었습니다. 시장 이름의 경우 서 문시장은 대구읍성 서쪽에 있는 시장, 남문시장은 남쪽에 있는 시장이어서 그런 이 름이 생겼습니다. 이중 남문시장은 원래 대구읍성 남문 쪽에 있었는데, 현재는 그 곳에 염매시장이 있으며, 1933년 경 대구 남산동에 새로운 남문시장이 생겼습니다. 교동시장은 과거 대구읍성 근처에 있는 향교 자리에 들어선 시장이라고 해서 교 동시장이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1946년 대구엔 북문시장이란 새로운 시장이 생겼 습니다. 대구읍성을 기준으로 북쪽에 있었던 이 시장은 점차 발전하여 현재의 칠성 시장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제1회 대구문학상 시상식(수상자 시인 도광의) 1999년 대구교육과학연구원 부속 시설로 교육정보센터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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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 개관
2014년 대구 도심에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이 탄생했습니다. 대구시와 중구 청은 2010년부터 향촌동에 있었던 옛 상업은행 건물과 주변 땅을 사들여 리모델링 해 두 곳을 조성하였습니다. 건물 1, 2층에는 ‘우리 이웃이 살아온 한 시대, 향촌동 이야기’라는 주제로 20세기 역사를 보여주는 향촌문화관이 들어섰습니다. 같은 건물 3, 4층에 문을 연 대구문학관은 개관 당시 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이름을 떨쳤던 대구 출신 문학가들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 니다. 지역 대표 문인 3명(이상화·현진건·이장희)을 소개하는 별도의 전시 시설도 마련하였습니다. 개관 후 대구문학관은 상설전시 외에 대구문학을 주제로 하는 다 양한 기획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2년 조양회관 준공(달성공원 앞) 1981년 대구시립합창단 제1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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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유네스코가 전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 고 활용하기 위하여 1997년부터 세계의 중요한 기록물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하는 사업입니다. 2017년 유네스코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 였습니다. 1907년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 화회의에서 기자를 통해 서방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 후 중국, 멕시코 등지에서도 유사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국가 위 기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적 책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 록물이라고 평가하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1년 북구 매천동에 위치한 팔달고가교 준공 2008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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