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1] 이병철, 삼성상회 설립
1938년 3월 1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서 삼성상회라는 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은 기업가 이병철이었습니다. 삼성상회는 처음에 국수 등의 상 품을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삼성상회는 무역업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구에서 출발한 삼성상회는 이후 섬유, 유통, 금융, 전자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 출하여 삼성그룹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오늘날 삼성그룹은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입니다. 삼성그룹의 역사가 시작된 삼 성상회 건물은 1997년에 철거되었고, 현재 그 자리엔 삼성상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시 북구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 광장에는 1938 년 설립 당시의 삼성상회를 재현한 건물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7년 신암선열공원 조성 1996년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 이름이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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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중고생 복장 자율화 실시
우리나라에 교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서울에 세워진 근대식 학교에 서였습니다. 1983년 1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부터 중고생 복장 자율화가 실시되었 습니다. 그전까지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은 교복을 입었고, 남학생들은 교모도 착 용하였습니다.
1983년 교복자율화 조치로 학생들은 사복을 입고 등교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오 래가지 않았습니다. 사복 착용의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자 정부에서 1985년 교복자 율화 보완조치를 발표했고, 1986년부터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한 교복에 한 해서 착용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복을 착용하는 학교가 늘어나 1998년에 는 약 95%의 학교가 교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5년 호주제 폐지안 국회 본회의 통과 1990년 토지공개념제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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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 대구아동문학회 창립
아동문학에는 동시·동화·아동소설·아동극 등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 도 아동문학의 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1957년 3월 3일 대구에서는 아동문학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대구아동문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창립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원화여고 교장이었던 아동문학가 이응창이었습니다.
창립 이후 60년이 넘는 동안 10여 명의 문학가가 회장으로서 대구아동문학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대구아동문학회는 매년 회지를 발간하였습니다. 각 회지에는 제목을 붙였는데 1958년 발간한 1호 회지의 제목은 <달뜨는 마을>이었습니다. 또 초대 회장 이응창을 기념하여 1973년 그의 호인 ‘창주’를 붙인 창주아동문학상을 만들어 매년 우수한 아동문학가를 선정하여 시상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6년 대구에 지방재판소 개설 고시 2000년 대구시, 섬유패션도시를 상징하는 캐릭터 ‘패션이’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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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관풍루, 영영축성비 등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지정
문화재는 종류가 많습니다. 국가에서 지정한 국보, 보물 같은 문화재가 있는가 하면, 각 시도에서 지정한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외에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문화 재가 있습니다. 문화재자료는 국가지정 문화재, 시도지정 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에서 각 시도에서 별도로 지정한 문화재를 말합니다.
1982년 3월 4일 대구시는 대구향교, 구암서원, 관풍루, 영영축성비 등을 대구광 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대구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 근처에 있었는데, 현재는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습니다. 구암서원은 북구에 있는 서원입니다. 관풍루는 조선시대 대구읍성에 있던 누각으로 현재는 달성공원에 있 습니다. 영영축성비는 대구읍성 축성을 완료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입니다.
오늘의 역사 1951년 제1회 아시아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림 2014년 대구체육중학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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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 고종, 대구부 관찰사 이중하에게 단발령에 대한 선유 부탁
1895년 조선 조정의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는 상투를 잘라야 한다는 단발령을 공포하였습니다. 곧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선비들이 뜻을 모아 단발령을 철회하라 는 상소를 하였습니다. 이어서 일반 백성들도 단발령에 항의하며 정부의 명령을 거 부하는 사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896년 3월 5일 기록에는 고종이 대구부 관찰사 이중하에게 ‘영남 의선비와백성들이조정에서명령한뜻이원래억지로머리를깎으라는것이아니 라는 것을 환히 알고 스스로 깨닫고 시행하도록 하라고 선유(宣諭)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유란 임금의 훈시를 백성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 조치는 단발령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는 유화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의 역사 1907년 친일관찰사 박중양, <대구읍성 성벽해체 보고서> 작성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수출진흥법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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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 마당깊은 집 문학관 개관
대구를무대로하는유명문학작품중에는김원일이쓴소설《마당깊은집》이있 습니다. 이 소설은 1950년대 대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대구 종로의 어느 집에서 살았던 주인댁과 피난민 네 가구의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작가 김원일은 13세 때 고향인 경남 진영에서 대구로 이사와 동네에서 ‘마당깊은 집’이라고 불렀던 가옥에 서 실제로 세 들어 살았으니,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소설은 베스트셀러 가 되었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2019년 3월 6일 종로거리 한편에 이 소설을 기념하는 ‘마당깊은 집 문학관’이 문 을 열었습니다. 문학관은 소설의 스토리와 등장인물 소개, 한국전쟁으로 인해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문학체험 전시공간입니 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오늘의 역사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 1983년 반핵과 환경보호 정책을 내세운 독일 녹색당 의회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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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대구 최초로 조선인이 세운 극장 만경관 개관
대구 최초의 극장은 1910년대 중반에 생긴 ‘대구좌’란 곳으로 일본인이 세운 곳 이었습니다. 이어 1920년에 영화상설관인 ‘조선관’이 개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필 이라는 사람이 1922년 조선관 자리에 새 극장을 건축했고 이듬해인 1923년 3월 7 일 만경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습니다. 대구에서 최초로 조선인의 자본으로 세 워진 극장이었습니다.
만경관이 개관한 1920년대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극장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만 경관에서는 영화 상영 외에 때때로 공연과 집회가 열렸습니다. 2000년대 들어 대 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하면서 대구의 극장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만경’ 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옛 만경관 자리에는 ‘롯데시네마 프리미 엄 만경’이 들어서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3년 낙동강교 준공 1951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각 6·3·3·4학제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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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 대구 3·8독립만세운동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서울에 이어 조선 의 각 도시에서 연이어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구에서는 종교계 인사들 과교사들이중심이되어대구읍성서문밖에있는시장에서조선의독립을요구하 는 행사를 계획했습니다.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날은 3월 8일이었습니다.
이날 약 1천 명의 사람이 시장에 모였고, 쌀가마니로 만든 임시 연단에 대표자가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습니다. 이어서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현재의 동성로 쪽으로 이동하며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행진 을 하였습니다. 3·8독립만세운동 집회가 열린 곳은 오늘날 대구시 중구 인교동 오 토바이 골목 입구로, 여기엔 3·8만세운동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5년 대구여자청년회 국제부인기념일(세계 여성의 날) 강연 19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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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 대구FC 새 전용구장인 DGB대구은행파크 개장
대구시 북구 고성동에 있었던 대구시민운동장은 종합경기장인 주경기장을 중심 으로 야구장, 수영장 등을 갖춘 종합 스포츠 단지였습니다. 축구와 육상을 할 수 있 는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은 1948년 완공된 경기장으로, 2001년 대구종합경기 장(현 대구스타디움)이 생기기 전까지 대구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습니다.
시민운동장 주경기장에선 많은 스포츠 경기 외에 때때로 기념행사, 종교행사가 열렸는데, 2017년 리모델링을 거쳐 2019년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 습니다. 경기장의 이름은 DGB금융그룹이 경기장에 대한 명명권을 사들여 2019년 ‘DGB대구은행파크’가 되었습니다. 현재 DGB대구은행파크는 프로축구 대구FC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대구노동공제회 농민대회 개최 1959년 대구맹아학원 맹(盲)부를 대구광명학교로 분리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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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동학 교조 최제우 대구에서 순교
1824년(순조 24) 경주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1856년 무렵부터 산에 들어가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도(道)를 구하였습니다. 1860년 깨달음을 얻은 그는 1861년부터 자신이 깨우친 것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점점 체계화된 그의 종교 사상은 동학으로 발전했습니다. 동학은 신도가 늘자 각지에 접(接)을 두고 접주(接主)가 관내의 신도를 다스리는 접주제를 시행하였습니다.
1863년에 이르러 동학의 교세는 13개 접에 신도는 3,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조정에서는 동학의 교세 확장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해 11월 경주에서 최제우를 체포하였습니다. 1864년 1월 최제우는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었고, 이곳에서 심문받다가1864년 3월 10일 오늘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관덕정 마당에서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9년 남문 밖 시장에서 대구 2차 독립만세운동 일어남 2016년 경상북도 신도청 청사 경북 안동시 풍천면에서 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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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 경북도, 대구공설야시장 개설
1963년 신문에 3월 11일 경상북도에서 대구공설야시장을 개설하였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전기 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던 1960년대의 야시장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풍경이 달랐을 것입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희미한 카바이드 불빛 아래 좌판이 펼쳐진 곳이었고, 야간 통행금지 탓에 영업시간도 길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야시장이 관광상품이 되고 있는데, 대구에는 칠성야시장과 서문야시장이 있습니다. 심야영업의 경우 1982년 통금 해제 이후 제한이 풀렸지만 1990년 정부는 유흥업소에 한해 영업을 자정까지로 제한했습니다. 심야영업 제한은 1999년에 완전히 해제가 되었습니다. 2020년~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시간에 많은 제한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8년 독립협회, 서울에서 첫 만민공동회 개최 1964년 수운 최제우 순교 100주년 기념 동상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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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 대구에서 한글학자 이극로 초청 강연회
1893년에 태어난 이극로는 1921~27년에 독일 베를린종합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그 대학에 조선어과를 창설하고 강사로 재직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29년 귀국한 그는 서울에서 조선어학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조선어학회의 역점사업에 는 조선어사전 편찬이 있었습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직되었고, 1942년 4월에 원고 일부를 출판사에 넘겨줄 만큼 사업이 진척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이 이를 파악하고 관계자들 을 체포하는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이극로도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였고 광복과 함께 출옥하였습니다. 1946년 3월 12일 대구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이극로는 ‘조선 문화와 한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대구시, 식량부족 사태로 임시배급제 실시 1973년 대구성보학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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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육영사업가 김울산 타계
김울산은 대구의 여성 육영사업가입니다. 장사로 많은 돈을 모은 김울산은 그 돈으로 순도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대구 명신여학교 창립 때 많은 돈을 기부하였습니다. 1925년 명신여학교가 운영난에 빠지자 학교 경영권을 인수하여 이듬해에 복명여자보통학교로 학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때 자신의 이름도 울산에서 복명(復明)으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복명에는 ‘조국의광복’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이 학교는 역사를 계속 이어와 현재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있는 복명초등학교가 되었습니다. 김울산은 이밖에 희도학교 와 대남학교 유치원 설립 때도 많은 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울산 은 조국의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3월 13일 타계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5년 대구어채(주) 설립 2013년 교육과학기술부, 대구시 달서구와 북구를 교육국제화 특구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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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4]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발생
1991년 3월 대구시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구미산업단 지에 있는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페놀이 낙동강을 통해 대구 취수장에 흘러드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처음 유출된 것은 3월 14일이었습니다. 대구 시민들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고 신고하였고, 지역 언론사의 신속한 취재를 통해 진상이 알려졌습니다.
대구의 취수장을 오염시킨 페놀은 낙동강을 따라 흘러가 강 하류에서 검출되어 부산과 경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불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4월 22일 같은 공장에서 페놀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가 파열되어 페놀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1999년 환경운동 단체인 녹색연합은 이 사건을 ‘1950년대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 중 1위로 선정하였습니다. 오늘의 역사 1948년 국내 최초 시비 이상화의 <마돈나 나의 침실로> 달성공원에 제막 1986년 대구직할시 공업계고등학교 공동실습소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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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교동시장 정식 인가
대구 도심에 있는 교동시장의 ‘교동’이란 지명은 인근에 대구향교가 있어서 생긴 것입니다. 대구향교는 1932년 중구 남산동으로 옮겨졌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교동 시장 자리는 대구역과 가깝고 대구의 도심이어서 상업거래가 매우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제품들이 많이 판매되어 양키시장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된 이곳은 1956년 3월 15일 교동시장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수입상품은 물론 전자, 전기, 의류, 귀금속 등 다양한 제품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시장 골목에는 먹자골목이 생겼습니다. 1950년대 이후 대구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곳인 교동시장은 2021년 지금도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13년 조선 최초의 검도강습회 대구 무덕관에서 열림 1995년 동부도서관, 남부도서관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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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화가 김용조 출생
김용조는 일제 강점기 이인성과 더불어 활동하였던 서양화가입니다. 1916년 3월 16일 태어난 그는 대구달성보통학교(지금의 달성초등학교)를 졸업 후 서동진이 경영하던 대구미술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았습니다.
김용조는 16세 때인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풍경>으로 입선하였고, 1935년의 조선미술전람회에선 <그림책을 보는 소녀>로 특선을 하여 ‘조선 미전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40년 새로운 미술 사조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건너가공부하기도했던김용조는귀국후왕성하게작품활동을하던중 1944년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바다 풍경을 즐겨 그렸는데 대표작에는 <어머니의 상>, <어선>, <해경>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37년 대구남문시장 개장 1956년 한국 세계기상기구(WMO)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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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영락관, 호락관에서 영화 <대지> 상영
1930년대에 오늘날 대구 도심의 중앙로 인근에는 영락관과 호락관이라는 극장이 있었습니다. 1938년 3월 17일 두 극장에서 미국 영화 <대지>가 개봉되었습니다. <대지>는 미국의 여성 작가 펄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37년 미국에서 먼저 개봉된 화제작이었습니다. 대구의 극장에서 개봉한 <대지>는 대구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호락관은 광복 후에 자유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인 1930년대에 영화가 가진 매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0~40년대 대구는 많은 극장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47년 당시 대구 인구는 약 30만 명이었는데, 그해 3월 대구에 있는 극장의 총 입장객 수가 약 32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영화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통계수치입니다. 오늘의 역사 1946년 여성전문지 <부녀일보> 창간 1972년 한국 최초 전기기관차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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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일본이 관청에서 일본어 사용 지시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은 1910년 한일 강제합병 이전에 이미 추진되었습니 다. 일제의 조선통감부는 1908년 <교과용 도서 검정 규정>을 공포하여 조선인의 민족정신이 담긴 교과서에 대한 제재를 하였습니다. 1911년에는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국어’라는 명칭 대신에 ‘조선어’를 사용하게 하고, 대부분의 교과서를 일본어로 기술하게 강제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학생들에게 일본어는 조선어보다 학교에서 더 자주 접해야 하는 문자가 되었습니다.
1937년 일제가 관청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지시한 것은 그들이 추진해 온 조선어 말살 정책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사참배를 하게 하였고 1940년에는 창씨개명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창씨개명을 안 한 사람에겐 학교의 입학과 진학, 채용에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83년 대구 덕희학교 개교 1999년 대구에듀넷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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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삼성라이온즈파크 개장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2015년 시즌까지 삼성라이온즈의 홈 경기는 대구시 북구 고성동에 있는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습니다. 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선 중·고교 경기도 많이 열렸습니다. 야구장 시설의 노후화로 야구장 신축 여론이 점점 높아졌고 2011년 신축 야구장 건립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부지는 대구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 근처로 정해졌습니다. 공사를 진행하던 2015년 5월경 신축 야구장 이름이 삼성라이온즈 파크로 확정되었습니다.
삼성라이온즈파크로 진입하는 도로 이름은 같은 해에 ‘야구전설로’로 확정되었습니다. 2016년 3월 19일 개장한 이 야구장의 가장 큰 특징은 8각의 다이아몬드 형태에 관람객이 햇빛을 등지고 경기를 볼 수 있도록 관객 중심의 동북동 방향으로 설계한 점입니다. 오늘의 역사 1971년 고리원자력발전소 기공 1997년 시 전문지 《죽순》 창간한 시인 이윤수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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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대구 부인사의 토불상이 땀을 흘리다
“대구 부인사의 토불상(土佛像)이 금년 2월 9일(양력 3월 20일)에 땀을 흘렸는데 온몸으로 다 흘렸으며 끊임없이 계속 흘리다가 그 이튿날에야 비로소 그쳤다고 도신(道臣)이 장계(狀啓)를 올렸다.” 이것은 《조선왕조실록》 숙종조 8권에 나오는 1679년의 기록입니다.
부인사는 신라 선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 고려시대에 초조대장경을 봉안하였던 사찰로 유명합니다. 부인사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고려시대에 나라의 큰 보물인 대장경을 보관했을 만큼 부인사는 큰 사찰이었습니다. 번성할 때에는 39개의 부속 암자를 관장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불상이나 비석이 땀을 흘렸다는 기록은 예로부터 여러 사찰에서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장차 일어날 국가의 흉사를 예언하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6년 경상도 관찰사, 흥학훈령(興學訓令) 발표 1984년 대구시립국악단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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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대구~포항 간 우편물 우송을 자동차로 시작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5년이었습니다. 고종 황제 즉위 40 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서 들여왔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상업용으로 처음 운행한때는 1912년 한 일본인이 서울에서 자동차 영업을 한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1910년에는 공공 운송의 경우 자동차보다 마차가 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편물 수송도 마차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자동차 보급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최초의 관광버스가 1916년 금강산에서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공공 업무에 자동차를 이용하는 빈도도 늘어났는데, 그해 3월 21일부터 대구~포항 간 우편물 우송을 자동차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중 교통수단인 택시가 처음 서울에서 운행을 시작하는 등의 변화를 거치며 자동차는 점차 낯익은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2003년 대구시, 중국 양저우(扬州)시와 우호협력도시 결연 2014년 대구육상진흥센터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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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달성공원에 달성서씨유허비 건립
유허비(遺墟碑)란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합니다. 달성 서씨는 대구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로, 달성 서씨의 시조 서진은 고려시대에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진 인물입니다. 이후 현재의 달성공원과 주변 지역은 달성 서씨의 세거지가 되었고, 달성공원 지역 외에 대구시 동구 도동 등 대구 여러 곳에 달성 서씨 집성촌이 생겼습니다.
달성공원에 달성서씨유허비를 건립하는 논의는 196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 니다. 대종회 사람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건립기금을 마련하였고 노산 이은상 선생 이 글을 짓고 죽농 서동균 선생이 글씨를 쓴 한글 비문을 준비했습니다. 1971년 3월 22일, 기초공사 후 귀부(龜趺)를 얹고 그 위에 약 10척(尺) 높이의 비신(碑身)을 올 린 달성서씨유허비는 달성공원 정문을 기준으로 공원의 왼쪽에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897년 경인철도 부설 공사 인천에서 기공 1984년 제1회 대구연극제 개최(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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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대구 유학자 최응기가 10조 상소 올림
조선시대에 지방의 유생 중에는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엔 대구 사람 최응기도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702년 3월 23일(숙종 28)자에는 이런 상소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경상도 대구 유학(幼學) 최응기가 10조 소(十條疏)를 진달하였다. 10조는, 첫째 호포(戶布)를 행할 것, 둘째 묵은 빚을 탕감할 것, 셋째 양전(量田)을 고칠 것, 넷째 전결(田結)을 살필 것, 다섯째 농상(農桑)을 권장할 것, 여섯째 귀천(貴賤)을 드러낼 것, 일곱째 재용(財用)을 절약할 것, 여덟째 옥송(獄訟)을 결단할 것, 아홉째 과법 (科法)을 변경할 것, 열째 공거(貢擧)를 시행할 것이었는데,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 상소문에 나오는 ‘해조(該曹)’는 조선의 6부 중 하나인 예조를 말하며, ‘품처’는 여쭈어서 처리하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역사 1922년 서상일, 대구운동협회 조직 2000년 안동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 현존 최고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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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4] 무용가 최승희 대구극장에서 공연
1911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최승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을 대표하는 무용가로 활동하였습니다.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용 수업을 받은 그녀는 1929년 귀국하여 서울에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최승희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무용 공연을 시작한 것은 1930년부터였는데, 1931년 3월 24일 대구에서도 그녀의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후 최승희는 1938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무용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을 만큼 세계적인 무용가로 성장하였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 중에 광복을 맞아 귀국한 최승희는 1946년 7월에 월복했고,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창작활동을 하다가 1969년 타계하였습니다. 최승희의 대구공연이 열린 대구극장은 지금의 대구역 근처에 있었던 극장입니다. 오늘의 역사 1908년 의병 80여 명, 대구 전호동에서 일본군과 교전 1909년 공립 대구심상고등소학교, 졸업 및 수업증서 수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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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5] 선교사 헨리 M. 브루엔(H. M. Bruen) 야구 소개
대구는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야구가 처음 들어온 도시입니 다. 1900년 헨리 M. 브루엔 선교사가 대구에서 소년야구단을 만든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브루엔 선교사는 1899년부터 대구에서 생활하며 남산교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선교봉사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남긴 1900년 3월 25일의 일기에는 “소년야구단을 만들었으니 이는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일”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기록에는 이갑성 등 그가 야구를 처음 가르친 아이들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야구는 대구의 학교에 보급되었고, 1906년 계성학교 개교 후 대구 최초의 학교 야구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이영민도 계성학교 출신으로, 서울 배재 고보로 스카우트된 후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8년 대한협회 대구지회 특별총회 개최, 정식 창립 1950년 경상북도, 대구공립사범학교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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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발생
1991년 3월 26일 대구의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채집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3월 26일은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시· 군 · 구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일이어서 임시 공휴일이었고, 아이들은 그날 등교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근처 와룡산에 오르기 전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와 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이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유골로 발견되었습 니다.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 전문가들은 타살로 결론 내렸는데,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2021년 와룡산에 있는 선원공원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석 제막식과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0년 한국 최초의 피아노, 대구에 들어옴 19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제4347호)공포, 대구직할시교육청 명칭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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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경상감사 김이재가 양전 사목을 아뢰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조선시대 대구와 경북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입니다. 1820년 <순조실록> 23권에 나오는 ‘경상 감사 김이재가 양전 사목을 아뢰다’는 기사는 당시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양전 (量田)은 논과 밭을 측량하는 것, 사목(事目)은 공적인 규칙을 이르던 말입니다.
사목중에서가장중요한것이국가의토지를측량해조세의기초사업으로추진 하였던 양전 사목입니다. 농업국가였던 조선에서 양전 사목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은 지방 수령에게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김이재가 양전 사목은 토지를 측량하는 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부터 양전 담당자의 자격 요건과 예비교육 지침 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행정 시스템이 꼼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6년 대구 연고 프로농구 동양오리온스 프로농구단 출범 2016년 동구 신암 지하차도 왕복 6차로로 확장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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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우방타워랜드 개장
대구를 대표하는 공원인 두류공원엔 두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두류산과 금봉산입니다. 이월드가 있는 산이 두류산이고, 문화예술회관 뒷산이 금봉산입니다. 테마공원인 이월드는 1995년 3월 28일에 우방타워드랜드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였습니다. 대구타워(현 83타워)는 우방타워랜드 개장 3년 전인 1992년 완공되었습니다.
우방타워랜드는 지방에 있는 놀이공원 중에서 흔치 않은 도심 속 놀이공원이어서 개장 때부터 많은 방문객이 찾았습니다. 우방타워랜드는 2011년 이름이 이월드로 바뀌었습니다. 이월드는 오늘날에도 대구 시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입니다. 롤러코스터가 빠르게 궤도 위를 달리는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입니다. 오늘의 역사 1969년 김수환 대주교, 한국 최초로 추기경 서임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사형제 폐지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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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민성일보 테러 사건 발생
1945년 광복 후 미국 군정 시대에 한국 사회는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심했습니다. 신문 중에도 좌익계 신문과 우익계 신문을 당당하게 표방하는 신문이 있었습니다. 대구의 신문 중 대표적인 좌익계 신문은 1945년 9월에 창간된 민성일보였습니다. 민성은 ‘민중의 소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947년 3월 29일 우익계 청년들이 무장을 하여 민성일보에 들이닥쳐 인쇄기 등 기물을 파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민성일보 테러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해 6월에도 비슷한 테러사건이 일어났고, 또 편집국 간부가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민성일보는 잦은 휴간을 해야 했습니다. 구독자가 줄어들고 미국 군정의 압력으로 광고마저 줄면서 신문사는 경영난에 봉착하고 맙니다. 결국 1948년 말 민성일보는 부도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역사 1967년 고 유치환선생 추모의 밤(KG홀) 1999년 신천의 다리인 칠성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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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동화사 학승, 대구 덕산정에서 독립만세 운동
대구에서 일어난 1919년의 3·1독립만세 운동은 세 차례 일어났습니다. 1차는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2차는 3월 10일 덕산정 시장(현 염매시장)에서, 3차 역시 3월 30일 덕산정에서 일어났습니다. 3차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10명의 불교 학승(學僧)들이었습니다.
동화사 포교당인 조선선종경북포교당(현 보현사) 소속이었던 젊은 승려들은 독립운동 관련 신문인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등사할 정도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들 승려들은 독립만세운동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로부터 102년이 지난 2021년 보현사 일주문 앞 광장에서 ‘제 1회 동화사 학승 대한독립만세운동 추모식’이 봉행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08년 계성학교 아담스관(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5호) 준공 2004년 KTX 개통으로 한국 고속철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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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대구 최초의 정수장 가창정수장과 대봉1호 배수지 준공
대구에 처음으로 수돗물이 공급된 것은 1918년 가창정수장과 대봉1호 배수지가 준공되면서부터입니다. 가창정수장에서 정수된 물은 오늘날 중구 남산동 수도산 남쪽에 세워진 대봉1호 배수지로 공급되었습니다. 배수지의 물은 인근 남산동, 대봉동 등에 사는 주민들 집에 공급되었습니다. 대봉배수지만으로는 모든 시민이 수돗물 혜택을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1925년 시설을 증설하였고, 1940년 산격정수장이 설치되면서 수돗물 사정은 개선이 되었습니다.
이후 강창정수장에는 몇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정수시설 확장이 있었고, 1959년 가창댐이 준공되었으며, 1986년 가창댐 확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역사적인 시설물이 된 대봉배수지는 등록문화재 제251호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23년 서문시장 이전 축하회 열림 1954년 대구로 피난온 학생들을 위해 세운 서울피난대구연합중학교 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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