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 서울~부산 간 경부선 개통, 대구역 영업 시작
경부선은 1901년 일본 자본의 회사인 경부철도주식회사가 공사를 시작해 1904 년 12월에 완공하였습니다. 1899년 개통한 경인선에 이은 두 번째 철도였습니다. 경부선은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영업을 시작했는데, 이날 대구역도 영업을 시작 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조선침략을위한발판으로건설된경부선개통후일본인의대 구 진출은 본격화되었고, 대구역은 대구 도심 발전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구역 인근 북성로는 대구의 최대 상권으로 부상했습니다.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된 뒤 경부선 수송량은 급격히 늘어났고, 일제는 1936년에 경 부선 복선 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 오늘의 역사​ ​1913년 대구에 전기 공급 1988년 서구 및 남구 일부를 관할로 달서구 신설 1995년 대구직할시교육청을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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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계산성당 초대 주임 김보록 신부 선종
김보록(프랑스 이름은 로베르)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로 1876년 서품 을받았고, 1877년조선에왔습니다.1882년 부터 경상도 지방 전교를 전담하게 되었고 1891년 대구에 정착한 후에는 30여 년 간 이곳에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대구의 신자들과 힘을 모아 1902년에 고딕 양식의 현 계산성 당을 완공하였습니다. 계산성당은 1911년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고, 김보 록 신부는 초대 주임신부가 되었습니다.1919년 건강 악화로 은퇴한 후에는 주교관에서 회고록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는 1922년 1월 2일 선종하여 교구청 내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현재 계산성당 마당에는 김보록 신부를 기리는 흉상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5년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 개최1959년 최초의 달 탐사선 루나 1호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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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이육사, 시 <말> 발표하며 문학활동 시작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입니다.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 하고, 대구 교남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927년에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육사(陸史)라는 이름은 대구형무 소 수감번호 264에서 따 온 것입니다.1930년 그는 조선일보 대구지사 기자로 활동하며 첫 시 <말>을 발표했습니다. ‘흣트러진 갈기 / 후주군한 눈 / 밤송이 가튼 털 / 오! 먼 길에 지친 말 / 채죽에 지 친 말이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경오년 새해를 맞아 그 해의 간지 동물인 말에 대해 쓴 시입니다. 이육사는 <말> 외에 <청포도>, <절정>, <광야> 같은 시를 남겼습 니다. 이육사는 17번 옥고를 치렀고, 1944년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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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영남체육회 제1회 조선빙상경기대회 개최
근대 이후 대구에 처음 도입된 스포츠는 야구,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이었습니다. 구기 종목에 이어 1920년대 들어 빙상과 수영이 보급되었습니다. 스포츠 보급을 이끈 것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였습니다. 계성학교, 대구고보 등에 빙상부가 생겼 고, 여학생 중에도 스케이트를 타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1925년경엔 대구 최초의 수영장이 개장하였습니다. 1922년 대구에선 대구운동협회가 발족하였는데, 협회는 1935년 발전적으로 해체되어 영남체육회가 되었습니다.영남체육회는 일제 강점기 때 대구경북 지역에 스포츠를 보급하고, 대회를 개최 하는 주역이었습니다. 1936년 1월 4일 조선빙상경기대회가 열린 성당못 자리는 매 립되었고, 지금 그 자리에는 롤러스케이트장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중학생 교복과 두발 자유화 발표1951년 한국전쟁 때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한국 정부 서울 철수(1·4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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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야간 통행금지 해제
야간 통행금지 제도는 분쟁이나 재난이 있을 때 치안 유지를 위해서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제도입니다. 통행금지 시간은 밤 12시~이튿날 새벽 4시였습니다. 이 제도 는 1945년 미국 군정청의 ‘미 군정 포고 1호’에 따라 그해 9월 8일부터 시행되었습 니다. 1982년 해제 직전까지 매일 밤 10시 라디오에서는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 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야간 통행금지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1964년 이후 제주도 등 일부 관광지에서 해제되었고, 부처님 오신 날,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 신정 등 특별한 날에는 전국적으로 일시 통행금지가 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1월 5일 자정부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해제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89년 독립운동가 김상옥 출생1995년 케이블 TV 시험방송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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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가수 김광석 타계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1982년 대학 진학 후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고, 1988년 그룹 ‘동물원’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989년 솔로 로 독립해 <사랑했지만> 등의 히트곡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 소극장 중심의 공연에 주력하여 단독 라이브 공연 1,000회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습니다.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시 중구 대봉동 인근 방천시장에는 ‘김광석다시그리기 길’이 조성되어 그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벽화와 작품이 들어선 명소가 되었으 며, 해마다 대구에선 ‘김광석, 나의 노래 다시 부르기’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미 군정청 포고에 따라 제6보병단 1보병연대 대구 진주1970년 시인 이호우 타계(1972년 앞산공원에 이호우 시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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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순종 대구 방문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조선에서 1897년 국호 변경)은 외교권을 일제 에 강탈당하여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순종의 대구 방 문은 대구의 백성들에게는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순종이 열차를 타고 1909년 1월 7일 대구역에 도착했을 때 많은 인파가 역 근처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이날 순종은 대구역에서 내려 오늘날 북성로~수창1길~수창초교 정문~달성공원 구간을 순행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순종은 대구 외에 부산, 마산을 방문했습니다. 2017년 대구에는 순종의 방문을 기념하는 ‘순종 황제 어가길’이 생겼습니다. 또 달 성공원 입구에는 순종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610년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이, 목성의 위성 발견1956년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익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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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대구타워 개관
달서구 두류 2동에 있는 대구타워(현 83타워) 건설 공사는 대구시의 직할시 승 격을 기념하기 위해 1984년 착공하였습니다. 시행사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주)우방이 재착공을 하여 1992년 1월 8일 완공되었습니다. 전망대 부분은 다보탑 형태의 팔각형으로 전통적 건축미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1995 년에는 타워를 중심으로 놀이공원인 우방타워랜드가 개장하였습니다.2011년 이랜드가 인수한 후 놀이공원 이름은 이월드가 되었고, 대구타워는 83타 워로 바뀌었습니다. 83타워란 명칭은 지상 83층 높이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입니다. 83타워 높이는 202m이며, 대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꼽히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3년 음악가 현제명, 대구에서 출생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 민족자결주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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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 유치진 작 <원술랑> 공연
일제 강점기 대구에는 1917년에 건립된 대구좌, 1923년에 건립된 만경관, 1938 년에 세워진 키네마구락부 등의 공연장이 있었습니다. 이중 키네마구락부는 해방 후 문화극장이 되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많은 예술가들이 대구로 피 난 왔고, 여러 문화단체도 대구로 옮겨와 대구는 대한민국 문화수도가 되었습니다.국립극단 전속극단인 신협은 1951년 극작가 유치진의 대표작 <원술랑>을 문화 극장 무대에 올렸습니다. <원술랑>은 유치진이 쓴 작품으로 1950년 서울의 국립극 장 개관공연 작품이었습니다. 대구의 문화극장은 1953년에는 임시로 국립극장이 되었는데, 1957년 국립극장이 서울로 옮겨갈 때까지 이곳에선 많은 공연과 행사가 열렸습니다. 문화극장은 이후 한일극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396년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성곽 완성1965년 빅토리극장(서구 원대동 구 부민극장)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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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영조34, 조엄 경상감사에 임명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1759년 1월 10일 영조가 조엄을 경상감사로 임명하 였습니다. 조엄은 1752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동래 부사, 충청도 암행 어사를 거쳐 경상감사에 임명되었는데, 그가 근무했던 경상감영은 1601년 대구에 처음 설치되어 경상도 전체의 행정을 관할한 곳입니다. 그는 경상감사 재임 때 창 원·밀양·진주에 조창(漕倉)을 설치해 조운이 경상도 바닷가까지 이르게 하는 공적 을 쌓았습니다.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그는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구황작물이 될 수 있음을 알아보고 종자를 들여온 일로 유명합니다. 조엄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는 조엄기념관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4년 대구백화점 모태가 된 대구상회 설립1994년 한국 남극탐험대 남극점 도착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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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 대구애락원 교회 설립
대구애락원의 역사는 1909년 선교사 플레처가 한센병 환자 치료를 위해 제중원 근처에 초가 1동을 별도를 마련하여 치료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13년 ‘영국 나병자 구료회’ 설립자 베일리 부부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플레처에게 병원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한센병 전문 치료병원 건립이 구체화되었습니다.1914년 베일리가 보내 온 건축비로 대구애락원 교회가 설립되었고, 1916년 달성 군 달서면(현 대구시 서구) 내당동 1만 8천여 평 부지에 병원 및 환자 보호시설이 세워졌습니다. 대구나병원이었던 병원 이름은 1924년 애락원으로, 2004년 대구애 락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2013년 대구애락원에서는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설립자 플레처의 후손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417년 조선왕조실록 첫 왕의 기록인 태조실록 완성1984년 경북 안동군 하회마을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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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2] 음악가 박태준 출생
음악가 박태준은 1901년(양력)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계성학교에 다니면서 음 악에 입문한 그는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을 배웠습니다. 1921년 숭실전문학교 졸업 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시 절 문학가 이은상의 가사로 가곡 <동무 생각>을 작곡했습니다. <동무 생각>은 한국 가곡 역사에서 선구적인 작품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1924년부터 1931년까지 모교인 계성학교에 재직하기도 한 그는 150여 편의 가 곡과 동요를 작곡하였고, 이후 연세대 음악대학 초대 학장과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박태준의 등굣길이던 청라언덕에는 현재 동무생각 노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0년 대구학교 연합시위 계획 발각1948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최초 회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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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3] 미국 공보원에서 육군창설 7주년 기념 시화전 개최
미국 공보원(USIS)은 광복 후 서울을 시작으로 여러 도시에 설치되었는데, 대구 미국 공보원은 1948년 중앙로 근처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대구는 전문화랑이 없던 때여서 미국 공보원에선 많은 전시회가 열렸습니다.당시 대구로 피난 온 많은 문학가, 미술가들은 종군작가 및 화가로 활동했는데, 1953년 육군창설 7주년 기념시화전에는 종군화가단과 육·공군 문인단이 참여했습 니다. 미국공보원은 1960년대에 대구시 중구 삼덕동으로 이전하였고, 삼덕동 시절 에도 많은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미국공보원은 훗날 미국문화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7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9년 삼성전자 설립1986년 대입논술고사 첫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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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4] 정치가이자 시인 이효상 출생
1960~70년대 대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던 이효상은 정치에 투신하기 전에는 문학가, 교육자, 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일본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한 뒤 대구 교남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고, 광복 후엔 경상북도 학무국장을 지냈으 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종군 문학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이어서 경북대학교 문리과 대학 초대 학장을 역임하였습니다.정치에 투신한 것은 1960년 총선 때부터였습니다. 경북 참의원 선거에 무소속 출 마하여 당선되었고, 1961년 민주공화당에 입당한 후 국회의장과 민주공화당 의장 서리를 지냈습니다. 1979년 정계 은퇴 후 대구로 내려와 시작(詩作)과 번역작업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시집으로는 『산』(1948), 『바다』(1951)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5년 정부,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제정1988년 새로운 〈한글맞춤법〉 확정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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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5] 앞산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결성
1915년 앞산 안일암에서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13인이 모여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할 것을 서약하고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같은 해 조선국권회 복단은 달성공원에서 경북 풍기의 광복단을 통합하여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였고, 박상진이 총사령에 추대되었습니다.대한광복회는 친일 지주 응징으로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독립군 양성과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18년 대한광복회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었고, 총사령 박상진을 비롯해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습니다. 달성공원에서는 2018년부터 대한광복회 결성 기념행사가 열 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2년 대구에서 교남시서화연구회 설립1954년 육군창설기념 예술축전 개최(대구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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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6] 화가 서동진 출생
서동진은 대구 서양화의 개척자입니다. 대구에서 보통학교를 다닌 뒤 독학으로 수채화를 그리며 실력을 연마한 그는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줄 여서 ‘선전’이라고 함)에 풍경화를 네 차례 출품하여 모두 입선하였습니다. 서동진 은 1927년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 단체이자 동요부와 시가부가 공존하는 종합예술 단체인 영과회에 참여하여 대구 예술계의 젊은 리더가 되었습니다.1927년 영과회는 교남기독교청년회관에서 창립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서동 진은 주로 대구의 거리와 마을을 사생한 수채화를 많이 그렸는데, 대표작으로 <오 후의 풍경>(1931), <뒷골목>(1932) 등이 있습니다. 또 서동진은 대구의 불우한 후배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왔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화 가로 성장한 이인성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4년 이육사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1955년 대구 출신 이규환 감독 영화 <춘향전>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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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7] 대구역 민자 역사 신축 준공
경부선 등이 지나는 대구역 건물은 1905년 1월 1일 개통 후 몇 차례 건물 해체와 신축이 있었습니다. 1913년 목조 2층 르네상스 양식으로 역사 신축하였고, 1978년 현대식 역사로 새로 준공하였고, 2003년 1월 17일 롯데백화점 민자 역사가 신축 준 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민자 역사는 민간자본 투자로 세운 역사를 말합니 다. 협소하고 노후한 기존 건물을 새로운 건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역사 내에 백화점 등의 시설이 입주하여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는 서울의 영등포역으로 199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후 민자역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세워지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대구에 들어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0년 세계 최초 라디오방송국 개국1991년 미국 등의 연합군과 이라크가 대결한 걸프전쟁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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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 대구, 최고 51cm 적설량 기록
적설량과 관련한 기록에 따르면 1953년 1월 18일 대구엔 전무후무한 폭설이 내 렸다고 합니다. 기록 적설량은 51cm였습니다. 대구분지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다른 지역보다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대구에 홍수가 나는 일은 드물었는 데, 1951년의 적설량은 서해안이나 강원지방과 비교하여 눈이 덜 오는 대구에 들이 닥친 기상 대이변이었다고 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대구는 겨울에도 10cm 이상의 폭설이 잘 내리지 않는 도시입니다.2000년대 대구의 최대 적설량은 2012년 12월 28일에 내린 12.5cm였습니다. 도 시 지역에 내린 눈으로 역대 최고 기록은 1990년 강원도 강릉의 67.9cm입니다. 이 런 기록도 울릉도의 사례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2018년 2월 울릉도에선 엿새 동안 눈이 내려 누적 적설량 160cm를 기록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9년 국제협상인 파리강화회의 개최1954년 독도에 ‘한국 영토’ 표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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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9] 대구교육청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 지역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사건 발생 사흘 후 대구교육청은 유족과 시민들께 드리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한편, 학교폭력 예방 대책 수립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 1월 19일 대구교 육청 교육감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종합대책은 ‘폭력과 따돌림이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 조성’을 목표로 설정하 고, 많은 정책들을 추진했습니다. 학교에 학생안전보호실을 설치하고, 보호실에는 CCTV를 설치하여 학생 안전을 강화했습니다. 또 전 학생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 성검사를 실시하여 문제가 예상되는 학생에 대해 개별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대구 최저 기온 –20.2도 기록1946년 〈해방 경축 동계 경기 대회>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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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 『대구읍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
조선시대에 『대구읍지』는 여러 번 편찬되었습니다. 1757년에 만들어진 『대구읍 지』 편찬 사업은 영조의 명령으로 시작된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제 작을 위해 각 고을에서 읍지를 제작하던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어서 1757년판의 내용을 보강한 『대구읍지』가 1768년(영조 44)에 편찬되었습니다. 1책으로 이루어 진 1768년의 『대구읍지』에는 대구의 지도, 연혁, 군명,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 (坊里), 호구(戶口), 성지(城池), 창고와 봉수, 학교, 도로, 교량, 장시, 고적(古蹟) 등 18세기 중후반 대구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1768년판 『대구읍지』는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 년 1월 20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읍지에 이어 서 1832년(순조 32) 경에 『대구읍지』가 다시 편찬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0년 대구시 수산시장(주) 발족2011년 금호강변도로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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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1] 성(聖) 이윤일 요한 관덕정에서 순교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관덕정은 1749년(영조 25)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 민백상이 세운 건물 로, 별무사(別武士)와 군관(軍官)을 선발하는 시험을 실시 하던 곳입니다. 당시 대구읍성 남문 밖 서남 200보 지점 에 있었던 관덕정에는 ‘관덕정 마루’로 불리던 마당이 있었는데, 이곳은 처형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1815년(순조 15)에 일어난 을해박해 이후로 천 주교 신자 25명이 이곳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순 교하였는데 성 이윤일 요한도 그 중 한 분입니다. 관덕정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천주교 대구대교 구가 세운 관덕정순교기념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1864년(고종 1)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가 순교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관덕정은 천주교 순교 성지이자 동학의 순교 성지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63년 달성공원, 사적 제62호 지정1963년 동화사 금당암 동서삼층석탑 보물 제248호,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243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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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2] 대구 공립소학교 설립
1896년 개교한 대구공립소학교는 대구에 세워진 첫 근대식 교육기관이었습니 다. 이어서 1899년에 사립 달성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달성학교 심상과는 1905년 대구공립소학교에 통합되었으며, 달성학교 고등과는 협성학교와 합쳐지면서 달성 학교는 없어졌습니다.대구공립소학교는 1906년 대구공립보통학교로 발전하였고, 1946년 대구국민학 교, 1996년 대구초등학교가 되었습니다. 달성학교 고등과 학생을 받아들인 협성학 교는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로 바뀐 뒤, 1938년 경북공립중학교, 1953년 경북고 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대구에는 1907년 개교 한 수창학교(현 대구수창초등학교), 1910년 개교한 대구공립농업학교(현 대구농업 마이스터고등학교) 같은 근대에 세워진 학교가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5년 조선신탁은행 대구지점 개업1970년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 박희광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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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3] 대구부 등에 조세 견감
1895년 경상감영이 있는 고을인 대구도호부(大邱都護府)는 대구부(大邱府)로 명 칭이 바뀌었습니다. 조선 정부가 전국을 23부제로 나누는 행정구역으로 개편하면 서 최상위 행정구역을 부(府)로, 하위 행정구역을 군(郡)으로 명칭을 통일하였습니 다. 『조선왕조실록』 고종조를 보면 1895년에 이어 1896년에도 대구를 비롯하여 전 국 각 지역에 조세를 덜어주거나 면제해주는 조치가 여러 번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의 목숨이 위기에 처한 데다 전정이나 환곡 등에 폐단이 많아 불만이 쌓인 백성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전국 23부제는 1896년 전국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폐지되었고, 이때 대구부는 경 상북도 대구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4년 대구읍성 북문 밖에 경부철도 건설사무소 설치1941년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연구회’ 결성1997년 앞산순환도로 월촌 고가차도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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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 대구근대역사관 개관
대구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은 대구 근대의 주요사건, 향토인물, 연대사(史) 등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1932년 준공 당시 역사관 건물은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이었습니다. 광복 후인 1945년에는 한국식산은행 대구 지점이 되었고,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이 되었습니다.르네상스 양식의 이 건물은 조형미가 뛰어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2003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8년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이전 후 대구도시공사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대구시에 기증했고, 이후 역사관 건립 사업이 추진되어 2011년 1월 24일 개관하였습니다. 역사관은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체험학습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4년 초대 대구상공회의소 임시총회1994년 신천의 다리인 상동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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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5] 서거정 타계
서거정은 조선시대에 대구가 배출한 걸출한 문신이자 문학가입니다. 1420년(세종 2)에 태어난 서거정은 과거 합격 후 여러 벼슬을 역임했는데, 조선왕조실록 성종실 록에는 서거정이 사망한 후 그의 삶을 정리한 글이 많은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습니 다. 여기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나이 여섯 살에 비로소 글을 읽고 글귀를 지었는데, 사람들이 신동이라고 하였다’는 내용도 있습니다.그는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 10곳을 시로 표현한 대구 10경이란 글도 남겼는데, 도시의 변화로 인해 이제 대구 10경 중에는 사라진 곳이 많습니다. 대신 대구시에 서는 새로 대구 12경을 지정하였습니다. 그중에는 83타워, 팔공산, 수성못, 비슬산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8년 대한협회 대구지회 발기회(달본소학교)2006년 대구부산고속도로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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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6] 전기도둑 극심
광복 이후 얼마 되지 않아 38선을 경계로 분단이 조금씩 가시화되면서 남한에서 는 전기 부족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 발전시설은 북한 지역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한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수풍발전소가 있 었습니다. 이에 비해 남한 지역의 발전 시설은 부족했습니다.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정치적인 이유를 내세워 남쪽에 대한 송전을 중단하면 서 전력난은 더 심해졌습니다. 1949년 1월 26일 대구 지역 신문에는 ‘전기도둑 극심’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물론 전기도둑은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나타났습니다. 전력 부족 문제는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전력생산 기술이 발전하고 전력생산이 늘면서 조금씩 해결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1년 대구상업학교 학생들 동맹휴교로 일본에 저항2012년 대구시교육청, 학교폭력 근절대책 간담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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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 대구 최초의 현악4중주단 창단연주회
4명의 현악 연주자로 이루어진 현악4중주는 실내악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입니 다. 근대에 대구에는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서양음악이 전파되 었는데, 성악과 비교하여 현악은 늦게 보급이 되었습니다. 연주 기법을 연마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현악기를 판매하는 곳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58년 대구 최초의 현악4중주단이 창단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후 대구에서는 여러 현악합주단이 탄생하였지만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창단 후 얼마 가지 않아 해체된 연주단이 많았습니다.1958년 대구 최초 현악4중주단의 창단연주회가 열린 청구대학은 1950년 설립된 대학으로, 1967년 대구대학(1947년 설립된 대학)과 합병되어 현재의 영남대학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6년 대구음악가협회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1973년 베트남전쟁 종식을 위한 파리평화협정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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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 경상북도 전기(前期) 고등학교 입시 부정 사건 발생
1974년에 발생한 경상북도 전기 고등학교 입시 부정 사건은 교사와 필경사가 결탁한 부정시험 사건이었습니다.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시험지에서 정답 번호 숫자는 바르게 하고 틀린 답의 숫자는 약간 비뚤게 해 알려주는 식이었습니다. 응시생들의 의혹 제기로 사건은 하루 만에 드러났습니다.감독 관청인 경상북도교육위원회는 입시 부정이 일어난 학교에 대한 시험을 전면 백지화하고 재시험을 결정했습니다. 대구 외의 지역에서 온 응시자들에게는 여비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상북도교육감이 사퇴하였고, 직원 15명이 직위 해제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조선노동공제회를 대구노동공제회로 개칭1948년 경상북도 학무국 주최 교사 대상 무용 강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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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9] 의열단 사건 김시현 대구형무소에서 출옥
1883년 태어난 김시현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로서,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의열단에 입단하였고, 1922 년에는 김규식, 여운형과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혁명단체대표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습니다. 1923년에는 의열단의 밀명을 받고 조선에 잠입하여 일제 통치기 관 파괴, 일제요인 암살 등을 계획하였는데 이때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0년을 언도받았습니다.출옥한 후에 김시현은 다시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독립운동 기간중16년을감옥에서보낸김시현은광복후정치인이되어제2대국회의원등 을 지냈습니다. 2016년에 개봉된 영화 <밀정>에 나오는 독립운동가 김우진은 의열 단원 김시현을 모델로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57년 대구 달성극장(달성동) 개관1998년 세계 15개국 첫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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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0] 경신고 출신 장승수, 서울대 인문대 수석 합격
1996년 대구 출신의 장승수라는 청년이 전국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구 경신고 등학교를 졸업한 후 6년 동안 중장비 조수, 식당 배달원, 택시기사 등을 하며 공부 했던 청년이 1996년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전체 수석으로 법학과에 진학했기 때문 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당시 수퍼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장승수는 대학 입학 후 권투에 취미를 붙여 2000년 프로복싱 슈퍼플라이급 테 스트를 통과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 장승수는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하였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장승수의 모교인 경신고는 1980년대부터 많은 수의 학생을 명문대학에 진학시켰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3년 달성공원 내 서침나무 보호수로 지정2012년 거문고 악보 금보(琴譜),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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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1] 대구비행장 개장
1935년 경북 달성군 동촌면(현 대구시 동구 지저동) 일대에 비행장을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대구비행장의 용도는 군사용 비행장이었지만 일본, 조선, 만주를 오가는 항공우편도 취급하였습니다.1943년 비행장 확장공사 때에는 대구·경북 지역 학생들이 공사에 동원되기도 하였습니다. 금호강변 동촌에 있어 동촌비행장으로 불렀던 대구비행장은 1945년 부터 1957년까지는 미군 공군기지로 사용되었고, 이때는 K2비행장으로 불렸습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민간 비행장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61년 4월 부산 비행장 대구사무소로 출발하여, 1962년 7월에는 대구비행장으로 개항한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 ​1994년 정부, 중국여행 전면 자유화1995년 세계무역기구 창립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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