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 대구오일상회(현 KK주식회사) 설립
대구에는 장수기업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곳이 KK주식회사입니다. KK주식회사는 1927년 대구오일상회라는 가게로 출범하였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창립 94년을 맞은,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입니다. 설립 당시 석유를 판매하던 이 가게는 점차 성장하여 1949년 회사 이름을 경북 광유주식회사로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KK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이래 대구 및 경북지역을 영업권역으로 지역 에너지산업을 선도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3세 경영인이 CEO를 맡고 있는 KK주식회사는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광역시립 두류도서관 개관 2014년 초등학생 수련 시설인 대구교육팔공산수련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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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 이만수 100호 홈런
이만수 선수는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의 강타자였습니다. 대구상업고등학교 와 한양대를 졸업한 그는 1982년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프 로야구 개막경기에서 1호 안타·타점·홈런의 주인공, 1986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 초의 100호 홈런을 기록하였습니다. 최초의 200호와 250호 홈런을 기록한 선수도 이만수였습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로서 통산 1449경기에 출장했고, 기록은 타율 0.296, 득점 624점, 안타 1276개, 2루타 193개, 3루타 7개, 홈런 252개, 타점 860점 이었습니다. 선수 은퇴 후 한국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 코칭스태프로서 화이 트삭스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고, 프로야구 SK와이번스 팀의 감독 등을 역임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0년 소설가 현진건 대구에서 출생 1945년 광복 후 대구 최초 연극 <깃발을 흔들던 날〉 공연 (키네마구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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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 신간회 대구지회 설립대회 열림
신간회는 1920년대에 만들어진 항일 독립운동 단체 중 가장 큰 단체였습니다.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 탄생했습니다. 같은 해 9월 3일 대구에서는 신간회 대구지회 창립대회가 교남 YMCA 회관(조양회 관)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대구의 독립운동 지도자를 포함해 약 600여 명의 시민 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때 시인 이상화도 신간회 대구지회 간사로 참여하였습니다. 야학, 사상 강좌 등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에 힘쓴 신간회 대구지회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신간회 강령에 따라 자치운동파와 연계하여 타협적, 기회주의적 민족운동을 펼치려 한 영남친목회나 대구의 경제연구회 활동을 견제하고 저지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남 1952년 뇌염이 유행하여 우리나라 일부 지역 학교, 극장 등 일시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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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 포스코, 세계 최대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 준공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은 포항을 ‘제철산업의 도시’라고 불렀습니다. 포 항제철(현 포스코)의 역사가 시작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포항은 제철산업 뿐 아니라 연료전지와 같은 여러 가지 첨단산업도 발전한 도시입니다. 포스코는 2008년 영일만항 산업단지에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을 세우고 연료전 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발전용 연료전지는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 를 전기화학 반응시켜 전기에너지로 만든 것입니다. 2008년 당시 이 공장은 연간 50MW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공장이어서 언론에 크게 소 개되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포항시는 ‘포항 수소 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 구 축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역사​ ​1982년 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막(한국 우승) 1994년 태권도가 2000년 열리는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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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 추상미술 그룹 ‘앙그리’ 창립전 개최
대구의 미술계는 1950년대까지 구상미술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1960년대 들어 구상미술과 다른 표현기법을 사용하는 추상미술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 여주는 것이 1963년 창립전시회를 가진 미술그룹 ‘앙그리’(Angry)였습니다. 창립 전시회는 경상북도공보관 화랑에서 9월 21일까지 열렸습니다. 앙그리 참여 화가들은 종래의 자연주의적 회화 전통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화 려한 색채와 역동적이고 거친 붓놀림으로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 격변하는 시대 적 가치를 그림으로 담아내며 화가 저마다의 개성적인 미의식을 표현하였습니다. 1963년 앙그리 창립을 통해 싹이 튼 대구의 추상미술은 1970년대 신조회가 창립되 며 더욱 활성화되었고 대구미술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1년 대구 청구출판사,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 발행 2012년 대구광역시 유아교육진흥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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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대구여자경찰서 개서식 열림
1946년 미국 군정은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를 처음 설치했습니다. 서울에 이어 1947년 6월 대구는 지방에서 처음으로 여자경찰서를 설립하였는데, 서장부터 순경까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경의 주 업무는 여성 및 청소년 지도와 보호 업무, 성매매 여성 선도, 가정문제 해결 등이었습니다. 초대 서장 정복향은 수 석 합격임에도 기혼자라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되었지만 항의 끝에 임용되었으며, 3년의 서장직을 마치고 당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2대 도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2대 서장 노마리아 경감은 유관순 열사의 올케로 1946년 김구 선생의 권유로 경 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구여자경찰서는 1957년 제도가 폐지되어 문을 닫았고, 2020년 옛 대구여자경찰서 인근에 있는 중부경찰서에서 대구여자경찰서 옛터 기 념비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4년 제1회 경상북도미술전람회 개최 (대구시립도서관 전시실) 2016년 앞산 공룡공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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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대구 자혜의원 개원
1899년 문을 연 대구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에 이어 대구에 두번째로 생긴 병원이 1906년 설립된 동인의원입니다. 동인의원은 1910년 9월 ‘관립 대구자 혜의원’으로 개편되었고, 1923년 병원 구내에 대구의학전문학교가 개교했습니다. 그리고 1925년에는 ‘도립 대구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도립 대구의원 건물 이 1926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28년 현재의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붉은 벽돌로 외 관을 장식한 새 건물을 준공하였습니다. 광복 후인 1945년 대구의학전문학교가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되면서 대구의과 대학 부속병원으로 이관되었고, 1952년 경북대학교 설립에 따라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부속병원, 1988년 경북대학교병원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9년 현제명, 성악가로서 제1회 독창회 개최(대구공회당) 2004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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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이창동 감독,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
이창동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영화 감독입니다. 1954년 대구에서 태어 난 그는 교사,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1993년 영화계에 입문하였습니다. 시나리오 작 가와 조연출로 일하던 그는 1997년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초록물고기>라는 영화 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하였습니다. <초록물고기>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창동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1999)은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하였고 다른 영화제에서도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오아시 스>는 이창동 감독이 2002년에 만든 세 번째 영화였는데, 이 작품은 그해에 베니 스영화제에 출품되어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이창동 감독은 <밀양>, <시>, <버닝> 같은 좋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88년 영국에서 프로축구 리그 최초로 출범 2016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구간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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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울산 태화강 추석놀이 전국씨름대회에서 대구의 고우주 우승
5세기 고구려 고분에 씨름을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씨름 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풍속도에도 씨름 그림 이 있고 현재도 대중들이 즐기는 운동입니다. 1948년 열린 제29회 전국체육대회에 서 씨름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학교 스포츠로도 보급되었습니다. 추석 등 명절이면 전국 각지에서 성인 씨름선수들이 출전하는 씨름대회가 열렸고, 우승을 차지한 장사에겐 소 한 마리를 상품으로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40∼1960년대 대구와 경북에서는 훌륭한 씨름 선수가 많이 나왔습니다. 1957 년 추석, 울산체육회가 개최한 전국씨름대회에서 우승한 고우주도 그 중 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 후에도 대구경북 지역에선 많은 씨름 장사가 탄생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0년 일본이 3·1운동 영향으로 대구감옥 등 조선의 감옥 확장계획 발표 1997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차 없는 날’ 행사가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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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지방제도 개편에 의해 경상북도가 생김
1896년 전까지 조선에는 지방 행정조직의 가장 큰 단위인 도가 8개 있었습니다. 경기도·충청도·경상도·전라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였습니다. 1894년부 터 1896년까지 조선정부는 근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낡은 제도를 없애는 개혁정 책을 추진했습니다. 이것을 갑오개혁이라고 합니다. 개혁조치의 하나로 1894년 8 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개의 지역으로 나누는 23부제를 실시했습니다. 23부제는 다음해 을미개혁으로 폐지되었고 1896년 전국을 13개의 도로 나눌 때 기존의 조선 8도 중 충청도·전라도·경상도·평안도·함경도를 남북으로 2등분하였 습니다. 이로써 경상도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리되었고, 1601년 경상감영이 설치된 후부터 경상도의 중심도시였던 대구부 포정동에 경상북도 관찰사의 집무 기관이 들어섰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6년 지방 13도제 실시로 대구가 ‘경상북도 대구군’이 됨 1996년 유엔 총회에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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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김성도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소천아동문학상은 아동문학가인 강소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5년 제정한 권위 있는 문학상입니다. 1971년 대구의 아동문학가인 김성도가 이 상을 받았습니다. 김성도는 동요 작곡가, 동화 작가, 번역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문학가였습니다. 문학적 재능과 음악적 소질을 겸비한 그는 광복 후 대구 신명여고 교사, 계성 고등학교 교사 등을 지내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동요 작곡가로서 그는 21세 때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유명한 동요 <어린 음악대> 등을 작사·작곡하였고, 동화책도 여러 권 냈습니다. 1957년 이응창 등과 함께 대구아동문학회 창립에도 앞장섰습니다. 그의 모교인 경북 경산 하양초등학교에는 <어린음악대>가 새겨진 ‘김성도 노래비’가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0년 경주 안압지와 임해전 복원공사 준공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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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서문시장 우시장 내당동으로 이전
조선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중 한 곳, 큰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서문시장은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입니다. 서문시장이란 이름은 과거 대구읍성 서쪽 문인 달서문 앞 지역에 형성된 시장이라는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오 늘날 섬유회관 건물 근처에 있었던 서문시장은 1923년 대신동에 있던 천황당못 자 리를 메우고 이전하였습니다. 대신동 서문시장에는 한 쪽에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이 있었는데 시장이 점점 커 지자 1952년 서문시장에서 멀지 않은 내당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내당동의 우시 장은 1957년 본리동으로 다시 이전하였습니다. 이렇게 옮겨간 우시장에서 거래된 고기는 오랜 시간 대구 시민들의 식탁에 공급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8년 볼쇼이합창단(러시아 국립 합창단) 대구 공연 2002년 한국의 창작 타악기 공연인 ‘난타’가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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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최석채, 매일신문에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게재
1995년 한국의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속한 여당은 자유당이었습니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정부 행사에 학생을 억지로 동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955년 9월 10일 유엔 대사이자 이승만의 측근이었던 임병직이 북측의 주장에 반대하는 정부 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대구를 방문했을 때도 많은 학생들을 동원하였습니다. 학 생들은땡볕아래몇시간고생을했고이에당시매일신문주필이었던최석채는9 월 13일자 신문에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정부의 행태를 비판 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다음 날 매일신문사에는 괴한들이 난입하여 인쇄와 통신시설을 파괴했고, 최석 채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에서 그의 무죄가 확정되었고, 이 일은 불의와 부정에 굽히지 않는 참 언론의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9년 대구 한의학계, 동양의학 강습회 창설(회장 차경삼) 1996년 한국 최고의 국제영화 축제가 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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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개봉
대구가 배출한 영화감독 중 최초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은 이규환이었습 니다. 1904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강점기 때는 물론 광복 후 한국을 대표하 는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932년 9월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그의 대표 작이 <임자 없는 나룻배>인데, 영화의 주인공은 강나루에서 일하는 뱃사공입니다. 이 영화는 주연으로 출연했던 나운규가 훗날 감독한 <아리랑>과 함께 일제 강점기 에 만들어진 조선의 영화 중에서 향토색과 항일 의식, 시대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 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규환 감독은 1970년대까지 감독으로 활동하며 많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대 구시 달성군 사문진나루터는 이규환이 <임자 없는 나룻배>를 촬영한 곳입니다. 오늘의 역사​ ​1960년 중동 산유국이 중심이 된 석유수출국기구 (OPEC) 설립 1969년 여당인 공화당이 국회에서 3선개헌안 변칙 통과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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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제일모직 설립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의 역사는 1938년 창업자 이병철이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세운 삼성상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한 이병철 은 그해에 국내 최초의 모직공장을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세우고,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섬유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제일모직 대구 공장은 대구의 경제성장에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2015년 제일 모직은 역시 삼성그룹 계열 기업인 삼성물산과 합병하여 회사 이름이 삼성물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침산동 대구 공장은 1995년 구미 공장과 통합되었고, 그 자리 는 2017년 한국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삼성창조캠퍼스 등의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오늘의 역사​ ​1596년 의병장 32명이 팔공산 상암에 집결해 왜적토벌 결의1950년 인천상륙작전 개시 1951년 김수환,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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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846년(헌종 12)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순교하였습니다. 1821년에 태어난 김대건은 15세 때 마카오로 출국하여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845년 사제 서품 직 후 조선에 온 그는 전교 활동을 하다가 1846년 5월 백령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한양에 있는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근대 대구의 역사에서 천주교의 전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주교 가 전래되면서 서구의 새로운 문물이 함께 들어와 교육, 음악 분야에서 대구에 많 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천주교의 대구 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831년 이후 조선 교구를 담당한 파리외방전교회였습니다. 계산동성당을 세운 김보록 신 부(프랑스 명 로베르)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고 김대건 신부도 파리외방전교 회의 지원으로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2년 서울에 공중전화기 첫 등장 2007년 ‘대구 문학주간’ 선포식이 달성공원 이상화 시비 앞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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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대구 첫 사장교 와룡대교 개통
강 사이를 잇는 다리는 대부분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교각(橋脚)이 있습니다. 그 런데다리중에교각없이높이세운버팀기둥위에서비스듬히늘어뜨린케이블로 다리 위의 도로를 지탱하도록 설계한 다리를 사장교(斜張橋)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에는 올림픽대교, 서해대교, 영종대교, 진도대교, 돌산대교 등의 사장교가 있는데, 대구지역에서도 2010년 사장교인 와룡대교가 개통되었습니다. 그해 대한토목학회 는 와룡대교를 교량, 도로, 항만, 철도, 수자원, 환경, 터널 등 토목구조물을 대상으 로 하는 ‘올해의 토목구조물’ 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대구시 북구 금호동 금호택지개발지구와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를 잇는 와룡대 교는 다리 주탑의 높이가 22층 빌딩에 해당하는 66m, 길이 420m, 폭 32m의 다리 입니다. 오늘의 역사​ ​1959년 태풍 사라호 한반도 남부 강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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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경인선 개통
서양에서는 산업혁명 이후부터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의 경우는 언제부터일까요?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다른데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것이 근대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기차는 당시 시속 20km였지만, 걸어서 12시간 걸리던 거리를 1시간 30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철도 개통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울러 철도 개통 후 외국의 문명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경인선 개통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0년 월배공립보통학교 개교 (1940년 월배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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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대구도시철도 2호선 연장구간 개통(사월~영남대)
대구에는 3개의 도시철도 노선이 있습니다. 첫 도시철도는 1997년 개통한 대구 도시철도 1호선이며 달성군 설화명곡역과 동구 안심역을 잇는 노선입니다. 2호선 공사는 1996년 시작하여 2005년 1단계 공사 구간인 문양~사월 구간을 개통했습니 다. 이때 반월당역이 대구 도시철도 1호선과 환승하는 역이 되었습니다. 대구와 경산을 오가는 시민들의 교통 불편 해소와 지역 발전을 위해 2012년 9월 19일 사월~영남대 연장 구간을 개통하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도시철도 3호선을 개통하였습니다. 대구시 북구 칠곡경대병원역과 수성구 용지역을 잇는 3호선은 지 상을 달리는 도시열차입니다. 3호선 개통 후 2호선 신남역(현재 청라언덕역)이 3호 선과의 환승역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문화재 관리국, 전남 신안 해저 현장에서 유물 2,564점 인양 발표 1998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논술고사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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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서울 피난 대구연합중학교 개교
서울 피난 대구연합중학교!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대구로 피난 온 학생 들을 위한 학교였습니다. 한국전쟁 후 대구에는 서울 등지에서 피난 온 학생들이 많아서 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정부와 대구시는 적극 협력해 대구 시내에 피난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습니다. 교과서와 노트를 만들 종이마저 부 족한 상황이었지만 1954년 3월 31일 폐교할 때까지 13개 학급 학생 2,400여 명이 이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전쟁중에도공부를멈추지않는학생들의모습은외국유명잡지에실리기도하 였습니다. 2018년 대구교육박물관에서는 이 학교를 주제로 한 ‘한국전쟁, 대구피난 학교-전쟁 속의 아이들’ 특별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9년 권태호, <국민가요집> 발간 (대구시민행진곡 등 수록) 2017년 대구시, 미국 밀워키(Milwaukee)시와 자매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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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대구 상공회의소-이탈리아 밀라노 상공회의소 자매결연
대구시는 세계 여러 도시와 자매도시 및 우호협력도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처 음 대구와 자매도시가 된 곳은 1981년의 미국 애틀랜타입니다. 이후 자매도시 수는 늘어났는데 2015년에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밀라노는 예술, 디자인, 패션, 관광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도시입니다. 그보다 앞서 1989년에 대구 상공회의소는 밀라노 상공회의소와 자매결연 조인 식을 가졌습니다. 두 도시가 공통적으로 섬유, 패션 산업이 발전한 도시라는 점이 작용하였습니다. 2000년 들어 대구시는 대구를 밀라노와 같은 세계적인 섬유패션 도시로 만들기 위한 밀라노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직할시립 두류도서관 개관 2008년 알츠하이머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제1회 ‘치매 극복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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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대구 미국문화원 정문 앞 폭발 사건
미국은 한국전쟁 때는 물론 전쟁 후에도 물자 지원을 많이 해 준 나라입니다. 그 럼에도 1980년대에 상당수 대학생들은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미감정 이 생긴 중요한 계기는 1980년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미국이 광주 시민들 의 의로운 항거를 외면하여 시민들의 희생이 컸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깊어 진 반미감정은 반미구호를 외치는 것을 넘어 테러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 12월 광주와 1982년 3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에 이어 1983년 9월 22일 대구 미국문화원 정문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85년 에는 대학생들이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반미감정은 1987년 6월항쟁 후 한국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조금씩 수그러들었습 니다. 오늘의 역사​ ​1995년 대구광역시립 동부도서관 개관 2014년 중학생 수련 시설인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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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대구 최초의 서양화 개인전인 ‘박명조 개인전’ 개최
일제 강점기 때 대구에서 활동했던 화가 중에는 박명조가 있습니다. 대구에서 태 어난 그는 대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3년 제2회 교남서화연구회전에 작품 을 출품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또 1926년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그해 대구에서 처음으 로 서양화 분야에서 개인 전시회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1930년 박명조는 대구 지역의 미술단체인 향토회가 발족할 때도 주도적인 역할 을 했습니다. 그가 즐겨 그린 그림은 풍경화였습니다. 그는 대륜중고등학교 등에서 미술교육가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발족 2013년 대구 대명동에서 가스 폭발 사고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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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대구시청 옥상에 비둘기집 마련
1905년 일본이 조선에 설치한 조선통감부는 각 지방의 외국인 영사 업무와 지방 행정 관리를 위해 190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의회 자리에 대구 이사청을 설치하였 습니다. 1949년 대구시가 된 뒤 1956년 동인동에 대구시 청사가 새로 세워졌는데, 1962년 신문에는 대구시청 옥상에 비둘기집을 설치했다는 것이 화제의 기사로 등 장했습니다. 지금은 비둘기가 도시의 골칫거리지만 그때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랑 을 받았고,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으레 수십,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일제히 날아가는 장관을 연출하곤 했습니다. 대구가 커지면서 1993년에 새로 지은 대구시 청사가 낡고 업무·민원 공간이 부 족해 신축 또는 이전 논의가 계속되었습니다. 새 시청 청사 부지는 달서구에 있는 옛 두류정수장 자리로 확정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5년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룡,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취임2009년 우리나라 최초 모노레일, 대구도시철도 3호선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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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약전골목에 한약재상설전시관 건립
한약재 전문 시장인 대구약령시는 1658년 생긴 오래된 시장입니다. 처음 약령 시가 열린 곳은 경상감영 부속 건물인 객사 주변이었습니다. 봄과 가을에 시장이 열렸는데, 조선시대에 약령시는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드는 전국 최고의 약재시 장이 되었습니다. 대구 약령시는 일본인들이 경상감영과 대구읍성을 철거한 후인 1908년 현재의 대구시 중구 남성로 지역으로 이전하였습니다. 1985년 9월 25일에는 이 거리에 한약재상설전시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전시관은 규모를 키워 현재의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약령 시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남성로 약령시에서는 해마다 대 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1년 대구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 계산성당 사적 제290호 지정 1997년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 ‘낙육재’ 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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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화랑고무공업사 창립
연필을 쓰는 학생들에게 지우개는 꼭 필요한 학용품입니다. 대구에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지우개를 생산한 기업이 1950년 창립되었습니다. 화랑고무공업사였습니다. 화랑고무는 품질이 좋아서 대구는 물론 전국의 학생들이 애용하였으며 점보지우개는 특히 인기가 많아 ‘국민 지우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2008년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는 화랑고무 등 20개사를 그해 대구에 본사를 두고 창립 30년 및 종업원 30명 이상 고용 제조업체 ‘대구 3030 기업’으로 선정했 습니다. 향토기업으로 2008년 ‘대구 3030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화랑고무 외에 삼화식품, 보국전자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8년 대구고보(현 경북고등학교) 1차 동맹휴교 돌입 1949년 대구사범학교, 1년 과정의 도립 경상북도 초등교원 양성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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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대구의 일본인들 거류민회 설립
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 후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은 빠르게 그들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를 위해 만든 조직 중 하나가 일본인 거 류민회였습니다. 대구에서는 1906년 거류민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거류민회 소속 일본인들은 대구에서 위세를 부렸습니다. 일본인들은 친일파 박중양과 같이 힘을 모아 대구읍성을 허물었고, 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인 북성로를 중심으로 하여 대구의 시가지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 리고 1914년에는 삼국시대부터 대구 역사에서 중심공간이었던 달성공원 안에 일 본의 종교시설인 신사를 세웠습니다. 오늘의 역사​ ​1825년 영국에서 스티븐슨이 세계최초의 증기기관차 운전, 철도시대개막 1992년 제1회 대구가요제가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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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서문시장 개설 허가
100년 전 대구에는 못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서문시장이 있는 대신동에도 천왕 당못이 있었습니다. 1922년 서문시장 이전 허가가 나면서 이 못을 흙으로 메우는 공사를 하였고 그 자리에 시장이 들어섰습니다. 서문시장은 1923년 대신동으로 이 전하였습니다. 천왕당못을 메우는 데 사용한 흙은 비산동 등 근처의 고분과 산을 파헤쳐 조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당시 대구에는 배자못(현 복현오거리 일대), 영선못(현 대명동 영선시장 자리), 감삼못(현 달성고등학교 주변), 범어못(현 수성구청 근처) 등이 있 었지만 이 못들은 모두 현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때 대구에 있었던 못 중 에서 남아 있는 것은 수성못과 성당못입니다. 오늘의 역사​ ​1596년 대구 유림이 의병 모임인 팔공회맹 참여 2021년 대구한국가스공사, 대구 연고 남자 프로농구단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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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루스벨트 대통령 딸 앨리스 루스벨트, 대구 방문
1905년 9월 29일 당시 미국 대통령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 루즈벨트 일 행이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앨리스 일행은 외교사절단으로 아시아를 순방 중이었습니다. 미국의 힘을 빌어 일본을 견제하려 했던 대한제국 정부의 극진한 환대 속에 앨리스 일행은 서울의 명소를 둘러보았습니다. 대구 방문은 계획에 없었는데,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런 호우로 철도에 문제가 생겨 들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앨리스는 대구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든 소년들의 환대 속에 경상북도 관찰부와 동산동 선교사 거주지를 돌아보고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오늘의 역사​ ​1952년 종군작가단, ‘문학의 밤’ 개최(미국공보관) 2002년 남북 선수단,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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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한국은행, 1인당 국민소득 114달러 30센트라고 발표
한 나라의 경제력을 재는 척도로 1인당 국민소득이 있습니다. 세계 국가별 국민 소득 통계는 대개 달러로 환산해서 표시합니다. 한국은행이 1967년 9월 30일 발표 한 자료에 따르면 1966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114달러 30센트였습니다. 한국 정부 가 경제개발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국민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점차 증가했습니다. 외국 언론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리켜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외 국의 원조를 받았던 한국은 외국의 어려운 나라를 돕는 국가로 변화하였습니다. 21 세기에도 꾸준히 경제성장을 한 한국은 2007년 처음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8년 대구, 하루 최다 강수량 225.8mm 기록 2005년 달구벌축제가 컬러풀대구페스티벌로 명칭 변경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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