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1] 대구 측후소 설치
측후소의 주요업무는 기상관측, 기상예보, 기상통계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시 기에 조선의 기상 관측 필요성을 인식하여 1904년부터 부산 등 5곳에 측후소를 설 치했습니다. 대구측후소는 1907년 오늘날 중구 포정동에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1916년 대구측후소는 중구 덕산동으로, 1937년에는 안정된 관측을 위해 내부에 지 진계실을 둔 동구 신암동 신축건물로 이전했습니다. 대구측후소는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1948년 국립중앙관상대 대구측후소, 1970년 중앙관상대 부산지대 대구측후소, 1992년 대구기상대가 되었습니다. 2013 년 효목동으로 이전한 대구기상대는 2015년 대구기상지청 승격, 2019년에는 측후 소 설립 112년 만에 대구지방기상청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6년 경북문화협회 결성 2020년 대구시교육청, 코로나19 비상대책반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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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 동촌유원지 신설
동촌유원지는 금호강, 강변 절벽, 넓은 모래사장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대 구의 경승지였습니다. 광복 후 유원지로 개발되었는데 1965년 2월 2일 공식적으로 동촌유원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동촌유원지는 대구 계모임 1번지로 인기가 높아 백숙집, 매운탕집이 즐비하였습니다. 1968년에는 동촌 유원지의 명물인 길이 230m 구름다리가 준공되었고, 학생들 의 소풍과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았습니다. 1980년대 자가용이 늘어나 고 다른 지역으로의 관광이 늘면서 동촌유원지의 인기는 하락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자체와 상인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식당과 레포츠 시설, 휴식 공간을 갖춘 곳으로 잘 단장되어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5년 경북공업고등학교 개교 1963년 대구사범학교 마지막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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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창단
삼성 라이온즈 창단 기념식이 1982년 2월 3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초대 감독 은 서영무, 선수는 실업야구 출신 19명과 대졸 선수 3명으로 22명이었습니다. 당시 선수진은 권영호, 박영진, 성낙수, 이선희, 황규봉(이상 투수), 박정환, 손상대, 손상 득, 이만수(이상 포수), 김한근, 배대웅, 서정환, 오대석, 장태수, 천보성, 함학수(이 상 내야수), 김휘욱, 박찬, 송진호, 정구왕, 정현발, 허규옥(이상 외야수)이었습니다. 선수 부족 상황에 대비해 우용득, 임신근 두 코치도 선수로 등록하였습니다. 1982년 3월 27일 삼성 라이온즈는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MBC청룡과 첫 경기를 하였습니다. 이 해에 삼성 라이온즈는 후기 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 하여 대구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2년 대한오페라단, 문화극장에서 창작 오페라 <콩쥐팥쥐> 공연 1962년 울산공업단지 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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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4] 화재로 계산동 목조 십자성당 전소
계산성당이 처음 세워진 것은 1899년이었습니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과 명동 종현성당, 인천 답동성당에 이어 조선에 탄생한 성당이었는데, 건물은 십자가 모양 을 한 2층 기와집 형식이었습니다. 완공 후 1899년 12월 25일에 축성식이 열렸는 데, 40일 만에 1900년 2월 4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화재가 난 1주일 후인 2월 10일 김보록 주임신부는 신자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성당 재건축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천주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고 두렵고 거룩 하신데, 이는 우리의 신덕을 시험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고자 하심인 줄로 받아 들이고, 다시 성당을 더욱 잘 짓기로 한 마음으로 협력합시다.” 김보록 신부는 신자 들과 뜻을 모아 성당 재건 계획을 세웠고,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설계해 1902년 완공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5년 미국, 영국, 소련 정상 얄타회담 개최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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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 서울 4개 학군, 중학교 입학 무시험 추첨 실시
1969년 이전까지는 중학교 입시에서도 학교별로 입학시험을 실시했습니다. 이 른 바 일류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과 외를 받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도 컸습니다. 정부는 결국 입학시험 대신 학군별 추첨제를 실시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였습니다. 1969년 서울에서 먼저 4개 학군 국민학교 졸업생들이 추첨을 통해서 중학교 배 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먼저 시작된 중학교 입시 폐지는 1970년 다른 대 도시에서도 실시하였습니다. 첫 2년간은 학생이 직접 추첨기를 돌리는 방식이었지 만, 1971년부터는 컴퓨터로 추첨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5년 달성공원 관풍루, 지방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됨 2002년 대구교육인터넷방송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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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 대구 2·28민주운동 민주운동 국가기념일로 지정
우리나라 민주운동의 효시로 평가받는 대구 2·28민주운동이 일어난 2월 28일이 2018년 2월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정부는 2018년 1월 30일 국무회의에 서 2·28민주운동이 일어난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심의·의결했고,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2월 6일 공 포하였습니다. 이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대구시와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가 100만 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이 결실을 맺은 것 입니다. 국가기념일에는 정부가 주관하여 전국적 또는 지역적 규모의 의식과 행사 를 주관합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밀주방지 운동, 문맹퇴치 계몽운동 대대적 전개 1996년 내무부, 모든 재난신고 119로 일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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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 경북 도내에 천연두 만연
천연두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염병입니다. 조선 후기 지석영의 노력 덕분에 1885년경에 우리나라에선 처음 천연두 예방 접종이 시 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방 접종을 대규모로 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어서 20세 기 중반까지 천연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46년에도 신년 초부터 천연두가 유 행해 약 2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그해 7월 2일자 대구 지역 신문에도 천연두 만연 기사가 실렸습니다. 천연두가 크게 줄어든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였습니다. 1946년은 천연두 외에 도 콜레라가 크게 유행한 해였습니다. 1946년 5월 중국을 출발해 부산항에 들어온 배에서 ‘호열자’라고도 하는 콜레라가 시작되어 감염자가 약 1만 5천여 명이나 발생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0년 대구 학생들의 항일 시위 계획 사전 누설로 관계자 체포됨 1961년 아카데미극장(남일동)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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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8] 음력설 과세 방지 위해 단전 및 쇠고기 판매금지 정책
조선이 양력(태양력)을 도입한 것은 1896년이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는 음력 설(구정)과 양력설(신정) 두 개의 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두 개의 설을 지내는 것을 이중과세(二重過歲)라고 하였습니다. 양력 사용 후에도 일반 가정에서는 음력 설을 지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양력설 과세를 강요하였습 니다. 해방 후에도 정부는 양력 과세정책을 유지했습니다. 1953년 언론에 보도된 음력설 과세 방지를 위한 단전 및 쇠고기 판매금지 정책 은 당시 권위적인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음력설을 진짜 설날 이라 여기는 풍속은 사라지지 않아서 결국 음력 설날이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 되었고, 1989년부터 본래의 이름인 ‘설날’을 되찾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9년 조선인 유학생들 일본 도쿄에서 2·8독립선언 2007년 초대 대구예술인총연합회 회장 서석규 화백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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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감독 봉준호는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1930 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박태원입니다. 봉준호는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후인 1996 년 영화에 입문했습니다. 2000년 감독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는 평단의 호평 을 받았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살인의 추 억>(2003)을 만든 때부터였습니다. 이후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 (2013)를 발표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2019년에 개봉된 영화 <기생충>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9년 칸 국제영화 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2020년 2월 9일에 있었던 92회 미국 아카데미 상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6년 대구-오사카 국제선 첫 취항 2001년 명천교(달성군 화원읍 명곡리)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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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 대구 부사 권문해 구휼 곡식 직접 배달
경북 예천 출신의 권문해는 1560년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에 올라, 1589년에는 대구부사로 있으면서 매일의 주요 사건과 생각을 정리한 『초간일기』를 남겼습니 다. 현재 보물 제87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590년 오늘 일기에는 ‘맑은 날씨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하빈현으로 이동하여 각 마을에 구제품을 두루 나눠 주고 부강정으로 향하니 이미 어둠이 짙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려운 백성을 돕는 곡식을 직접 나눠주는 모습에서 그가 훌륭한 목민관이었음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백과사전 성격의 책인 『대동운부군옥』(보물 제878호)도 썼습니다. 20권의 이 책은 1589년에 완성한 책으로 지리·국토·성씨·인명·효자 등 11개항으로 나누어 조선과 중국의 문헌 약 190종 가운데 우리나라에 관련된 주요 내용을 정리한 책입니다. 오늘의 역사​ ​1907년 동인의원(경북대학교병원의 전신) 개원1946년 어린이잡지 월간 《새싹》 창간 1992년 대구일마이스터고등학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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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 김광제 등 애국계몽단체 대동광문회 결성
1906년 대구에 광문사라는 회사가 생겼습니다. 사장은 김광제, 부사장은 서상돈 으로 두 사람은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광문사를 설립 했습니다. 광문사는 대한매일신보 대구 지사의 사무도 맡아서 신문 보급 일을 하였 습니다. 광문사 내에는 광문사문회라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1907년 2월 11일 광문사문회 사람들은 회의를 소집하여 모임 이름을 대동광문회로 바꾸며 회장에는 박해령, 부 회장에는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를 추대하였습니다. 대동광문회를 결성하던 회의에 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회의에 참석한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이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나라의 빚을 갚자는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여 기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1년 대구시 위생매립장 개소 (2007년 대구광역시 환경자원사업소로 변경) 2015년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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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 대구지방법원, 국민참여재판 처음 실시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이 법관이 담당하는 형사 사건의 재판 업무에 참여하 는 제도를 말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재판은 법관이 전 담하여 운영하였습니다. 재판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제 도의확립을위해일반국민도일정한요건을갖추어재판절차에배심원으로참여 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생겨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2008년 2월 12일 대구에서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의 성립 요건에는 여러 가지 규정이 있습니다. 국민 배심원 수는 사 건에 따라 5~9명을 선정하고, 배심원 결원에 대비해 예비배심원을 둡니다. 그리고 배심원의 평결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이 없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4년 사보이극장(내당동) 개관1970년 경북중학교는 경운중학교로 교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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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3] 대구 중구청 대구읍성 성벽 돌 모으기 캠페인 실시
1590년 처음 건설된 대구읍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파 괴된 뒤 1736년에 돌을 이용해 석성을 쌓는 공사를 시작해 완공하기까지 1년 2개월 이 걸렸습니다. 이때 들어간 성벽 돌은 약 10만 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 구읍성은 1906년 친일파였던 경상북도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 박중양과 대구에 살던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습니다. 대구읍성의 성벽 돌은 대구 곳곳으로 흩어졌고 그중 상당수 돌은 다른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대구시 중구청은 2008년 2월 13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구읍성 성벽 돌 모으기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은 대구와 읍성의 역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중구청은 2012년에도 대구읍성 성벽 돌을 찾아내는 사업을 하 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3년 대구의 국립극장에서 윤백남 작 <야화> 공연 2000년 이봉주, 도쿄국제마라톤에서 한국 신기록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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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4]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대구 방문 연주
1962년 2월 14일 대구에서 열린 음악가 안익태의 연주회는 화제를 모았습니다. <애국가>의 작곡자였기 때문입니다.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는 어린 시절 에 음악에 입문하여 여러 악기를 배웠고, 1930년대에는 미국에서 작곡과 지휘법을 공부했습니다. 그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6년이었습니다. 이 해에 안익태는 독일의 베를 린에서 <애국가>를 작곡하여 미국·중국 등지에 있는 교포들에게 악보를 발송했고, 이때부터 애국가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를 누가 썼는지는 명확 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1948년 정식 국가가 되었습니다.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던 안익태는 1962년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에 참 석했을 때 대구를 방문하여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세계 최초 전자계산기 ‘애니악’ 등장 1950년 문화극장(현 한일극장), 국립극장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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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화폐 개혁으로 원(圓)이 환(圜)으로 바뀜
폐개혁(currency reform)은 구 화폐의 유통을 정지시키고, 정부에서 새로 발 행한 화폐로 교환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화폐의 가치를 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화폐는 경제활동 수단이기 때문에 화폐개혁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큽니다. 따라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추진하기 힘든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후 1950년, 1953년, 1962년 3차례 화폐개혁을 하였습니 다. 1953년의 화폐개혁은 한국전쟁 중 남발된 통화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추진한 정책이었습니다. 이 조치로 화폐 단위는 ‘원’에서 ‘환’이 되고, 100:1의 평가 절하(100원→1환)를 실시했습니다. 정부는 1962년 다시 화폐개혁을 하여 기존 ‘환’ 표시를 ‘원’으로 변경하고, 평가 비율을 10대 1(10환→1원)로 조정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6년 조선경편철도, 대구-경주-울산-동래 노선 인가1961년 대구 서문시장에 큰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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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6]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 미군 위문공연차 대구 방문
한국전쟁이 휴전협정으로 끝난 해는 1953년이었습니다. 1954년 한국에는 한국 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한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UN연합군도 있었습니다. 1954년 2월 16일 대구의 동촌비행장(현 대구국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인기 배우인 마릴린 먼로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녀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에 머물고 있을 때, 미군 당국으로부터 한국에 있는 장 병들을 위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요청을 받아들인 그녀는 2월 16일부터 3박 4일 동안 서울을 비롯해 대구, 포항, 동두천 등에서 10차례 위문 공연 을 가졌고, 병사들을 위한 배식 봉사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대구공립상업학교(현 상원고등학교) 설립 인가 1927년 경성방송국 국내 첫 라디오방송 송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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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7] 경상북도 관찰사에 이용익 임명
1896년 조선 정부는 전국을 13개의 도로 나누었는데, 그중 한반도 남부(충청·전 라·경상)와 북부(평안·함경)의 5개 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만들었습니다. 각 도의 수령은 관찰사라 칭하였습니다. 1905년 경상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용익은 보부 상 출신으로 1882년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황후)를 안전하게 피신시킨 일이 계기가 되어 출세한 인물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무렵 친러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용익은 일본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귀국 후 경상북도 관찰사로 임명되었는데 대구의 일본인들 과 친일파 단체인 일진회의 견제와 저항을 받아 부임 3개월 만에 관찰사에서 물러 났습니다. 이용익의 사임은 당시 대구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텃세가 얼마나 심했는 지알수있는사건입니다. 오늘의 역사​ ​1933년 대구노동자협의회(준비회) 사건으로 기독교인 22명 검거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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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발생
2003년 2월 18일 오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습니 다. 우울증을 앓던 50대 남성의 방화로 사망자 192명 등 3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 였습니다. 방화는 이날 오전 9시 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가 중앙로역 구내 에 들어설 때 일어났습니다. 1079호 기관사가 본부 통제실에 즉각 보고하여 후속 열차 진입을 막고 진화와 구조 활동이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했지만, 기관사가 당황하여 대피하는 바 람에 비상상황 전파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화재 발생 사실을 모르는 다른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면서 피해는 더욱 커졌습니다. 참사 이후 2004년 6월 각종 재해 와 재난의 효율적 예방과 관리를 전담하는 조직인 소방방재청이 설치되는 등 정부 의 재해 재난 관리체계에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한국예총 경북지부 결성(경북문화회관) 2020년 대구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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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9] 대구읍성 공사 시작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영남제일관 앞에는 조선후기 대구읍성 개축을 기 념하여 건립한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가 있습니다. 비석은 1737년(영조 13)에 건 립된 것으로 원래 대구읍성의 남문 밖 관덕정 자리에 있었습니다.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인 민응수가 추진한 대구읍성 석성 개축 공사는 1736년 2월 19일 시 작되었습니다. 민응수는 축성을 끝낸 것을 기념하여 영영축성비를 세웠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대구읍성 성벽 높이는 서남쪽이 18척, 동북쪽은 17척 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영조척으로 1척은 약 31.2cm이니, 대구읍성 높이가 약 5m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영축성비는 대구읍성이 파괴된 후 대구향교 에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5년 대구미술가협회 창립 2006년 대구 시내버스 준공영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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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0] 대구방송관현악단 창단 공연
1950년대부터 대구의 음악가들은 교향악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노력 은 1957년 대구현악회 창단, 대구교향악단, 대구관현악단의 탄생이란 결실을 맺었 습니다. 하지만 자금난 때문에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단체로 자리 잡지는 못 했습니다. 이때 대구방송국(KBS대구방송의 전신)의 후원으로 대구방송관현악단이 만들어졌고, 1963년 2월 20일 KG홀에서 창단공연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구방송관현악단 창단 소식에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 이 축전을 보내주었습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는 공연을 축하 하는 친필 사인을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경북 사진문화 연맹 예술사진전 개최 1973년 대구성보학교 설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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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1] <국채 1300만원 보상 취지서> 발표
2월 21일은 ‘대구시민의 날’입니다. 원래 대구시민의 날은 10월 8일이었는데, 2020년부터 2월 21일로 바뀌었습니다. 1907년 2월 21일 대구에서 김광제와 서상 돈 등 13인을 발기인으로 하는 <국채 1300만원 보상 취지서>를 발표했기 때문입니 다. 이 운동은 백성들이 힘을 모아 당시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 민 애국운동이었습니다. 취지서를 발표한 후 대구에서는 곧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금운동이 시작되었습 니다. 이 소식이 <대한매일신보> 등 여러 신문에 보도되자 전국의 각계각층에서 뜨 거운 호응이 일어났습니다. 20세기 역사에서 국채보상운동은 시민들이 주체가 된 최초의 애국운동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정훈합창단을 모체로 대구방송합창단 창단 2006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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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화원공립보통학교 개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는 1894년 지금의 서울 교동초등학교 자리에 서 개교한 교동소학교였습니다. 그리고 1895년 <소학교령>이 시행되면서 서울과 지방에 여러 공립 소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1906년 공포된 <보통학교령>에 의해 소학교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뀌었고, 1926년에는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로 바뀌 었습니다. 일제가 만든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1941년에 도입되었는데 8·15 광복 이후 반세기 가까이 유지되다가 1996년 초등학교로 개칭되었습니다. 1921년 2월 22일 설립된 화원공립보통학교는 2학급으로 개교하였는데, 현재 이 름이 대구화원초등학교인 이 학교는 2021년에 98회 졸업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2년 대구기독여자청년회에서 명도여학원 설립 1996년 대구남부교육청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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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 대구 남일동 부인들의 패물폐지부인회 국채보상운동 참여
1907년 2월 21일 대구에서 처음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후 대구에선 여성들도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같은 해 2월 23일 대구 남일동에 사는 부인 7명이 패물폐지부인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모임을 만든 7명의 여성은 2월 23일 ‘나라 위 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는 남녀가 다르지 않다’는 내용의 취지문을 발표하고 은반 지, 은장도 등의 패물을 국채보상운동 성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이후 전국 곳곳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30여 개의 여성단체가 생겼습니다. 패 물폐지부인회에 참여한 대구 여성 7명의 이름은 그동안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는 데, 2015년 족보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이름 찾기 운동을 벌여서 7명 중 6명의 이 름 ‘정경주,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 서채봉, 김달준’을 확인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조인 1972년 현대 울산조선소 26만 톤급 유조선 건조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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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4] 대구발전동우회 독수리 상징석 대구시에 기증
우리나라 각 시도에는 지역을 상징하 는 동물, 나무, 꽃이 있습니다. 대구의 상징 시조(市鳥)는 활달한 기상과 개척자적 시민정 신을 상징하는 독수리입니다. 1983년에 시조로 정했습니다. 대구시를 상징하는 나무는 곧게 뻗어 가는 기상을 대표하는 나무인 전나무이고, 상징하는 꽃은 순박하고 순결한 이미지를 가진 목련입니다. 1996년2월24일대구시청청사입구에독수리조 각품이 설치되었습니다. 대구발전동우회라는 모임 에서 기증한 조각품으로 시민의 기상과 애향심을 드 높이기 위해 기증한 것이었습니다. 대구를 상징하는 동물, 식물은 대구 곳곳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2021 년 12월 개통 예정인 서대구고속철도역의 모습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 니다. 또 역 안에는 목련꽃 모양의 조명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오늘의 역사​ ​1919년 대구금융조합(금융기관+협동조합의 성격을 지닌 기관) 설립 1923년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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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5] 근우회 대구지회 설립대회
근우회는 1927년에 생긴 여성 사회운동 단체입니다. 3·1운동 이후에 전국적으 로 많은 여성단체들이 생겼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대부분 해체되었습니다. 이런 어 려운 상황에서 조선의 여성들이 뜻을 모아 교육운동, 민족경제 진흥운동, 생활향상 계몽운동을 목적으로 만든 단체가 근우회입니다. 서울에서 근우회가 만들어진 후 지방에 지회가 만들어졌는데, 대구에선 1928년 2월 28일 조양회관에서 근우회 대 구지회 설립대회가 열렸습니다. 1929년 5월에 근우회 전국 지회는 약 40여 개가 되었는데, 근우회에 참여한 여 성들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것은 조선의 독립이었습니다. 근우회 회원이 늘어날수 록 일제의 탄압도 강해져 결국 1931년 근우회는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3년 북한 이웅평 대위, MIG19기 몰고 귀순 1997년 대구외국어고등학교, 대구과학기술고등학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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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 고종 황제 국채보상운동 참여 칙어 발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1907년 당시 대한제국 황제는 고종이었습니다. 대구에 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 많은 성인 남자들이 담배를 끊거나 줄여가면서 마 련한 돈을 성금으로 냈는데, 이 소식은 곧 궁궐에도 알려졌습니다. 백성들의 나라 위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은 고종 황제는 1907년 2월 26일 자신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칙어(황제나 임금의 말)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백 성들이 일으킨 국채보상운동을 국가에서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고종 황제의 칙어 발표 후 대신들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국채보상운동 소 식은 더욱 빨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일본 유학생들과 미국과 러시아에 있는 교포들도 성금 모금에 참여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8년 학생 비밀결사조직 ‘혁우동맹’이 ‘적우동맹’으로 개편 1995년 대구의 초등학생 김영식, 킬리만자로 세계 최연소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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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경상감영 측우대 국보 제330호 지정
측우기는 1442년(세종 24) 강수량 측정을 위해 세계 최초로 만든 기구 입니다. 측우대는 측우기를 받쳐주 는 장치를 말합니다. 측우기 발명 후 조선 정부는 측우기를 제작해 전국의 감영에 보내서 각 지방의 강수량을 측정하도 록 했습니다. 2020년 2월 27일 문화재청은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기구로서 역사적 가치가 큰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와 보물 제842호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보물 제844호 ‘창덕궁 측우대’를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이 중에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원래 경삼감영 선화당 근처에 있었지만 현 재는 국립기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측우대로 제작 시기 는 1770년입니다. 조성연대(영조 46)가 밝혀진 유일한 측우대입니다. 오늘의 역사​ ​1924년 대구 서부금융조합 설립 2003년 대구역 롯데백화점 대구점 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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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8] 대구에서 2·28민주운동 일어남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났던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된 민주운동입니다. 당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인 자유당은 제4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구의 학생들이 일요일인 2월 28일에 열리는 야당 후보의 유세장 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8개 공립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등교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 조치에 대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2월 28일 대구의 거리로 몰려 나와 정부의 반민주적인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것은 1945년 광복 이후 처음으 로 학생들이 거리에서 민주주의 요구를 외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같 은 해 3월에 마산에서, 4월에 서울에서 대규모 민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국민의 저항에 밀려 결국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말았는데, 이때 일어난 민주운동을 4·19 혁명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90년 2·28 대구민주학생운동 기념탑, 두류공원으로 이전 2002년 조양회관, 구대구사범학교 본관·강당,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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