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 『죽순』 창간호 발행
대구에는 자랑스러운 최초의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 동인지가 발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46년 5월 1일 창간된 시 동인지 『죽순』이 그것입니다. 죽순 창간호에는 유치환, 박목월, 이호우, 이응창, 이영도 등 17명 시인의 시가 실렸습니다. 『죽순』은 창간호로 1천부를 발행했는데, 당시는 종이 사정이 안 좋은 때여서 책을 발간하는 데는 지금보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죽순』을 발행한 사람은 대구 시내 동산파출소 옆에서 명금당(名金堂)이라는 금은방을 경영하던 시인 이윤수였습니다. 그는 사재를 털어 이 귀중한 시집을 제작하였고 그의 가게는 대구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습니다. 『죽순』은 1949년 12집 이후 종간되었다가 1979년 복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시립합창단 창단(초대 지휘자 장영목) 2018년 신암선열공원 국립묘지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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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달성공원 동물원 개원
1965년 대구시는 달성 안에 종합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1969년 공원 조성을 완료한 데 이어 1970년 5월 2일 달성공원 내 동물원을 개원하였습니다. 달성공원은 이후 대구 시민 제1의 휴식공간이자 초등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가 되었습니다. 달성공원 동물원은 관람 동선이 편합니다. 공원 정문인 ‘시민의 문’으로 들어서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공원 내 동물 대부분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 동선에 따라 달성공원을 이동하면 처음 만나는 동물은 사슴이고 이어서 타조, 호랑이 등 여러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50년 역사를 넘어선 달성공원 동물원은 이제 낡고 좁은 환경에서 벗어나 달성 토성의 원래 모습을 돌려주고자 수성구 지역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중입니다. 오늘의 역사​ ​1997년 대구시, 일본 히로시마 시와 자매결연 2006년 대구상공회의소 창립 100주년 기념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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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대구수목원 개장
대구수목원은 달서구 대곡동에 있는 수목원입니다. 수목원이 들어선 자리는 예전에 대구시가 생활쓰레기를 매립했던 곳으로 대구시는 이곳을 친환경적인 생태 공간으로 재생시키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97년에 수목원 조성 기본계획을 마련하여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흙 150만m³를 활용해 멋진 수목원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대구 시민 중에는 수목원 조성 소식을 듣고 자신이 아끼던 분재, 수석을 기증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2002년 5월 3일 개원 후 대구수목원은 환경부 자연생태 우수복원 사례로 지정 되었으며, 산림청 인증 공립수목원으로 정식 등록되었습니다. 초본 1천300여 종, 목본 450여 종이 있는 대구수목원은 개장 후부터 지금까지 쭉 대구의 명소입니다. 해마다 평균 2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5년 계명기독대학이 계명대학으로 교명 변경 2012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달성한일우호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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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달성공원에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비 건립
어린이날은 1922년 방정환이 이끌던 천도교 서울지부 소년회에서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이듬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데서 시작하였습니다. 어린이날은 1937년까지 유지되다가 일제의 소년단체 해산 명령으로 중단되었고, 1946년 부활 하여 다시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은 1957년 어린이날 때 정부에서 공포한 것으로, 헌장 문안은 아동문학가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의 전문은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1958년 5월 4일 대구 달성공원에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헌장 비석이 세워졌고, 1970년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마더 테레사 수녀, 대구시립희망원 방문 1989년 미국이 금성 탐사를 위한 마젤란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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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대구 방문
교황 중에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요한 바오로 2세였습니다. 교황은 1984 년 한국 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방한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5월 3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비행기 트랩 아래에 엎드려 땅바닥에 입을 맞추고 “(한국은) 순교자의 땅”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한국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습니다. 신자들과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5월 5일 대구에 온 교황은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대구시민운동장에서 김수환 추기경 등 성직자단과 함께 사제 서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다음날인 5월 6일 교황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순교자 103위를 성인품에 올리는 시성식을 주례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9년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최연소 100호 홈런 달성 1988년 어린이헌장문 내용을 9개 항에서 11개 항으로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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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11년 만에 대구시민대운동회가 다시 열림
우리나라에서 운동회는 1896년 서울의 한 학교에서 열린 운동회가 시초입니다. 학교운동회에 이어 시민들이 참여하는 운동회가 조선의 많은 도시에서 열렸습니다. 지금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영선시장은 예전에 영선못이 있었던 곳입니다. 영선못 옆에는 대구 최대 운동장인 대명공설운동장이 있었는데, 1946년 이곳에서 영남일보가 주최한 제1회 대구시민대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운동회를 연 목적은 스포츠를 통해 시민의 단합심을 고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운동회가 열린 날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운동장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근의 언덕에 올라 경기를 관전했다고 합니다. 운동회에는 1천여 명의 선수가 경기에 출전했으니 말 그대로 대(大)운동회였습니다. 대구시민대운동회는 일제 강점기에 중단이 되었는데 1946년 행사는 11년 만에 부활한 행사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2년 제1회 대구소년야구대회 개최 (7개팀 참가, 동운정운동장) 1985년 5월 6일이던 ‘성년의 날’을 5월 3째 주 월요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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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조선통신사 수행단 대구감영 장교 최천종 피살
1763년 조선은 11번째로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습니다. 일본 쇼군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최고책임자는 조엄이었습니다. 통신사 일행 중에는 대구의 경상감영 장교였던 최천종이 있었습니다. 통신사 사절은 1763년 8월부터 이듬해 7월(음력)까지 일본에 다녀왔는데, 1764년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수행단의 일원인 최천종이 피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피살 현장에 남겨진 일본도를 근거로 수사를 벌여 사건 발생 열흘 후 일본인 범인을 체포하였습니다. 조선 측에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여 범인은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조엄은 일본통신사로 다녀온 후 『해사일기』(海槎日記)를 썼는데, 여기엔 ‘최천 종은 내가 경상도 감영에 있을 적에 신임하던 장교로, 순실하고 맡은 일에 부지런 하며 군무에 밝았다”는 인물평이 실려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 1991년 한국 오로라탐험대, 세계11번째로 북극점 탐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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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김수환 추기경 출생
1922년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인근 남산동에서 훗날 한국 천주교의 지도자가 되는 김수환 추기경이 태어났습니다. 김수환은 군위보통학교를 거쳐 1933년 성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에 입학해 2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일본 유학을 하였으나 2차세계대전으로 1944년 귀국하였고, 1947년부터 1951년까지 가톨릭대학(전 서울 성신대학) 철학과를 전공하고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후 대구대교구 안동본당 교구장 비서, 김천본당 주임을 맡았고, 1956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뮌스터대학 및 대학원에서 신학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1966년 마산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주교가 되었으며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복음을 전파하는 데 헌신하였고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의 벗으로 살며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서 한국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2년 경의선(서울-개성 간) 철도 기공식 거행 1973년 어버이 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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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대구상고 학생들, 태극단 결성
1940년대가 되면서 일본은 조선에서 더욱 강압적인 정책을 벌였는데, 학교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일제의 만행에 맞서 조선의 학생들이 여러 항일운동조직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1942년 5월 9일 이상호, 김상길, 서상교 등 26명의 대구상업 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태극단이었습니다. 단원들은 독립투쟁 동지를 규합하여 학술연구토론회 및 체육집회 등을 열었습니다. 연구토론의 주제는 주로 조선의 독립이었고,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학 연구도 하였습니다. 태극단의 활동은 이듬해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전 단원이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5년~10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았습니다. 해마다 대구상원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탑에서는 태극단의 항일정신과 희생을 기리는 추념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1년 대구전기주식회사 설립 1994년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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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부르엔 대구 최초 근대여성교육기관 신명여자소학교 설립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신명고등학교의 역사는 1902년 시작되었습니다. 그 해 5월 10일 대구에서 활동하던 여성 선교사 마르타 부르엔(한국명 부마태)이 대구 최초 근대 여성교육기관인 신명여자소학교를 선교 지부 내에 설립한 것입니다. 1907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같은 해에 신명여자중학교를 설립, 개교하게 되었습니다. 신명여자학교(1919년 당시의 학교 이름) 학생들은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이재인 선생의 지도 아래 전교생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1972년 교내 소공원에 신명3·1기념탑이 건립되었습니다. 1951년 학제 변경으로 신명여자고등학교로 개편하였고, 2004년 남녀공학이 시행되면서 현재의 신명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8년 대구동덕초등학교 대구 최초로 학교 급식 시작 2016년 대구시 북성로에 ‘264 작은 문학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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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대구에서 독립촉성 부민대회 열림
광복 이듬해인 1946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이 가시화된 해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신탁통치 문제를 두고 남과 북,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2월에는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사회운동단체이자 정치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어 3월에는 북한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토지개혁을 단행하였고, 같은 달에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지만 5월 미소공동위원회는 무기 휴회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5월 11일 대구 키네마구락부에서 열린 독립촉성부민대회는 남한에서라도 먼저 독립국가를 세우자는 결의를 한 행사였습니다. 부민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당시 대구의 명칭이 ‘대구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역사​ ​1921년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한 독립운동가 박재혁, 대구 감옥에서 순국 2000년 인도 인구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10억명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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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시인 백기만 탄생
1902년 대구에서 탄생한 시인 백기만은 대구 문학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입니다. 호가 목우(牧牛)인 백기만은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그는 1923년 양주동, 이장희 등과 함께 문학 동인지 <금성> 을 발행했는데, 여기에 시 <꿈의 예찬>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습니다. 백기만은 역시 대구 출신인 시인 이상화, 이장희의 친구였으며, 1919년 이상화와 함께 대구 학생들을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다가 붙잡히는 등 항일저항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상화가 죽은 뒤에는 달성공원에 이상화 시비를 건립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또 이상화와 이장희의 시를 정리하여 『상화와 고월』이라는 추모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1959년에는 죽은 예술가들의 평전인 『씨 뿌린 사람들』을 썼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5년 비슬산 대견사지 삼층석탑,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2호 지정 1995년 우리나라 최대 정려각인 현풍 곽 씨 정려각,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9호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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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경상북도 팔공산을 도립공원으로 지정
도립공원이란 국립공원에 준하는 보존가치를 가진 자연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에서 공원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최초의 도립공원은 1970년에 지정된 경북 구미 금오산입니다. 현재 경북에는 금오산 외에 문경새재, 팔공산, 청량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팔공산은 1980년 5월 13일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하여 경상북도에서 분리된 후에는 전체 공원면적 중 약28%가 대구시 관리 지역이 되었습니다. 현재 팔공산 지역은 경북 관할하의 도립공원 지역과 대구시 관할의 팔공산 자연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상북도에서 팔공산은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 경산시에 걸쳐있습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2012년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아쉽게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1년 대백갤러리 오픈 2003년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에 대구학생문화센터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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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제1회 교남시서화연구회 전시회 개최
교남시서화연구회는 대구의 서화가인 서병오가 서화 교류와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1922년 1월에 만든 모임입니다. 창설 후 교남시서화연구회는 서화교육 강습소 운영, 서화 전람회 및 강연회를 개최하고, 서화전시관 설립운동 등을 하였고, 강습소를 통해 배효원, 서동균 등의 역량 있는 예술가가 성장하였습니다. 교남시서화 연구회 회원들은 1922년 5월 14일에 뇌경관에서 사흘간 첫 전람회를 열었습니다. 1923년엔 규모를 확장하여 대구미술전람회를 열었는데 이 전시회에는 대구의 서양화가들도 참여하였습니다. 또 1932년에 10주년 기념 전람회를 열었으며, 1933년에는 서화 즉매회(書畵 卽賣會)를 열어 작품 판매에서 생긴 수익금을 수재민 돕기에 기부하였습니다. 해방 후인 1953년 교남시서화연구회는 영남서화회로 개칭한 후 계속해서 대구경북 서화계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9년 경북문화단체협의회 발족 1977년 제1회 경북음악상 시상(제5회부터 대구음악상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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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대구 달성리 리선순, 보릿고개에 자선행
고대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나눔의 기록이 많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조선 백성 대부분이 힘든 나날을 보냈 던 일제 강점기에도 개인의 나눔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 예가 1912년 5월 15일 <매일신보>에 소개된 대구 서상면 달성리에 살았던 리선순의 선행입니다. 그녀는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보릿고개(춘궁기)를 맞아 형편이 어려운 동네 열네 집에 벼 두 말, 보리 두 말씩을 나눠주었습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감동하여 그녀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따뜻한 나눔은 한국 전쟁 시기에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구엔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었는데 대구 시민 중에선 피난민에게 거처할 공간과 양식을 나눠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7년 대구부립박물관 개관 1988년 경북 경산 출신 시인 정석모 시비 제막 (청구공원 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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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이문열 <사람의 아들>로 제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이문열은 1948년 태어나 유년시절을 경북 지역에서 보냈습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였고 1970년 중퇴하였는데, 1977년 대구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잠시 매일 신문에서 기자로 근무하였던 이문열은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고, <사람의 아들>로 권위 있는 문학상인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배경으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입니다. 이후 이문열은 <황제를 위하여>, <우리 기쁜 젊은 날>,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6년 경북고등학교 개교 1961년 5·16군사정변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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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한·영 수교 1백주년 기념 영국 로열발레단 대구 공연
1882년 이후 조선은 개방정책으로 외교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그해에 일어난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청나라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개방에 눈을 돌렸던 것입니다. 조선은 구미 국가 중에서 최초로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어서 1883년 영국과 조영수호통상조약을 정식 체결하였습니다. 서울 주재 영국대사관은 1884년 서울에 세워졌는데,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이 대사관은 개화기 대사관 중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 외교공관이 있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한영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방한한 영국 로열발레단은 1956년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몇 개의 발레단을 합병하여 만들어진 발레단으로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입니다. 오늘의 역사​ ​1954년 미국 대법원, 공립학교에서의 인종차별은 위헌이라고 판시 2007년 아동문학가 권정생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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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5·18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남
1980년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희망이 싹텄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1980년 5월 17일 신군부 세력이 단행한 계엄포고령 10호 발표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계엄사령부는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5월 18일부터 정당 및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국회는 폐쇄되었습니다. 또 정치인·재야인사 등이 구금조치를 당했습니다. 아울러 전국 대학에 휴교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여기에 저항하여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0년 충청남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첫 중계 실시 1990년 서독-동독 ‘경제 및 사회 통합’ 조약 맺음 (1990년 10월 3일 독일 완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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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대구청년회 야구팀 전조선야구대회 우승
근대에 야구는 처음엔 학교 스포츠로 보급되었습니다. 1912년 계성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벌인 경기가 첫 시합이었지만, 대구의 첫 공식 야구경기는 1914년 동경유학생 야구팀이 대구를 방문하여 대구의 청년단 팀과 한 경기였습니다. 1922년 동운정야구장에서 열린 대구고보, 희도학교, 해성학교 등 7개 팀이 참가한 야구대회는 첫 학생대회였고 해성학교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구 야구 보급에 큰 역할을 한 단체로 1920년에 결성된 대구청년회는 청년회 내에 야구부가 조직되어 전국 원정을 다니며 많은 경기를 하였습니다. 대구청년회 야구팀은 1924년 열린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9년 대구음악학원 설립 2001년 대구에서 이상화 탄생 100주년 기념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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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제1회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 개막
뮤지컬은 대구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7년 5월 20일 개막한 제1회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DIMF)은 뮤지컬의 도시 대구를 내외에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1회 행사에서는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시민회관 등 5개 공연장에서 26편의 뮤지컬 작품이 선보였습니다. 작품 공연 외에 창작뮤지컬 시놉시스 및 대본 공모전, 어린이·청소년 뮤지컬교육 등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DIMF는 회를 더할수록 콘텐츠가 풍성해졌고, 전통이 이어지면서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산업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2021년 열린 제15회 DIMF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18일간 열렸습니다. 국내 정상의 뮤지컬 스타와 차세대 스타가 장식한 제15회 DIMF 폐막 콘서트는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1년 대구 월드컵경기장(현 대구스타디움) 개장 2007년 한국인, 외국인이 서로 존중하는 사회 조성 위한 세계인의 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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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대구상업고등학교 럭비부 고교팀 최초 일본 원정경기
우리나라에 럭비가 도입된 것은 1923년이었습니다. 대구상업학교(현 대구상원 고등학교) 럭비부는 이듬해인 1924년 창단되었으니, 대한민국 럭비의 역사와 함께 한 팀이라 할 것입니다. 1965년 대구상고 럭비부는 고교팀 최초로 일본 원정 경기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대구상원고등학교 럭비부는 전국대회에서 무수히 우승했습니다. 전국체육대회에서만 5회 우승하였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전국 춘계 럭비리그 3연패를 달성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한·중·일 국제대회에서도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팀! 바로 대구상원고등학교 럭비부입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시립무용단 창단공연(안무 김기전) 1990년 대구문화예술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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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명금당에서 백신애 추모회 열림
백신애는 일제 강점기 대구와 경북을 대표하는 여성 문학가입니다.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백신애는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고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여성동우회 활동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뒤 시베리아 방랑을 했습니다.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라는 작품을 발표 하여 문단에 데뷔한 그녀는 1930년 5월 일본에 건너가 니혼(日本)대학 예술과에서 문학과 연극을 공부하고 1932년 귀국했는데, 특히 1934년에 <꺼래이>, <복선이>, < 적빈(赤貧)>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대표작 <꺼래이>는 일제 강점기에 시베리아를 넘나드는 한국인의 실상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건강 악화로 1939년 타계하여 자신의 문학 재능을 더 이상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비만과의 전쟁’ 선포 2016년 대구 범어대성당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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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우배선 의병 봉기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전쟁 준비에 소홀했던 조선은 일본의 공세에 일방적으로 밀렸습니다. 이때 조선 방어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이었습니다. 1569년 태어난 우배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신이 가진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화원과 달성 지역에서 대구의 의병장인 서사원 등과 힘을 모아 유격전술로 연전연승하며 위용을 떨쳤습니다. 공적을 인정받아 합천 군수에 임명되었으나 곧 관직을 버리고 귀향했고 다시 조정에서 그를 금산군수, 그리고 낙안군수에 임명하였으나 오래 벼슬에 머무르지 않고 낙향해 후배 양성에 힘을 썼습니다. 그의 호는 월곡(月谷)이며, 대구시 달서구의 월곡역사공원에 1992년에 세워진 우배선 창의유적비가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3년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개교 1986년 제4회 전국지방연극제, 대구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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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전국에서 교육위원회 선거 실시
오늘날 각 광역자치단체의 교육행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감이 지휘하는 교육청과, 지역 의회에 있는 교육위원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교육 위원회가 탄생한 것은 1952년 5월 24일 시·군 교육위원회 위원선거가 실시되면서부터입니다. 1952년 영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대구·경북에선 시·읍·면 교육위원을 선출하는 선거에 약 900명이 출마했다고 합니다. 교육감 및 교육위원을 선출하는 방법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5·16정변 후에 교육위원회의 기능이 정지된 시기도 있었습니다. 1991년에는 새로 제정된 교육자치법에 따라 각 광역 시도별로 교육위원선거가 실시되었고, 같은 해 9월 전국 광역시·도 교육위원회가 개원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다시 법이 바뀌어서 현재 교육위원회는 각 시도 지방의회에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5년 이장희,백기만, 명월관 주최 ‘조선시인선집 간담회’ 참석 1986년 제1회 대구문인바둑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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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대구역 역사 준공
1905년 1월 1일 경부선 개통 때 문을 연 대구역 역사는 승객 증가로 증축이 불가피했고 역이 생긴 지 8년만인 1913년 역사를 신축 준공하였습니다. 서양식의 2층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대구역은 서울에 있는 경성역 다음으로 큰 역이어서 1934년 1일 평균 수송인원이 약 2,800명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또 대구역 앞 광장은 그 시기에 수많은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시기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기까지 대구는 전방 지휘본부였던 탓에 대구역은 전방으로 가는 신병들의 집결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대구역은 1960~70년대에도 대부분 시민들에게 서울과 부산 방면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었고, 역 광장에서는 많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수송량과 승객이 늘어나면서 대구역 역사는 증축이 필요해졌고, 1978년 새로운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8년 대구~경주~포항 구간 철도개통 1953년 대구일보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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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대구미술관 개관
2011년 5월 26일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대구광역시의 시립미술관입니다. 대구미술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대구에는 시내에 갤러리가 많이 있었지만 큰 미술관이 없어서 대규모 전시회를 여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구미술관은 수성구 삼덕동에 세워졌습니다. 미술관이 개관한 후 얼마동안 미술관 위치가 대구 도심에서 다소 멀고, 소장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아 미술관을 찾는 발길이 많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콘텐츠가 많아지고 좋은 기획전시를 많이 하면서 대구미술관은 대구 예술을 대표하는 인프라로 자리잡았습니다. 대구미술관은 현재 대구가 배출한 일제 강점기의 천재화가 이인성을 기념하는 이인성미술상 사업을 주관하고 있으며, 디지털미술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구 미술관 근처에는 대구스타디움, 대구육상진흥센터가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5년 대구부제 실시로 경상감영 폐지 1946년 경북상공회의소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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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대구일일신문 창간호 발행
대구 최초의 신문은 대구일본인회가 1901년에 창간한 주간지 <달성주보>였습니다. 대구 거주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4호를 끝으로 폐간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대구에는 많은 신문사가 생겼습니다. 1941년 일제는 대외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개 도에 1개 신문만 둔다는 정책 하에 대구에서 발행되던 <대구일일신문>, <조선민보>, <대구일보>를 <대구일일신문>으로 통합하였습니다. 현재 지역 신문인 <영남일보>는 1945년 10월 11일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창간 되었습니다. <매일신문>은 1946년 당시 대구에서 발행되었던 <남선경제신문>을 모체로 창간되었는데 1950년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고, 1960년 <매일 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4년 대구광역시교육정보원(현 대구미래교육연구원) 개원 2019년 대구교육연수원 전국 최초로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연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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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경북대학교 개교식
경북대학교가 설립된 해는 1946년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설립된 대구사범학교, 대구의학전문학교, 대구농업전문학교가 광복 이후인 1946년에 국립대학으로 승격되어 각각 대구사범대학·대구의과대학·대구농과대학이 되었습니다. 그후 국립경북대학교로 통합되면서 각 단과대학으로 새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경북대학교 출범 당시 사범대학, 의과대학, 법정대학, 문리과대학, 농과대학의 5개 단과대학에 24개의 과가 있었습니다. 경북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 5월 28일인 이유는 이날 국립경북대학교 개교식이 열리고 신입생이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경북대는 대구시 북구 산격동 메인캠퍼스, 의과대학 등이 있는 동인캠퍼스, 경상북도 상주시 가장동에 상주캠퍼스가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592년 대구 유림, 부인사에서 창의(倡義)를 발의1954년 대구여자고등학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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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DTC 대구섬유박물관 개관
대구는 1950년대부터 섬유·패션산업의 중심 도시입니다.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 자리하고 있는 DTC는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Daegu Textile Complex)의 영어 줄임말입니다. 섬유박물관은 DTC를 대표하는 시설이자 대한민국 유일의 종합섬유박물관으로, 2015년 한국의 섬유·패션의 역사를 조망하고 새로운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건립, 개관하였습니다. 전시공간은 패션관, 산업관, 미래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설전시실은 섬유 와 패션 관련 약 800점의 전시물을 갖추고 있습니다. 박물관 내외에는 실과 바늘, 누에고치 콘셉트 등으로 제작한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3년 작곡가 하대응 타계 1996년 대구광역시 남부교육청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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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대구시 ‘집집마다 문패 달기 캠페인’ 실시
문패는 호주나 거주자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 문에 다는 패(牌)입니다. 우리나라 에서는 1894년 7월 11일 군국기무처가 전국 각 집에 문패를 달도록 하면서 문패 부착이 처음 실시되었으며 근대에 우편제도가 도입되고 편지 발신과 수신이 빈번해지면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문패를 달지 않는 집이 많아서 우편배달에 불편이 있어서 1961년 대구에서는 ‘집집마다 문패 달기 캠페인’을 실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패는 더 보급되었고, 남녀평등의 한 실천으로서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다는 집도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개인정보보호와 문패 기능을 대신하는 호별 우편함이 설치된 아파트 거주자의 증가로 문패 사용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8년 교육자 최해청, 대구 무태강변에서 대구야간대학기성회 조직 2001년 대구스타디움에서 컨피더레이션컵 축구 개막경기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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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대구상업회의소 설립 인가
1906년 대구에 대구민의소라는 단체가 생겼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대구민의소 소속 상공인들은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 대구읍성 외곽에 있던 서문시장의 대신동 이전을 적극 추진하여 이후 서문시장은 대구 상업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대구민의소는 설립 후 현재까지 대구상무소, 대구상업회의소, 대구상공회의소, 경북상공경제회, 경북상공회의소를 거쳐 현재의 대구상공회의소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광복 후에도 대구상공회의소는 대구경제 발전을 위한 여러 일을 하였고, 산업화 시대에는 지방은행 설립에 앞장서 1967년 전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탄생했습니다. 또 대구시의 직할시 승격, 대구공항의 국제공항 승격 등 지역경제의 많은 현안 해결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1년 관덕정순교기념관 개관 2002년 대구동산병원 구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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