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 곽재우 의병 봉기
매년 6월 1일은 ‘의병의 날’입니다. 의병이란 적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하기 위 해 자발적으로 만든 민중 저항 조직입니다. 의병의 날은 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 정되어 해마다 이날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이유는 나라를 위 해 헌신한 의병들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서 의병의 존재가 뚜렷하게 부각된 것은 임진왜란 때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정신은 19세기 말부터 일제 강점기 때까지 활동하였던 항일 의병으로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그럼 왜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한 걸까요? 임 진왜란때의병지도자곽재우가최초로의병을일으킨날이음력4월22일인데이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정한 것입니다. 대구시 동구 효목동에는 홍의장군 곽재우 의 업적을 기리는 망우당공원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9년 경상북도, 관립대구사범학교 신설 1950년 6년제 의무교육 시행​ 
보기
[06.02] 대구 최초 주민 직선 교육감 선거
2010년 6월 2일 우리나라에선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이 선거 에서 최초로 시·도의원 외에 광역시·도의 교육감을 선출하였습니다. 이전까지 교 육감 선출은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선출하였습니다. 최초의 주민 직선 교육감 선거는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후보들의 공약 개발, 정책 토론, 선 거 캠페인이 더 치열해진 것입니다. 또 각 지역마다 후보의 정책 성향에 따라 진보 후보, 보수 후보라는 평가 기준이 생겼습니다. 6월 2일 대구에서 치러진 선거에선 대학교수 출신의 우동기 후보가 당선되었습 니다. 교육감 당선 후 4년 동안 대구 교육 발전에 많은 업적을 쌓은 우동기 교육감 은 2014년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어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8년 한글학회, 『우리말 도로 찾기』 발행 1957년 청구대학(영남대학교 전신) 강당에서 대구현악회 창단 공연​ 
보기
[06.03] 대구부사 정경세가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방책을 상소하다
1563(명종 18)년에 태어난 정경세는 1586년 과거 급제 후, 조정의 요직을 두루 맡았는데 관리들의 인사권을 가진 이조정랑으로 있을 때에는 매우 공정하게 인사 를 한 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1598년 경상감사로 재임할 때는 도민을 너그 럽게 잘 다스렸으며, 1600년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와선 지역 유지 들과 뜻을 모아 존애원(存愛院)을 설치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1607년 정경세는 대구부사로 부임했습니다. 정경세의 경륜을 높이 평가했던 광 해군은 정경세에게 교서를 내려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릴 방도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1609년 정경세는 장문의 글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는데, 주요 내용은 사치를 경계하고 인사를 공정하게 하며 학문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9년 대구사범학교 개교 2013년 앞산터널 무료 임시개통 2016년 서문시장, 상설 야시장 개장​ 
보기
[06.04] 영남오페라단 창단
대구에선 해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립니다. 또 북구 칠성동에는 대구오페 라하우스가 있습니다. 대구가 오페라의 도시가 되기까지에는 많은 음악인들의 노 력이 있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대구엔 1952년 효성여대, 1959년 계명대, 1969년 영 남대에 음악과가 신설되어 많은 음악인을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대구의 첫 오페라단인 대구오페라협회가 발족하였고, 김금환, 이점희, 홍춘선 같은 음악가가 회원으로 활동하며 오페라 보급에 앞장섰습니다. 대구오페라협회는 1975년 대구오페라단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대구오페라 단에 이어 1977년에 계명오페라단, 그리고 1984년 영남오페라단이 창단되었습니 다. 영남오페라단은 2018년 대한민국오페라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도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 단체로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21년 환경의 날 기념 대구탄소중립협의체 발대식 2021년 제31회 대구청소년연극제 개막​ 
보기
[06.05] 대구경찰악대 발족
대구 최초의 음악대(音樂隊)는 1908년 천주교 산하 학교였던 성립학교에서 만들 어진 ‘신호나팔대’였습니다. 이어 1912년 계산동성당에서 ‘명도회 악대’가 창단되 었고, 1917년 계성학교에 음악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대구에선 많 은 음악활동이 있었습니다. 작곡가 박태준, 성악가 김문보, 권태호 등이 명성을 날 렸으며 계성찬양대, 대구현악단, 대구합창협회 등 음악단체들이 활동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1945년부터 대구의 음악활동은 더 활발해졌습니다. 1947 년 대구 경찰에도 음악대가 발족하였습니다. 군악대와 경찰악대는 경축행사와 시 가 행진, 시민위안연주회, 대구형무소 수감자를 위한 공연 등을 했습니다. 대구경 찰악대는 1961년 전국의 경찰악대를 서울치안본부 경찰악대로 통합함으로써 해산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0년 독립운동가 장진홍 대구 감옥에서 순국 1995년 북구 복현동 복현고가교 준공​ 
보기
[06.06] 대구 동운정 공설운동장 개장
대구의 도심 시설 중에는 근대 이후 여러 번 바뀐 곳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현재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자리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1년 이 자리에서 동 운정 공설운동장 개장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이 운동장에는 야구장과 정구장 시설 이 있었는데, 1937년 대명동 영선못(현재 매립됨) 인근에 대구종합운동장이 생기 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54년 여기에 시립대구여자고등학교가 개교하였으나 전쟁 직후여서 대구여중 가교사를 차용해 쓰다가 이듬해 본교사를 준공해 역사를 쌓아오던 25년만인 1980 년 수성구 범어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이전 후 학교 부지와 인근 옛 대구시경찰서 부지에서 공원 조성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원이 현재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 원으로, 도시의 중심부에 이런 큰 공원이 있다는 것은 대구의 큰 자랑입니다. 오늘의 역사​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 설립 1949년 종합운동장 완공 경축 시민운동회 개최​ 
보기
[06.07] 문교부, 교육용 기초한자 1781자 선정 발표
한글이 공적 업무에서 정부 표준 문자로 확립된 것은 1948년 정부수립 후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부터입니다. 이 법률은 ‘공문을 한글로 쓰되, 필요 한 경우에 한자를 병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 는 1968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 때문에 한자 교육이 일시적으로 폐 지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 결국 한자 교육은 부활하였습니다. 그리고 1972 년 문교부는 기초한자 1781자를 선정, 발표하였습니다. 1990년대 컴퓨터가 보급되 면서 한자는 인쇄물에서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 디지털 화가 가속화되면서 더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한자 지식이 많으면 문해력 향상에 큰 이점이 있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역사​ ​1920년 중국 지린성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일본군 격파 1975년 문교부, 학도호국단 설치​ 
보기
[06.08]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1960년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 중에서 논란이 많았던 선거로 1967년 실시 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선거기간 동안 많은 부정행위 시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당은 이 선거를 6·8 부정선거라고 규탄하였습니다. 1967년 6월 8일에 치러진 이 선거에선 소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131명을, 정당별 득 표율에 따른 선출로 전국구 44명의 국회의원을 뽑았습니다. 개표 결과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총의석 175석 가운데 129석(전국구 27석)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개헌선인 3분의 2가 넘는 의석수였습니다. 대구를 포함한 경북에선 전체 20석 중 민주공화당이 18석을 차지했습니다. 선거 결과에 항의하여 야당인 신민당은 한동안 등원을 거부한 채 재선거를 주장했고, 학생들은 항의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30개 대학에 대해 휴교조치를 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5년 안동에서 ‘소천 권태호 선생 기념사업회 발족을 위한 음악회’ 개최 2013년 대구시, 중국 닝보(宁波, Ningbo)시와 자매결연​ 
보기
[06.09] 망우당공원 내 조양회관 복원
1922년 달성공원 앞에 서양식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던 서상일이 주도하고 대구 지역의 뜻있는 유지들이 건립 기금을 모 아서 세운 이 건물의 이름은 조양회관이었습니다. 조양회관을 세운 목적은 교육의 힘을 키워 독립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양(朝陽)’이란 이름에는 아침 해를 향해 희망을 찾는 배달민족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양회관 내에는 대구구락부, 대구여자청년회, 대구운동협회 등이 입주하여 대구지역 민족계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이 건물은 1984년에 대구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망우당공원으로 이건되어, 1987년부터는 광복회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양회관은 2002년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1년 대봉, 봉덕, 대명동을 관할하는 대구시 남부출장소 신설 (1963년 대구시 남구로 승격)1990년 제1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개최​ 
보기
[06.10] 형평사 대구지사 설립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나 백정에 대한 사회의 차별은 사 라지지 않았습니다.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백정의 자녀들이 학교 입학을 거 부당한 일이 계기가 되어 백정들의 신분 해방을 위해 형평사라는 단체가 만들어졌 습니다. 형평사는 창립총회에서 진주에 본사(本社)를 두고 다른 지방에 지사와 분 사를 설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1923년 6월 10일 대구에 형평사 대구지 사가 설립되었습니다. 1928년 무렵부터 형평사 안에서는 다른 사회운동과의 제휴문제를 둘러싸고 의 견 대립이 생겨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1935년 4월에 일제의 식민통치에 영 합하는 단체인 대동사(大同社)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형평 운동은 하위 신 분층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과 사회적 평등 대우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7년 직선제 개헌 위한 6·10민주항쟁 일어남 2002년 FIFA 한일월드컵 D조 대한민국과 미국 경기 열림 (대구스타디움)​ 
보기
[06.11] 서동진 첫 개인전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는 시인 이상화의 큰형인 이상정이었습니다. 이상정은 예 술가이자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인물인데, 그는 1917년부터 몇 년간 계성학교 미술 교사를 하였고, 1921년 대구에서 처음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이후 대구에선 미술 전시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1923년에는 서화가 서병오가 주도하여 만든 예술 단체인 ‘교남시서화연구회’가 주최한 대구미술전람회가 열렸습니다. 개인전의 경우 1926년에 박명조 개인전에 이어 1927년 서동진 개인전이 열렸습 니다. 전시회 제목은 ‘제1회 서동진 수채화 전람회’였고, 전시회가 열린 장소는 조 양회관이었습니다. 서동진은 1928년에 2번째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상정의 뒤를 이어 대구 근대화단을 이끌었던 서동진은 1920~30년 영과회와 향토회 창립을 주 도했고, 1950년대에는 대구화우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3년 계명기독학관(현 계명대학교) 설립 준비위원회 구성2009년 대한민국의 우주기지인 나로우주센터 준공 (세계 13번째로 우주기지 보유 국가)​ 
보기
[06.12] 보스턴마라톤 선수단 대구 방문 환영대회
1897년 첫 대회가 열린 이후 매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리는 보스턴 마라톤은 한국과 인연이 많은 대회입니다. 1947년에 열린 51회 대회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 참가한 서윤복이 2시간 25분 39초의 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고, 1950 년 54회 때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차지해 세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팀의 감독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이었습니다. 한국 마라톤팀은 귀국 후 영웅 대접을 받았고, 1950년 6월 12일 대구를 방문했을 때도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01년 열린 보스턴마라톤에서 이봉주가 2시간 9분 43초로 우승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3년 대구고보 학생, 일제군사훈련(교련) 반대 동맹휴학계획 발각 1946년 전염병 콜레라로 대구에서 사망자 발생​ 
보기
[06.13] 권응수, 대구에서 왜군 격퇴
1546년 영천에서 태어난 권응수는 1583년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1592년 임진 왜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상급자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 는 바람에 부대가 해산되자 고향인 영천으로 와서 의병을 모집해 영천성을 탈환했습니다. 영천성 전투는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빼앗긴 성을 최초로 탈환한 전투였습니다. 또 권응수는 경상도 곳곳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울산, 밀양, 문경 그리고 대구 전투에서였습니다. 권응수가 승리한 대구의 전투는 공산성에서 있었던 전투였습니다. 권응수는 전쟁이 끝난 후 공신(功臣)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날 경북 영천시 신녕면에 있는 경충사에서는 권응수 장군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1년 대구중학교 개교 2010년 제3회 세계인의 날 기념 ‘컬러풀 대구 다문화 축제’ 개막​ 
보기
[06.14] 치안본부 전국 장발 단속령
1954년 경범죄처벌법이란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유신정권 시대인 1973년에 법 개정이 있었는데, 개정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퇴폐풍조를 일소하여 명랑한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처벌 대상의 폭을 늘리려 한다’는 것이었습니 다. 당시 퇴폐풍조로 지정한 ‘성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장발을 한 남자, 저속 한 옷차림을 하거나 장식물을 달고 다니는 것’과 같은 조항에 의거하여 거리에서는 남성의 장발 단속과 여성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976년 1월 13일 영남일보에는 이틀 동안 장발 집중단속에 나선 경북도경이 2,100명의 장발을 적발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장발 단속은 전국에서 일시에 실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0년 국내 첫 태양광발전소 가동 2003년 경의선 군사분계선 상에서 남북 철도 궤도 연결​ 
보기
[06.15] 대구교육박물관 개관
2018년 6월 15일 개관한 대구교육박물관은 대구교육청이 3년간 준비하여 거둔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새로 박물관을 짓지 않고 2017년 폐교된 대구대동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멋진 교육문화공간을 창조하였습니다. 개관 당시 대구교육박 물관은 영남권 최초의 교육박물관으로 상설전시장은 약 2만 점의 교육 관련 전시 물을 갖췄는데 그중에는 대구의 시민들이 기증한 자료도 많았습니다. 대구교육박물관은 개관 이후 교육과 관계있는 기획전시를 연이어 열어서 호평 을 받았습니다. 그간 대구교육박물관은 상설전시, 기획전시 외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고학 체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또 전시 주제와 관련 있는 독서감상문 대회, 상상화 그리기 대회, 추억의 학창시절 사진 찾기 공모 전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2년 한국전쟁으로 국립극장을 대구문화극장으로 결정 (1957년 5월까지)1995년 대구광역시립 동부도서관 개관 2006년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 건립(동구 효목동)​ 
보기
[06.16] 대구오페라협회 창단 공연 <토스카>
대구시 남구 봉덕 2동에 있는 청구효성타운 자리는 원래 1970년대에 효성여자 대학교(현재 대구가톨릭대) 캠퍼스가 있었습니다. 1973년 6월 16일 효성여대 강당 에서는 대구 음악사에서 기념할 공연이 열렸습니다. 대구오페라협회가 창단공연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공연한 것입니다. 이날 공연의 연출은 김금환, 지휘는 이기홍이 하였습니다. 김금환은 당시 국내 최정상의 테너였는데,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임하면서 대구의 오페라 보급을 이끌었습니다. 또 1975년 대구오페라협회가 대구오페라단으로 이름을 바꾼 후 단장을 맡은 바리톤 이점희 역시 대구 오페라의 발전을 이끌었던 예술가였습니다. 이들 선구자들의 노력 덕에 대구는 오페라의 도시로 빠르게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육대회 개막 2005년 국내 최장 12km 인천대교 착공​ 
보기
[06.17] 독립운동가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 건립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는 2명의 이시영이 있습니다. 1869년 서울에서 태 어난 이시영과 188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시영입니다. 이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시영은 그의 호인 우재(又齋)를 붙여 ‘우재 이시영’이라 고 부르곤 합니다. 우재 이시영은 1914년 베이징으로 망명한 후 항일 무력 봉기를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활약하던 중 애국단사건으로 대구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 렀습니다. 또 안희재, 박상진, 서상일 등과 광복단 활동을 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 후에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사하였습니 다. 앞산 낙동강승전기념관 옆에는 1972년에 건립된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 이 있습니다. 이시영의 아들인 아동문학가 창주 이응창은 1955년 원화여고 초대 교 장을 역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5년 영남체육회 창립 1951년 38선 정전반대 국민총궐기대회​ 
보기
[06.18] 박태준 대구성가협회 조직
<동무 생각>의 작곡가 박태준은 1925년부터 1931년까지 모교인 계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1932년 박태준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합창음악과 교회음 악을 전공,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귀국 후 그는 1936년 숭실전문학교에 교수로 부임했는데, 이 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로 1938년 폐교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박태준은 대구로 와서 음악연구소를 개설하여 음악 보급에 힘썼고, 대구지 역 최초의 민간 합창단인 ‘대구성가협회’를 창단했습니다. 대구 음악사에서 성가합창단의 활동은 대구지역 합창활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광복 전 서울로 이주한 박태준은 서울에서도 합창단을 창설하였습니다. 1948년부터는 연세대 교수가 되 어 후학을 양성하였고 1955년에는 연세대 종교음악과 개설에도 앞장섰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2년 미국이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 가동(1945년 최초 실험 성공) 1955년 대구에 본부를 둔 부대인 제50 보병사단 창설​ 
보기
[06.19] 대구화교협회 건물, 대봉배수지 등록문화재 지정
대구에 중국인들이 건너와 살기 시작한 것은 1905년 경부터였습니다. 대구에 온 화교들은 다양한 분야에 종사했는데 상업 외에 당시 대구에 세워지던 건축물의 공 사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근대 이후 대구의 화교들이 많이 살았던 종로거리에는 대 구화교협회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처음부터 화교협회 건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지역 부호였던 서병국이 사무실 겸 저택으로 건립한 2층 서양식 건물로 1929년에 준공 되었습니다. 2006년 6월 19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었는데, 지금은 대구화교협회 건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같은 날 대구 상수도 보급의 역사를 증언하는 곳인 대봉배수지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8년 대구에서 청소 등의 일을 하는 위생인부 130여 명이 파업 1975년 ‘평등·발전·평화’를 주제로 하는 제1회 세계여성대회가 멕시코에서 열림​ 
보기
[06.20]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무우원 도쿄지부 회의
무우원은 1940년 12월에 조직된 비밀결사단체입니다. 1940년 초 양산 통도사 승려 조형길과 대구의 청년 김병욱, 현영만은 항일독립을 위한 비밀결사대를 조직 해 국권회복에 신명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합니다. 이들은 뜻을 같이하는 급우들과 함께 무우원을 결성해 내선일체의 허 위를 폭로하고,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계획했습니다. 조형길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을 중심으로 동지들을 규합해 1942년 도쿄 지회를 발족시키고 최수원을 지부장으로 정했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유인물을 학우들에게 배포하는 활동을 벌이던 이들은 동료의 배 신으로 체포되어 결국 최수원과 조형길은 순국하였고, 김병욱, 현영만, 강증룡 등 은 징역형을 받았지만 상고조차 하지 않는 기백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5년 대구남양초등학교 개교1968년 미국 육상선수권 남자 육상 100m에서 최초로 10초 벽 돌파(9초 9 기록) 1994년 한국통신(현 KT) 아시아 최초의 상용 인터넷 서비스 ‘코넷’ 시작​ 
보기
[06.21] 대구 최초의 추상미술단체인 신조회 창립전
서양 회화는 구상미술과 추상미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미술, 추상미술은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순수한 형식 요소 또 는 화가의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는 미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근대 이후 대 구에 처음 도입된 것은 구상미술이었고, 추상미술 화단이 형성된 것은 1950년대부 터였습니다. 대구의 추상미술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화가는 극재 정점식입니다. 191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그는 1953년 대구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1955년 대구미술가협회 발족, 1972년에는 대구 최초의 추상화가 단체인 신조회 결 성을 주도하였고, 같은 해에 신조회 창립전시회가 열렸습니다. 1979년 일본에서는 신조회 한·일미술교류전이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0년 한국공항공단 대구지사 설립 1994년 대구시,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Minas Gerais)주와 자매결​ 
보기
[06.22] 서화가 석재 서병오 예술비 달성공원에 건립
대구 달성공원 정문의 이름은 ‘시민의 문’입니다. 달성공원 곳곳을 자세히 구경 하면 달성공원이란 곳이 대구 시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기념비와 조각품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가 낳은 시인인 이상화의 시비, 구미 출신의 의병 지도자인 왕산 허위 선생 순국기념 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 선생 구국기념비, 동학 교조인 수운 최 제우 동상, 달성 서씨 유허비, 그리고 석재 서병오 예술비 등이 있습니다. 대구에서 활동했던 서화가인 석재 서병오는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명 성이 높아 1922년부터 서울에서 열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습니 다. 1983년 달성공원 안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예술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783년 (정조7) 영남지역 진휼청 설치 완료2000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창립 2002년한국축구국가대표팀 FIFA월드컵 아시아 첫 4강 신화 달성​ 
보기
[06.23] 계산성당 명도회 악대, 주일 미사에서 첫 연주
근대에 대구에 처음 도입된 악기는 피아노, 손풍금 같은 건반악기였습니다. 사람 들이 피아노나 손풍금 같은 서양악기에 멜로디에 귀가 열리면서 서양 악기를 연주 수단으로 하는 음악대도 하나둘 생겼습니다. 계산동 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로베르 신부가 1908년 성당의 부속건물로 지은 해 성재를 성립학교로 개명한 뒤 만든 ‘신호나팔대’가 시작이었고, 1910년 국권피탈 이후 1912년 교우들의 신심 앙양과 교리 연구를 위해 명도회(明道會)라는 모임에 서 프랑스에서 들여온 30여 개의 악기를 갖춘 명도회음악대가 주일미사에서 첫 연주를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1년 제1회 대구무용제 개최(대구문화예술회관) 2001년 대구에서 활동한 한학자 최양해 한시(漢詩)비 두류공원에 건립​ 
보기
[06.24] 소설가 윤장근 타계
1933년 대구에서 탄생한 윤장근은 대구문학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 입니다. 대구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하며 대구 문단 활성화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펴낸 첫 작품집은 1967년 발간된 소설집 『돌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윤장근은 10대 시절에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소설로 생생히 증언하였습니다. 1970년에는 한국인문협회 대구지부 소설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고, 1979년에 산 문집 『산성의 바람소리』를 펴냈습니다. 첫 소설집에 이어 30년 만에 두 번째 소설 집 『먼 북소리』(1996년)를 발표했습니다. 윤장근은 대구 출신의 선배 문학가들을 현창하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시인 백기만과 소설가 현진건의 문학비 건립, 시인 이윤수(시 동인지 『죽순』 발행인)와 구상의 시비를 건립하는 일, 시인 이상화의 고택을 보존하는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9년 고종이 최초의 실업교육기관인 ‘관립 상공학교’ 설립칙령반포 1906년 대구광문사가 대한매일신보사 대구지사로 언론활동개시​ 
보기
[06.25] 한국전쟁 발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3년 넘게 이어진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한 국전쟁은 대구에 많은 역사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전쟁 발발 후 많은 피난민이 대 구로 왔고 대구시 외곽 곳곳에 피난촌이 만들어졌습니다. 1950년 한동안 대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로서 군사·경제·문화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공구 전문 상가인 북성로, 도심의 교동시장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빠르 게 성장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대구는 산업도시로 변화했습니다. 전쟁 때 서울·경기 지역의 많은 공장이 파괴되었지만 대구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기 때 문에 전후 산업복구 과정에서 빠르게 산업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6년 조선 정부가 전국 행정구역 13도로 세분, 대구에 경북 관찰부(觀察府) 설치 1966년 김기수, 한국 프로권투 최초로 세계챔피언에 오름​ 
보기
[06.26] 대구수목원에서 천만 그루 나무심기 달성 기념행사
2006년 6월 26일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대구수목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 습니다. 대구시가 추진한 ‘푸른대구가꾸기사업’을 통해서 대구 지역에 천만 그루 나무심기라는 큰 성과를 달성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사업에서 대구는 1단계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437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2단계로 2001년부 터 2006년까지 600만 그루 심기를 목표로 추진해 2006년 상반기에 605만 그루 를 심어 11년 만에 천만 그루 나무심기라는 성과를 달성하였습니다. 가로수는 1994년 8만4천여 그루에서 2006년 16만6천여 그루로 늘어났고, 도시 의 풍경도 더 푸르게 되었습니다. 이들 녹지공간은 대도시의 공기 정화는 물론 여 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휴식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녹지공간이 많 은 대구는 오늘날 전국 대도시 중에서 최고의 ‘그린 시티’로 바뀌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8년 대구시 동인동 신천변에 공설수영장 개장 1967년 국내 최초 통신위성 사용 텔레비전 생중계​ 
보기
[06.27]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1981년 대구와 호남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3년 후인 1984년 대구 논공과 전남 무안을 연결하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개통 당시 총길이는 182km였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경북 고령군, 경남 거창군·함 양군, 전북 남원시·순창군, 전남 담양군 등을 경유하는 고속도로 개통으로 대구와 광주 간 주행시간이 5시간에서 2시간 30분(건설 당시 기준)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정부는 개통 당시 2차선이었던 이 도로를 2001년부터 4차선 확장 공사 및 보수 공사를 추진하여 공사를 완료한 2015년 12월 광주대구고속도로로 개칭하였습니 다. 기존 급커브 구간이 직선화되었고, 총 길이가 182km에서 176km로 줄어든 광주 대구고속도로는 광주시 북구 문흥동을 기점으로 담양-순창-남원-함양-거창-합천- 고령을 거쳐 대구시 달성군 옥포읍에 이릅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대구고보 학생, 일본인 교사배척 동맹휴학 돌입 1995년 초대 민선 대구시장에 문희갑 후보 당선​ 
보기
[06.28] 대구월드컵경기장 준공
대구시 수성구 대흥동에 있는 다목적경기장인 대구스타디움이 준공된 것은 2001년 6월 28일이었습니다. 수용 인원이 70,140명인 큰 경기장이었습니다. 준공 당시 경기장의 이름은 대구월드컵경기장이었는데, 경기장의 최우선 용도가 2002 년 개최 예정이던 FIFA한일월드컵 경기를 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 대 구월드컵경기장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예선 경기 등이 열렸고 그 뒤 경기장 이름은 2008년 대구스타디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이 경기장은 월드컵 못지않게 큰 행사인 2011대구세계육상선수 권대회 주경기장이 되었고, 대회가 끝난 후 대구스타디움에선 프로축구 대구FC의 홈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후 대구FC 홈구장은 대구시 북구 고성동에 있는 DGB대 구은행파크로 바뀌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4년 대구아동자유화전람회(조양회관,~6.29)1925년 대구에서 전국자전거대회 열림 1963년 국민가요합창단 창립음악회(대구공회당)​ 
보기
[06.29]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 6·29선언 발표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정부는 직선제 개헌 논의 중지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4·13호헌조치를 발표했습니다. 5월 18일에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조 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6월 9일에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국민의 분노와 저항은 점점 커져갔 고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가 서울을 비 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렸습니다. 6월 18일에는 전국 16개 도시에서 150여만 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대구에서도 1987년 6월 도심의 대구백화점 앞, 동아쇼핑 앞 등에서 민주화를 요 구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결국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최고위원은 6 월 29일 직선제 개헌 등 8개항의 시국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건들바위 대구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 1993년 향토 작곡가 추모음악회(대구문화예술회관)​ 
보기
[06.30] 최계복, 조선일보 주최 납량사진현상모집에 1등 입선
대구의 사진예술 역사를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할 사람이 최계복입니다. 1909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한 후 1933년 대구시 종로1가에 ‘최계 복 사진기점’을 개업하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처음 발표한 작품은 1933년 <영선못의 봄>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1940년대까지 국내외 사진 공모전에 서 약 50번이나 입상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1938년에 열린 조선일보 주최 제2회 납량사진 현상모집에 출품한 <여름 교외>인데 이것이 1등으로 입선한 것입니다. 한국전쟁 때 국방부 정훈국의 종군사진을 담당했던 그는 1954년 대구사우회 결성을 이끌었습니다. 2018년 유족 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그의 작품은 1933년 첫 촬영한 <영선못의 봄>을 포함 한 원본사진 81점과 원본필름 169점(원판 네거티브)입니다. 오늘의 역사​ ​1913년 국채보상운동을 처음 발의한 서상돈 타계 1999년 북구 산격동 및 서변동에 위치한 산격대교 준공​ 
보기

Copyright ⓒ Daegu Metropolitan Office of Educ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